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농산앵무"의 두 판 사이의 차이
논문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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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7일 (화) 11:31 판
염농산(廉嚨山), 예명은 앵무(鸚鵡)이다. 한학과 시, 가무에 능한 관기였다가 달성 권번의 초대 회장을 지냈다고 한다.
국채보상운동을 이끈 대표 인물로 거론되는 이가
광문사 부사장을 지낸 독립운동가 서상돈(1850~1913)이다.
巨商(거상)이었던 그가 낸 성금 액수가 당시 집 한 채 값인 100원이었는데
그와 똑같은 거금을 내 세상을 놀라게 한 여성 18세 기생 '앵무' 鸚鵡(앵무)였다.
당차게 100원을 내놓은 때 나이가 18세였고, 30세 때는 성주군 용암면에 홍수방지 제방을 쌓게 거금을 쾌척했으며, 1938년에는 폐교 위기에 몰린 대구 교남학교에 전 재산의 절반인 2만 원을 내놓았다.
당시 매일신보는 '염농산 여사가 교육사업에 몸을 던져 만장부가 하지 못한 일을 능히 함으로써 수전노 제씨의 심장을 자극하고 있다'고 기록했다.
출처: http://cho-a47.tistory.com/1209 [草阿(초아)의 삶과 문화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