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회 목포지회 창립(新幹會 木浦支會 創立, 1927.6.18)~ 신간회 목포지회는 김면수(金冕洙) 이의형(李儀珩), 최경하(崔景河) 장병준(張柄俊) 조극환(曺克煥)이 준비위원이 되어 임시사무소를 죽동 삼산의원에 두고 .[1] 몇차례 준비위원회 회의를 가진 뒤, 6월 18일 창립했다. 이날 오후 2시부터 일반인사들에게 선전하기 위해 악대를 선두로 기 행렬을 한 뒤 4시부터 목포청년회관에서 창립대회를 개최하였다. 김면수의 사회로 김상규의 개회사, 임시의장 김명진의 등단 후, 최경하의 경과보고, 김상규의 축전낭독이 있은 뒤 회장에 김면수, 부회장에 최경하, 간사에 김철진 외 20인을 선정하고 만세삼창으로 폐회하였다. [2] 초대지회장을 맡은 김면수는 목포 양동교회 장로로서 목포기독청년회장, 희성유치원 원장, 동아일보 목포지국장을 지냈다. 창립대회 후 목포청년회관 앞에서 촬영한 기념사진이 남아 있다. 민족협동전선인 신간회는 1926년 11월 사회주의 사상단체인 ‘정우회’가 ‘정우회선언’을 통해 민족주의 세력과의 적극적 제휴 등 ‘방향전환론’이 그 탄생의 계기가 되었는데, 목포 출신 사회주의운동가 김영식(1899-1930)은 정우회 상임집행위원으로 활동하며 정우회 선언을 주도하였고, 1927년 2월 15일부터 3월 1일까지 동아일보 1면에 <전환기에 직면한 조선신흥운동>이란 제목의 글을 13회에 걸쳐 기고하였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