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석재전집5:Ont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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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선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3년 10월 7일 (토) 12:33 판 (예시 작품: 漢陽(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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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시 작품: 漢陽(한양)

우리 태조께서 한양에다 도읍을 정하고 무학이라는 중을 시켜서 대궐을 짓게 했다. 그래서 무학은 경복궁을 짓넌데 경복궁을 지어 노면 무너지고 무너지고 해서 할 수 없이 대궐을 딴데다 지어 보려고 대궐 지을 당이 어덴가 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한 곳에 가니까 농부가 소를 몰면서 밭을 가넌데 소가 말을 잘 안 듣고 잘 가지 않으니까 이놈으 소 무학이 같이 미런한 소야 하면서 소를 몰고 있었다. 그래서 무학은 농부보고 무학이가 어째서 미런하느냐고 물었다. 그러니까 그 농부는 한양이라는 터전은 학체로 되여 있는데 그것도 모르고 대궐을 지으니 대궐 지은 것이 무너질 수밖에 없지 않느냐. 학이란 날라가는 새이기 때문에 날개가 움직이면 그 안에 있는 것이 무너지는 것이 뻔한 이치인데 무학은 그 이치도 모르고 일을 始作하고 있으니 미런하기 짝이 없다는 말이다. 대궐을 지으려면 먼저 학이 날지 못하게 날개를 움직이지 못하게 사대문을 지어서 날개를 눌러놓고서 대궐을 지어야 대궐이 무너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무학이 그 말을 듣고 보니 과연 그렇겠다고 하고서 사대문을 지어놓고 대궐을 지었다. 그랬더니 대궐이 무너지지 안했다.
경복궁 대궐을 지어 놓고 그 다음에 종묘를 지었다. 종묘는 28간만 짓고 종묘의 대문에는 창엽문이라는 현판을 써 부쳤는지 수십 세를 지나도 아무도 그 뜻을 몰랐다. 그러다가 광무제 대에 와서야 비로소 그 뜻을 알게 되었다.
이씨 조선왕조는 28세로서 끝을 맺었다. 종묘에 각 조 왕의 위패를 모시는 간수도 28문으로 된 이치도 거기에 있다. 그리고 창엽문이라는 것도 ‘창’ 자는 풀어 보면 十十八君이 된다. 무학은 이렇게 이조의 미래까지도 알아서 공사를 하였다고들 말하고 있다.

  • 1927년 2월 경성부 안국동 朴永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