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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19일 (일) 15:24 기준 최신판
목포 동학농민혁명운동
Definition
목포동학농민혁명운동은 1894년 일어난 목포지역 동학농민운동은 대접주 배상옥(裵相玉)과 목포지역 농민군이 합세하여 일어난 농민운동을 말한다. 1862년 무안군 삼향면 대월리(현 목포시 대양동)에서 태어난 배상옥은 농민들을 규합해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하였다. 1894년 3월 1차 봉기에서 승리한 후 청천재(현 무안군 청계면 청계리)에 집강소를 설치하고 폐정개혁을 단행하였다. 또 목포진을 공격해 다수의 무기를 확보했으며, 삼향면 대월리와 해제면 임치진에 지휘본부를 설치하고 호남 서남부 일대를 장악하였다. 9월 2차 봉기 때는 일본군의 해상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북상하지 않고 나주성 공방전를 주도하였다. 그러나 월등한 화력으로 무장한 수성군과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이후 나주 고막포(현 함평군 학교면 고막리) 전투에서 패하게 되고, 장흥 석대들(현 장흥군 장흥급 남외리)에서 최후의 전투를 펼쳤지만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대접주 배상옥은 석대들 전투 이후 해남군 송지면으로 피신했지만, 조선인의 밀고로 붙잡혀 죽고 말았다.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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