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치(富蘭翠)병원설립은 1899년 미국 남장로교 선교회에서 목포로 파송된 오웬(C. Owen, 한국명 오기원)의 서양식 의료 활동에서 비롯된다. 그의 의료활동이 10여년 지속되면서, 1909년 목포에 연건평 191평의 규모를 가진 양옥의 석조건물이 건축되었다. 이러한 ‘프렌치(부란취)병원’은 조선인들을 위한 병원이었으며, 매년 7~8천명 이상의 환자들을 돌보는 의료기관이었다. 사실, 일제 강제점령 시기에 있었던 목포‘부립병원’은 일본인들이 거주하는 개항장 지역에 있었고 의료진도 모두 일본인들이었던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 그 당시 목포부 호남정 6번지(현, 양동에 위치한 ‘양동제일교회’ 도로변)에 주소를 둔 ‘프렌치(부란취)병원’은 나중에 조선인에 의해 운영되었는데, ‘연희의료전문학원’을 마친 최섭(崔燮) 원장이 그였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