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척식주식회사설치(東洋拓植株式會社設置)는 1920년(大正 9年) 6월이다. 나주군 영산포에서 1930년 목포부 본정(중앙동)으로 신축 이전하였다. 이 시기에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은 산업자본과 금융자본, 그리고 부동산에 이르기까지 척식자금을 융통하여 일제 강점기 동안 사세를 넓혀갔다. 목포지점의 1924년말 대부금액은 290만원가량 되었고, 1928년말에는 685만여원에 이르렀다. 관할지역의 업무 장소는 나주군 영산포, 광주군 송정리, 보성군 벌교, 보성군 보성, 강진군 강진, 함평군 문장리 등 6개 주재소였다. 그리고 광주군 광주면내, 순천군 순천읍내 두곳에는 금융신입소가 설치되었다. 상환방법에는 연부와 정기, 그리고 근저당권 정기대부로 구분되었고, 이것들은 산미증식계획과 긴밀한 상관이 있었다. 일본 제국이 식민지 한반도를 군수물자 조달기지로 조성해 가면서,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첨병 역할을 했던 셈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