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화성(朴花城,1904~1988)은 소설가. 1904년 목포시 죽동에서 태어났다. 목포 정명여학교(현 목포정명여중)를 졸업하고 서울의 숙명여고보(현 숙명여고)를 졸업한 뒤, 1929년 일본여자대학교 영문학부를 수료했다. 1923년 21세에 최초의 단편소설 「팔삭동」을 발표하고 1925년 「추석전야」로 문단에 데뷔했다. 1932년 장편소설 「백화」를 여성으로서는 최초[1]로 6개월 동안 180회에 걸쳐 동아일보에 연재하며 장편작가로 역량을 보였다. 대표작인 「헐어진 청년회관」은 일제 때 청년운동과 민족운동의 보금자리였던 목포청년회관(현남교소극장)을 배경으로 한 소설로서 역사의식이 강하게 투영된 작품으로 손꼽힌다. 목포에 박화성문학공원이 있으며 목포 정명여중 교정에 문학비가 목포문학관 입구에 흉상이 세워져있다. 그녀의 문학적 혈통을 장남 천승준(문학평론가), 차남 천승세(소설가), 3남 천승걸(전 서울대 영문과 교수)가 이었다.
↑박화성은 유독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이 붙어 있는 작가로 유명하다. 1925년 목포에 최초로 건립된 방직공장의 여공들을 주인공으로 한 단편 「추석전야」로 문단에 데뷔함으로써 ‘최초의 여성 소설가’가 되었고, 1932년엔 『백화』를 『동아일보』에 연재하면서 ‘최초의 장편 여성 작가’가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가장 어린 15세의 나이에 초등학교 선생으로 교단에 섰으며, 일본여자대학교 영문학부에 입학한 최초의 한국 여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