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석재전집5:남선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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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仙窟(남선굴)」
작품명 南仙窟(남선굴)
작품출처 임석재, 『韓國口傳說話. 5 : 京畿道篇』, 평민사, 1989, 283쪽.
저자 임석재(任晳宰)
구술자 南相學
채록장소 경기도 연천군 적성공립보통학교 (京畿道 漣川郡 積城公立普通學校)
채록연월 1927년 2월


개요

본 작품은 남고려의 충신 남을진공이 동지 72인과 함께 산에 들어가 망한 고려를 떠나지 않았으며, 그의 충성을 인정받아 두문동 72인으로 불리며 석굴에서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 후 이태조에 의해 사당과 산림이 건립된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내용

고려의 忠臣(충신) 沙川伯(사천백) 南乙珍公(남을진공)은 고려가 망하니까 同志(동지) 72인과 같이 산에 들어가서 나오지 안했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이분들을 杜門洞(두문동) 72인이라고 하여 그들의 忠誠(충성)을 높이 評價(평가)하고 있다. 南乙珍公(남을진공)은 그 후 積城(적성)골의 紺嶽山(감악산)의 남쪽에 있는 석굴에 숨어서 살으셨다. 南乙珍公(남을진공)에게는 조카가 둘이 있었는데 이 조카 둘은 모두 李朝(이조)에 나가서 벼슬을 했다. 李太祖(이태조)는 이 두 사람을 시켜서 南乙珍公(남을진공)을 李朝(이조)로 불러들이려 했으나 公(공)은 忠臣(충신)은 不仕二君(불사이군)이라 하고 李太祖(이태조)의 권유를 돌아보지 안했다. 그래서 李太祖(이태조)는 자기가 친히 그곳에 가서 말이나 해 볼가 하고 사신을 보내여 그 뜻을 전하게 했는데 사신이 그 석굴 있는 데로 올라가려 하니까 갑재기 구름과 안개가 일어나 사방을 가리여 天地(천지)가 캄캄하여 지척을 분간할 수가 없었다. 얼마 후에 하늘이 맑아지고 구름과 안개도 거두어져서 그 석굴에 들어가 보니 公(공)은 어디로 가셨는지 계시지 않아서 사신은 그대로 돌아와서 李太祖(이태조)에게 그대로 復命(복명)했다. 李太祖(이태조)는 使臣(사신)의 이러한 復命(복명)을 들으시고 크게 개탄하시고 公(공)은 아마도 羽化而登仙(우화이등선)하신 것이라 하시고 公(공)이 계시던 석굴에다 南仙窟(남선굴)이라는 大書特刻(대서특각)한 額을 下賜(하사)하시고 그 굴 앞에 있는 山林(산림)을 그 子孫(자손)에게 주시고 閑山里(한산리)라는 동네에다가 旌節祠(정절사)라는 祠黨(사당)을 지어 春秋(춘추)로 祭祀(제사) 지내게 하셨다. 석굴에는 지금도 南仙窟(남선굴)이라고 새겨진 글자가 남어 있다.

1927年(년) 2月(월) 京畿道(경기도) 漣川郡(연천군) 積城公立普通學校(적성공립보통학교) 南相學(남상학)

지식 관계망

Node A Node B Relation Description 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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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석재전집5:남선굴 이태조 mentions A는_B를_언급하다 조선 왕조의 태조 이성계.
임석재전집5:남선굴 남을진 mentions A는_B를_언급하다 고려 후기 참지문하부사, 사천백 등을 역임한 문신. 충신.
임석재전집5:남선굴 감악산 mentions A는_B를_언급하다 37.9411560, 126.9700763
임석재전집5:남선굴 정절사 mentions A는_B를_언급하다 37.9, 127.015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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