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대화재(木浦大火災, 1956년, 1963년)
목포공설시장이 1956년 9월 15일 밤 누전으로 일어난 대화재로 전소됐다. 시장 건물 250동과 민가 40동을 태우고 진화됐는데, 피해액은 1억7천만환에 달했다. 치안국에서는 근래 보기드문 대화재사건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감찰계장과 방호계장을 현지에 급파하였다. 국회에서는 8명의 국회의원으로 구성된 목포화재조사단을 파견하였고, 목포화재 사건의 책임을 물어 목포소방서장을 해임하고 목포경찰서장을 문책하는 등 관계공무원을 징계처분하였다. [1][2][3][4][5][6] 1956년 화재 이후 목포공설시장은 1961년 3분의1일을 복구하여 시장으로 쓰고 있던 중 1963년 1월 21일 새벽에도 큰불이 나 점포 등 325호를 태우고 이재민 2백명에 피해액은 1억2천만원에 달했다. 특히 이 화재는 137명의 인명피해를 낸 여객선 <연호(燕號)> 해상참사와 겹쳐 ‘목포는 단장의 「눈물의 항구」로 변하여 부둣가를 비롯하여 화재현장에는 가는 곳마다 울음소리와 비통한 표정들 뿐이었다.’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