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석재전집5:양녕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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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讓寧大君(양녕대)」
작품명 讓寧大君(양녕대)
작품출처 임석재, 『韓國口傳說話. 5 : 京畿道篇』, 평민사, 1989, 52~53쪽
저자 임석재(任晳宰)
구술자 鄭煜
채록장소 경성부 통인동(京城府 安國洞)
채록연월 1943년 5월


개요

본 작품은 양녕대군의 관점에서 쓰여진 충녕대군 세자 책봉에 대한 이야기이다.

내용

讓寧大君은 李朝 三代 王인 太宗大王의 첫재 王子인데 글 잘 하고 글씨 잘 쓰는 王子였다. 일직이 世子에 冊封되였는데 太宗大王이 셋째 王子인 忠寧大君한테 다 王位를 傳하고 싶어하는 생각이 있는 것을 눈치채고 父王의 뜻을 이루게 하기 위해서 일부러 미친 체하고 여러 가지 해괴한 行動을 했다. 그래서 讓寧大君은 世子 冊封이 廢立될 것같이 되었다. 그 동생인 孝寧大君은 讓寧大君이 그렇게 되니까 世子 冊封은 自己 한테 올 것이라고 짐작하고 父王한테 잘뵈려고 몸가짐이며 말씨와 行動을 각별히 조심하고 謹愼하고 글도 열심히 공부했다. 讓寧大君은 孝寧이 떡 줄 놈은 생각도 않는데 김치국부터 먼저 마시는 짓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꼬와서 하루는孝寧을 발길로 걷어차면서 “忠寧을 모르냐.” 했다. 孝寧大君은 그 말을 듣고서야 알아채리고 절에 들어가서 늘 북만 쳤다. 북을 치고 치고 해도 북은 찢어지지 안했다. 그래서 부드러우면서도 찢어지지 않고 질긴 것을 孝寧大君 북가죽이란 말이 생겼다. 讓寧大君은 王位에 뜻이 없어서 한 행동만 거듭하기 때문에 종내는 世子 冊封도 폐립되고 말었다. 자유로운 몸이 되자 京鄕 各地를 두루 돌아다니며 詩興이 일어나면 詩를 지었다. 어떤 절에 가서 지은 詩에 이런 것이 있다. 山霞朝作飯––山에 찐 안개는 아침밥을 짓고 蘿月夜爲燈––덩쿨에 걸린 달은 밤에 燈盞불이 된다 獨宿孤岩下––외로이 서 있는 바위 밑에서 혼자 자니 唯存塔一層––塔은 한 層만 남아 있다. 南大門에 걸려 있는 崇禮門이라는 懸板은 讓寧大君이 쓴 것이라고 한다. 壬辰倭亂 때 이 懸板이 떨어저 읎어저서 다른 사람 글씨로 懸板을 만들어 달았다. 그런데 다른 懸板을 달았더니 떨어저 버렸다. 다시 달면 또 떨어졌다. 몇 번 고처달아도 떨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光海君 때 靑坡 배다리에 있는 웅덩이에 瑞氣가 비처서 그 웅덩이를 파 봤더니 讓寧大君이 親히 쓴 崇禮門의 懸板이 나왔다. 이것을 갖다가 南大門에 달았더니 떨어지지 안했다.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崇禮門의 현판은 그 현판이라고 한다. 훌륭한 사람이 쓴 훌륭한 글씨는 신기한 영검이 있다고 한다.

  • 1943年 5月 京城府 通仁町 鄭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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