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리식 집자리[松菊里式住居址]

khw
Haewonk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5년 11월 14일 (금) 09:11 판

이동: 둘러보기, 검색




설명

송국리식 집자리는 부여 송국리 유적에서 조사된 집자리에서 비롯된 명칭이다. 집자리 바닥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와 그 양쪽에 두 개의 기둥 구멍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1975년 부여 송국리 유적에서 조사된 이래 광주 송암동, 서산 휴암리, 영암 장천리, 거창 대야리 유적 등이 보고되면서 그 윤곽이 밝혀지기 시작하였다. 최근까지 집계된 송국리식 집자리는 약 3,000기에 이른다

송국리식 집자리에서 타원형 구덩이와 중심 기둥은 이른 시기부터 늦은 시기까지 전통적으로 설치되는 내부 시설로서 가장 특징적인 요소이다. 평면 형태는 크게 방형과 원형으로 나뉘는데 일반적으로 방형은 휴암리식 집자리로, 원형은 송국리식 집자리라고 구분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평면 형태, 타원형 구덩이, 중심 기둥 등 내부 시설물의 조합에 따라 좀 더 상세하게 분류하는 연구자들도 있다.

송국리식 집자리는 2개의 중심 기둥이 설치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가장 보편적이고 전형적인 송국리식 집자리는 타원형 구덩이와 구덩이 안쪽에 중심 기둥이 설치되는 형태이다. 반면, 타원형 구덩이와 구덩이 바깥쪽에 중심 기둥이 설치되는 집자리는 영남 지역에서 주로 나타나는 경향을 보인다. 이외에 타원형 구덩이 주변으로 4개의 기둥이 설치되는 경우도 있다. 이와 같은 구조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주거에서 활용되며, 대부분 원형 집자리에서 많이 나타난다.

송국리식 집자리의 내부 시설들은 기본적인 형태를 유지하기도 하지만 변형된 조합을 이루기도 한다. 한 집자리 안에서 타원형 구덩이가 2개 이상 설치되거나 4주의 기둥이 6주로 늘어나는 경우도 있다. 또 타원형 구덩이와 중심 기둥 가운데 한 요소가 생략되어 축조되기도 한다. 특히, 중심 기둥만 설치되는 집자리는 대구 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하여 유적명을 따서 동천동식 집자리(東川洞式住居址)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내부 시설의 변화는 지역적으로 나타나며, 송국리식 집자리의 변화 과정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집자리 바닥의 중앙부에서 발견되는 타원형 구덩이의 기능에 대해서는 보관 및 저장 구덩이(貯藏孔), 작업 구덩이(作業孔), 화덕 자리(爐址), 집수 시설(集水施設) 등 다양한 용도로 추정된다. 그 중 보관 및 저장 구덩이 혹은 작업 구덩이의 기능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이외에 내부 시설로는 내벽 기둥 구멍, 외벽 기둥 구멍, 벽 도랑(壁溝), 물을 빼거나 모으는 도랑(誘引水路) 등이 있다.

송국리식 집자리의 분포는 대체적으로 수계(水系)를 중심으로 밀집된다. 한강 유역을 포함한 경기도 일원 및 강원도, 낙동강 상류 지역을 제외하면 남한 전역에서 고루 발견된다. 최근까지의 조사 성과에 의하면, 인천-경기도 가평-강원도 고성을 있는 선이 송국리식 집자리의 북한계로 파악되었고, 남쪽으로는 바다 건너 제주도와 일본에까지 이른다. 보령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중서부 평야 지역, 금강 유역, 영산강 유역, 보성강 유역 등 중서남부 지역에서는 집자리의 평면 형태와 관계 없이 타원형 구덩이 안쪽에 2개의 기둥 구멍이 설치되는 집자리가 많다. 이러한 분포와 물질 문화, 방사성 탄소 연대에 근거하여 송국리식 집자리로 대표되는 송국리 유형이 금강 하류 지역 일대에서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낙동강 유역에서는 진주 남강댐 수몰 지역의 대단위 발굴 조사를 통해 타원형 구덩이 바깥에 2개의 중심 기둥이 설치되는 집자리가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송국리식 집자리에서는 아가리가 바라지고 몸통이 불룩하며 저부로 갈수록 좁아지는 송국리식 토기, 홈자귀(有溝石斧), 삼각 돌칼(三角形石刀), 플라스크 모양의 붉은 간 토기(赤色磨硏土器) 등 특징적인 물질 문화를 비롯하여 간 돌검(磨製石劍), 돌살촉(石鏃), 돌도끼(石斧) 등이 출토된다. 이와 같은 집자리는 송국리식 토기와 불가분의 관계를 이루며, 돌널무덤(石棺墓)·돌뚜껑움무덤(石蓋土壙墓)·독무덤(甕棺墓)과 함께 송국리 유형을 이룬다.

송국리식 집자리는 송국리식 토기와 함께 기원전 9세기에 출현한 것으로 보고 있다. 부여 송국리에서 처음 조사되던 때에는 기원전 6~4세기로, 조사 성과와 방사성 탄소 연대가 축적되면서 기원전 8세기로 상향되었던 2000년대 초의 연대관보다 좀 더 올려볼 수 있게 되었다. 하한 연대는 광주 신창동 유적에서 이음독널(合口式甕棺)로 사용된 송국리식 토기, 순천 연향동 대석 유적에서 삼각 덧띠 토기(粘土帶土器)가 출토되는 송국리식 집자리 등으로 미루어 보아 기원을 전후하는 시기까지 존속했음을 알 수 있다. 제주도의 조사 성과가 대량으로 축적되면서 송국리식 집자리가 원삼국 시대 이후 까지 축조된 것으로 판단된다.

송국리식 집자리는 앞 시기의 집자리에서 보이던 화덕 자리가 없고, 기둥의 배치도 장축 2열의 배치와 다른 중심 기둥이 특징이기 때문에 앞 시기 문화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특히 한반도 남부 지역 송국리 문화를 대표하는 주거 형태로서 고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앞으로 기후와 불의 관계성, 화덕의 사용 여부, 구덩이의 기능, 문화접변 양상 등에서 송국리 유형의 해상도를 더욱 높여 갈 필요가 있다.

이미지

한국고고학저널

참고문헌

  • 조현종. (1989). 송국리형토기에 대한 일고찰. (석사 학위 논문). 홍익대학교.
  • 이건무. (1992). 송국리형주거분류시론. 일조각.
  • 김승옥. (2001). 금강유역 송국리형 묘제의 연구. 한국고고학보 45. 45-74.
  • 이종철. (2015). 송국리형문화의 취락체제와 발전. (박사 학위 논문). 전북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