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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26일 (일) 14:43 판



설명

집은 인간이 일정한 공간에서 생활할 수 있는 터전이다. 가옥같은 건축물뿐만 아니라 동굴과 같은 자연물을 이용한 경우도 포함된다. 인간 생활을 외부로부터 보호하는 최소 단위로, 다양한 자연 환경에 대처하면서 내부적으로는 사회 생활을 영위하는 기본적인 장소이다. 자연 환경, 문화, 사회 구조, 생업의 형태 등에 따라 구조와 형태에 많은 차이를 보이는데, 이 중 자연 환경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집자리는 주거 활동이 중지되어 폐기된 상태의 터를 말하는 것으로, 고고학적으로는 움 집자리(竪穴住居址), 기둥 건물터(堀立柱建物址), 돌 깐 집자리(敷石住居址), 동굴 집자리(洞穴遺蹟), 바위 그늘 유적(岩陰遺蹟) 등이 모두 포함된다. 집자리는 폐기된 상태이기 때문에 그 구조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잔존 양상을 통해 집의 형태와 구조를 추정할 수 있다. 집은 신중하고 계획성 있게 만들어지며, 축조 방법이나 부속 시설에서 나타나는 공간 분할과 생활 양상 등은 당시 사회를 파악하는 기초 자료가 된다. 축조 방법은 바닥, 벽, 기둥 설치 형태, 지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입지나 사회적 구조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다. 부속 시설은 선반, 출입구, 화덕 자리(爐址), 저장 구덩이(貯藏孔), 부뚜막, 온돌, 벽 도랑(壁溝), 구덩(竪穴), 배수구 등 다양하다.

우리 나라에서는 구석기 시대부터 집자리가 확인되는데, 이동 생활로 인한 임시 용도의 집자리 형태가 많다. 본격적인 집의 등장은 정착 생활이 본격화된 신석기 시대부터이고 움 집자리, 돌 깐 집자리, 동굴 집자리 등이 확인되었다. 청동기 시대는 농경이 발달하고 대규모의 취락이 들어서면서 사회 구조와 생업의 형태에 맞게 집의 형태가 변하게 된다. 청동기 시대 집자리는 움 집자리와 기둥 건물로 나눌 수 있는데, 대부분은 움 집자리이다. 기둥 건물은 남아 있는 자료가 빈약하여 그 용도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주변의 상황을 고려하여 추정할 수밖에 없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기둥 건물은 대부분 움 집자리와 공반된다. 그 수도 움 집자리에 비해 매우 적고, 배치 양상도 일부 지역에 모여 있거나 움 집자리 군집에 속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람이 거주하는 집의 기능보다는 주로 저장 시설인 창고로 이용되었을 것이다.

청동기 시대의 각 시기별 집자리의 변화 양상은 크게 3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이른 시기는 미사리식 집자리, 가락동식 집자리, 역삼동식 집자리가 대표적이다. 평면 형태가 세장방형과 장방형이 많으며 규모는 대형이 많다. 내부에는 화덕 자리, 저장 구덩이, 벽 도랑 등의 시설이 있는데 공간을 분할하여 이용하였음을 알수 있다. 화덕 자리는 집자리의 장축 중앙선상에 일렬로 여러 개가 설치되는 사례가 많은데, 형태는 돌 깐 돌 두름식(板石敷石上圍石式), 돌 두름식(圍石式), 구덩식(竪穴式), 평지식 등이다. 저장 구덩이는 집자리의 모서리 부분에 주로 배치되며, 여러 기가 모여 있는 경우가 많다. 일부는 대형의 토기를 저장 구덩이 내에 묻어 저장 시설로 이용하였다. 벽 도랑 시설은 벽면을 따라 일부 면에 확인되나 네 벽면 모두 확인되는 경우도 있다. 기둥 구멍(柱穴)은 집자리의 중심과 벽을 따라 일정하게 배치되며, 가락동식 집자리에는 기둥 구멍 대신 주춧돌(礎石)을 놓고 그 위에 기둥을 세웠다.

송국리 문화 단계에는 송국리 문화가 분포하는 곳은 휴암리식 집자리, 송국리식 집자리가 대표적이고 송국리 문화가 분포하지 않는 곳은 동남해안 지역의 검단리식 집자리(울산식 집자리), 강원 영서 지역의 천전리식 집자리 등이 대표적이다.

송국리 문화가 분포하는 지역은 주거지 중앙에 화덕 자리가 사라지고 타원형의 작업용 구덩이와 그 양쪽에 두 개의 기둥 구멍이 설치되는 것이 특징이다. 평면 형태가 방형인 것을 ‘휴암리식 집자리’, 원형인 것을 ‘송국리식 집자리’라고 한다. 규모는 이른 시기에 비해 작아진다. 송국리식 집자리는 충청·전라·경남 지역에 주로 분포한다. 타원형 구덩이와 양쪽의 기둥 구멍의 배치와 형태 및 내부 시설 등은 지역마다 차이를 보인다. 송국리식 집자리의 특징인 타원형 구덩이의 기능은 작업 구덩이, 저장 구덩이, 화덕 자리, 집수구(集水溝) 등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진주 대평리 유적에서 타원형 작업 구덩이 주위에 돌 부스러기가 흩어져 있고, 작업 구덩이에 대형 숫돌이 놓여 있는 사례가 많이 확인된 것으로 볼때 작업용 구덩이일 가능성이 높다.

검단리식 집자리(울산식 집자리)는 동남해안 지역에서 주로 확인된다. 평면 형태는 방형과 장방형이며 한개의 화덕 자리와 기둥 구멍, 벽 도랑, 배수구가 설치되었다. 내부 시설인 벽 도랑은 제습, 배수 시설, 벽을 세우기 위한 기초 홈의 기능으로 추정된다. 벽 도랑의 한쪽 모서리에 배수구가 연결되는데 모두 경사면 아래쪽으로 설치되기 때문에 배수와 관련된 시설일 것이다. 화덕 자리는 구덩식으로 1기가 설치되는데, 일부는 구덩 둘레에 점토띠를 두른 것도 있다. 또한 울산 연암동 유적에서는 집자리 둘레에 도랑(周溝)을 돌린 것도 확인되어 ‘연암동식 집자리’로 불린다. 강원 영서 지역에는 작업 구덩이와 이색 점토 구역이 있는 천전리식 집자리가 유행하였으며, 경기도 지역은 이른 시기의 역삼동식 집자리가 규모가 작아져 가운데 시기에 계속 유행하였다.

늦은 시기의 집자리는 평면 형태가 (타)원형과 (장)방형이 주를 이루며, 규모는 이전 시기보다 작아진다. 또한, 깊이가 얕아지며 기둥 구멍의 수가 적고, 내부에서 깬돌(割石)이 많이 출토된다. 내부에 아무런 시설이 없는 집자리도 많다. 내부에서는 벽 도랑, 화덕 자리, 온돌 등의 시설이 확인되지만, 온돌 시설은 덧띠 토기 시기의 모든 집자리에서 확인되는 것은 아니다. 온돌이 확인되는 대표적인 유적은 사천 늑도 유적인데, 주로 삼각 덧띠 토기가 출토되는 집자리에 설치되었다. 온돌은 벽을 따라 일부만 설치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청동기 시대 집자리의 면적은 점차 축소되는데, 집자리에 거주하는 구성원의 수가 감소하기 때문이다.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가족 구성의 변화라는 견해도 있고, 가족 구성의 변화가 아니라 공동 거주형에서 단독(개별) 거주형으로 거주 형태가 변화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이른 시기에 집자리 내부에 있던 저장 구덩이는 송국리 문화 단계가 되면 외부에 저장 구덩이나 저장용 고상식 창고(高床倉庫)를 만들게 된다. 마을의 지도자가 잉여 생산물의 관리를 담당하게 된 사회적 변화이다.

늦은 시기의 집자리는 중국 동북 지방에서 덧띠 토기 문화를 가지고 내려온 사람들이 만든 것이다. 이전 시기와는 달리 사람들이 살기좋은 곳이라고 할 수 없는 고지대에 집자리가 설치되는 사례도 있으며 내부 시설이 정연하지 않은 경우도 많아 이동 생활을 전제로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전 시기에는 집자리 가운데 설치되었던 화덕이 부뚜막의 형태로 벽쪽에 설치되며 점차 남부 지역에 안정되게 정착하면서 온돌이 설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