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호보존 환경투쟁(榮山湖保存 環境鬪爭, 1983)
개항 이후 고질적인 물 부족에 시달리던 목포는 1981년 영산호가 완공되며 수량문제는 해결되리라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상수원인 영산강 상류 영산포에 공해업소로 알려진 주정공장이 들어선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의사인 서한태 박사를 중심으로 1983년 6월 23일 지역단체협의회 상설기구인 영산호수질오염방지대책위원회를 창립한다. 이는 실로 목포지역에서 참된 시민운동의 효시를 이루는 단체가 탄생하는 역사적 순간이기도 하였다. [1] 이후 영산호 주변 광범위한 주민들이 참여해야 한다는 뜻에서 무안,함평,영암,해남 4개 군으로 확대해 영산호유역환경보존위원회로 전환하며, 유인물 배포, 리본달기, 가두방송을 하며 급기야 5천명이 참가하는 궐기대회를 준비하는 등 강력한 투쟁을 전개하였다. 결국 진로 측은 영산포 입주를 포기하였고 마침내 투쟁은 승리로 막을 내렸다. [2] 이 투쟁은 공해예상업소를 시민운동을 통해 추방한 세계적인 반공해운동 성공사례로 꼽히며, 당시 목포시민들이 주장했던 ‘물관리 일원화’는 35년만인 2018년 결실을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