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역전_매축(木浦驛前_埋築)은 대목포건설사업(大木浦建設事業)의 일환으로 진행되었으며, 선차연락(船車連絡) 시설의 중요한 문제였다. 1938년 당시 인구 6만의 상공업 도시인 목포, 전남의 웅도이며 산업경제의 중추적인 지위를 점유했던 목포 부민들의 열망은 목포역전 매축 공사 문제였다. 이에 따라, ‘목포항 매축주식회사’가 창립되었는데, 발기인들은 차남진(車南鎭), 김철진(金哲鎭), 김용진(金容鎭), 김승태(金承太), 리의형(李儀珩), 문재철(文在喆), 이동근(李同根), 김원희(金源喜), 내곡만평(內谷萬平), 복전유조(福田有造), 삼전태길(森田泰吉) 등 이었다. 매축 총면적은 9만6천9백여평이었으며, 총공사비는 11만원이었다. 역전(驛前) 매축과 역 배면(背面)의 매립은 시가지 조성과 상공업 발전을 위한 불가결한 공사들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