김우진 윤심덕 정사사건(金祐鎭 尹心悳 情事事件, 1926)
1926년 극작가 김우진과 성악가 윤심덕의 현해탄 정사사건은 당시 조선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언론은 대서특필하였고, 동아일보는 두 사람의 정사문제는 조선청년 남녀가 한번 톡톡히 토론하고 판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며 독자들의 기탄없는 투서를 받아 신문지상에 게재하였다. 이 가운데서도‘조선인에서 제명하라’는 제목의 C생의 투서는 박열과 후미코의 죽음과 비교하며 김우진 윤심덕의 죽음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1] 두 사람의 죽음에 관해서는 ‘정사사건’으로 보지않고 ‘기획 자살’로 보는 시각도 있다. [2] 유민영 단국대 명예교수는 그들의 죽음을 ‘한국 지성사의 후퇴를 가져온 개화기 신문화운동의 가장 큰 돌발사고’라며 한국 예술 발전을 10년 이상 후퇴시켰다고 평가했다. [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