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난영(李蘭影, 1916~1965)은 대한민국의 가수로 1916년 목포 양동에서 태어났다. 1932년 태양극장에 입단하여 막간 가수로 무대활동을 시작했다. 1935년에 노래한 「목포의 눈물」이 큰 인기를 얻었고 같은 해에 잡지 『삼천리』 사에서 주최한 레코드 가수 인기투표에서 여자 가수 부문 3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1936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음악 영화인 「노래 조선」에 출연했다.1937년 가수 겸 작곡자로 활약하던 김해송과 결혼했다. 1940년경에는 일종의 프로젝트 그룹이며 걸그룹의 효시라고 볼 수 있는 ‘저고리시스터’의 일원으로도 활약했다. 1941년에는 오케음반회사에서 이난영에게 표창장을 수여하는 한편 기념 공연도 열어 주었다. 1943년에는 도쿄의 영친왕 저택에서 ‘조선악극단’의 단원들과 공연을 했다. 1950년, 서울수복 이후에 남편인 김해송이 납북되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고, 1953년에는 김해송이 이끌던 K.P.K악단의 후신으로 ‘이난영 악단’을 창립했다가 1955년에 해산하였다. 이후에는 본인의 활동보다는 자녀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데 주력했다. 7남매 중에서 김애자와 김숙자 자매, 그리고 오빠 이봉룡의 딸인 이민자를 ‘김시스터즈’로 키워냈고, 이들을 미국에 진출시키는 데 성공했다. 1963년 6월에는 김시스터즈와 함께 ‘애드 설리번 쇼(The EdSullivan Show)’에 출연하기도 했다. 1963년에 하와이 공연 이후에 그녀는 귀국했다. 1965년에 시공관에서 열린 3·1절 기념 공연에서 「목포의 눈물」을 부른 것이 그녀의 마지막 공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