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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데이터베이스 소개
데이터 목록
개체(Node) 데이터 : 592건
- 인물 데이터(249건) : 여항전기집의 저자와 입전 인물 및 기타 관련 인물들을 정리한 데이터입니다.
- 작품 데이터(127건) : 여항전기집을 포함한 여타 고문헌 자료에 실린 한문 원전들을 정리한 데이터입니다.
- 단체 데이터(070건) : 인물이 소속된 가문 또는 인물이 활동했던 시사, 아회, 악회 등 단체로서의 성격을 갖는 대상들을 정리한 데이터입니다.
- 직계 데이터(044건) : 인물의 관직 및 품계를 정리한 데이터입니다.
- 판본 데이터(040건) : 특정 고문헌 자료의 개별 판본들을 정리한 데이터입니다.
- 저서 데이터(040건) : 개별 판본들을 묶는 단일한 개념으로서의 저서들을 정리한 데이터입니다.
- 관서 데이터(020건) : 인물이 종사한 관서를 정리한 데이터입니다.
- 서화 데이터(002건) : 그림, 편액, 금석문 등의 구체적 실물로서의 자료들을 정리한 데이터입니다.
관계(Edge) 데이터 : 1223건
여항전기집 수록 인물 관계망 예시
그래프 데이터베이스 Neo4j 사용 방법 예시
여항전기집 수록 인물 관계망 데이터 Neo4j 사용 방법 및 예시
연구 내용
연구 배경
19세기 중엽 중인층 작가가 여항인(閭巷人)<ref>'여항인'의 범주에 대해서는 연구자들마다 그 정의를 달리하고 있다. 허경진(1997,42쪽)은 지배층에서 제외된 모든 계층이 곧 위항인이라 하였고, 정옥자(2003, 19쪽)는 ‘중인 이하 상인(평민)과 천민을 포함’하는 계층이라 하였으며, 윤재민(2004, 330쪽)은 여항인이 ‘조선후기에 양반층이 자신을 제외한 여타 부류를 싸잡아 지칭한 데서 연유한 용어’라고 하였다. 논자는 허경진, 윤재민, 정옥자의 주장에 따라 사대부가 아닌 非양반계층을 포괄하는 용어로 여항인에 대한 정의를 전제하고자 한다.<ref>을 대상으로 저술한 독립적 성격의 여항전기집이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호산외사(壺山外史, 1854년 이후) 壺山外史의 서명은 판본마다 다른데, 본고에서는 수경실 소장본 壺山外史의 표제 서명을 따르기로 한다. 이에 대한 구체적 근거는 ‘연구대상 및 방법’에서 후술하였다.
,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 1862년), 희조일사(熙朝軼事, 1866년)가 그것이다. 연구자에 따라서 19세기 중엽 여항전기집의 범주에 조수삼의 추재기이(秋齋紀異, 1830~ 40년대 추정), 진휘속고(震彙續攷, 1844~1862년 추정), 신광현의 위항쇄문(委巷瑣聞, 1858~1862년 추정)을 포함시키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추재기이는 추재집 권7에 해당하는 것으로, 개인 문집의 일부분으로 간행된 것이지 독립적인 전기집으로 편찬된 것이 라 할 수 없다. 또한 전기집의 주요한 목적이 ‘인물’에 초점을 두고 해당 인물의 행적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자 한 것임을 고려할 때, 추재기이는 정사(正史)에 실리지 않은 '이야기'를 중심으로 해당 인물의 일화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기집보다는 오히려 야담집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위항쇄문은 야담, 필기, 시화, 잡록, 패사 등 다양한 성격의 글들이 혼재되어 있고, 진휘속고는 편찬자와 편저자가 밝혀지지 않았으며, 양반층의 기록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두 저서 또한 엄밀하게 여항전기집으로 분류하기는 어렵다고 볼 수 있다.
세 문헌으로 대표되는 19세기 여항전기집에 대한 연구는 주로 개별 작가, 개별 작품론, 편찬의식의 측면에서 이루어져 왔다. 해당 연구들의 대부분은 그와 같은 여항전기집의 편찬 배경을 설명함에 있어서 19세기의 특수한 시대사적 요인이 그 원인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라 언급하고 있다. 예컨대 19세기의 특수한 시대사적 조건으로 거론되는 것 중 하나로 사회적 혼란에 따른 신분제 동요를 들 수 있다. 19세기 중엽 장동 김씨, 풍양 조씨와 같은 소수 가문에 정치적 권력의 집중화 현상이 일어남에 따라 삼정의 문란이 야기되었고, 그 결과 1862년에는 임술민란과 같은 큰 사건이 발생하였다. 정치적 권력의 일원화에 따라 발생한 관료 사회의 부패와 피지배층의 신분적 갈등이 사회적 혼란을 촉발시켰고, 이 와중에 중인들 또한 1851년 통청운동과 같은 움직임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표명함으로써 기존의 신분적 한계를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를 취하였다. 그와 같은 움직임은 중인층의 경제·사회적 성장과 관련이 있다. 경제적 활동을 통해 부를 축적한 중인층은 시사(詩社)를 조직함으로써 양반층과 마찬가지로 그들 또한 고급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계층임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자 하였다. 예컨대, 풍요속선(風謠續選)과 같은 여항인 공동시집의 편찬 목적은 여항인 집단의 문학적 역량을 드러냄과 동시에 양반들과 비교할 시 그들 또한 지적·문화적으로 큰 차이가 없음을 인정받고자 한 시도로 해석가능하다. 이러한 문화 활동과 관련해서 영·정조 시대의 문예부흥으로 인한 문화 활동 반경이 확대된 사실을 짚어볼 수 있다. 영조(英祖, 재위 1724-1776)는 여항인 또는 중인 계층의 활동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으며, 그들의 문화 활동을 지원하였는데, 그 구체적 예로서 서족(庶族)이 청요직에 오를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마련한 것을 거론할 수 있다. 그 뒤를 이어 재위한 정조(正祖, 재위 1776-1800)도 여항인 또는 중인을 대상으로 한 영조의 정책을 계승·확대하는 방향을 취했다. 안대회, 「조선 후기 閭巷文學의 성격과 지향」, 『한문학보』 제29권, 우리한문학회, 2013, 279~280쪽. 18세기 영조에서 정조로 이어지는 조정의 정책적 지원 또한 여항인들의 문예 활동에 영향을 준 요소 가운데 하나로서 수용할 수 있다. 그리고 18-19세기 사상 조류의 변화 또한 당대 사회의 급격한 변화를 이야기함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서학(西學) 전래에 따른 서구문물의 유입과 청나라의 급격한 쇠퇴는 동북아 지역을 중심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아 온 성리학적 질서가 흔들리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뿐만 아니라 명 말부터 확대되기 시작한 양명학의 수용과 그와 맞물려 발생한 천기론(天機論)의 대두 그리고 천주교(西敎)의 확산에 따라 전통적 성리학의 질서에서 탈피하여 주체적 개인을 자각하고 평등을 지향하고자 하는 인식이 점차 확대되어 나갔다. 이러한 여러 요소들이 톱니바퀴처럼 서로 맞물려 거대한 사회적 변화를 초래하던 가운데 중인들을 중심으로 한 여항전기집 저술 및 간행 또한 이루어진 것이다. 19세기 여항전기집의 편찬 배경에 있어서 당시의 여러 시대사적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였다는 서술은 기존 연구들로부터 도출된 내용들을 정리한 결과이다. 18-19세기 조선 사회의 특징적 요소들이 여항전기집 편찬에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데 있어서는 대부분의 연구가 동의하는 바이겠으나, 그 가운데 핵심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입장에 있어서는 개별 연구자마다 차이가 있다. 예컨대 강명관(1997)은 여항 문식층의 형성을, 허경진(1997)은 중인층의 시사 조직 및 활동을, 안대회(2013)와 정옥자(2003)는 영정조 시대의 문예부흥과 여항인들의 자아에 대한 인식을 주요 원인으로 거론하였다. 이와 같이 거대한 시대사적 조류 가운데 새롭게 등장한 문화적 양상의 하나로서 ‘여항전기집 편찬’의 의미를 조망해볼 수도 있겠으나, 한편으로 이전 시대에는 없었던 ‘여항전기집 편찬’이라는 특수한 사건을 제대로 살펴보기 위해서는 해당 문헌들에 담긴 구체적 내용들을 섬세하게 정리해보는 시도 또한 필요하다 판단된다. 실제 개별 전기집 편찬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 짐작되는 단서가 해당 문헌에 반영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볼 경우, 전기집의 중심 소재로 다루어지는 인물들과 저자 사이의 관계 또는 수록된 인물들 사이에 드러나는 특징적인 역학 관계가 여항전기집 편찬 배경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개별 전기집을 대상으로 작가의 편찬의식을 분석한 문학적 성격의 연구들이 은연중 그러한 문제의식을 갖는다고 하겠다. 편찬자의 삶에서 발견 가능한 삶의 특수한 일면이 무엇인지 밝히고, 그로부터 여항전기집을 편찬하게 된 특수한 동기를 부분적으로나마 짐작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문학 방면에서 여항전기집을 대상으로 한 연구들은 대부분 문헌으로서 여항전기집에 담긴 특질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데 주력하였을 뿐, 실제 여항전기집 내부에 담긴 여러 내용을 다각도로 정리해서 그로부터 드러나는 구체적 양상과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적극적으로 살펴보지는 않았다. 그에 대한 이유로 여러 요인을 거론할 수 있겠으나 그 가운데서도 가장 대표적 요인으로, 장르적 시각에서 여항전기집을 바라보는 특수한 경향성을 언급할 수 있다. 한문 문체의 대표적 장르 가운데 하나로서 전기(傳記)는 자료에 담긴 사실로서의 정보보다는 작품의 문학성에 초점을 둔 연구가 주로 이루어져 왔다. 이는 전기의 문체적 특성 때문인데, 그 장르적 기원을 살펴보아도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장르로서 전기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사마천의 사기(史記) 「열전(列傳)」의 경우 기본적으로 역사 서술이지만, 역대로 그 문학성에서 또한 큰 가치를 인정 받아왔음을 알 수 있다. 사실정보 뿐만 아니라 서술자의 주관적인 시각과 과장된 묘사 및 해석 등 작자의 독창적인 문예적 취미(taste)가 함께 반영되므로, 전기는 일정부분 이상 창작의 성격도 포함한다고 하겠다. 여항전기집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그러한 전통적 문체로서의 장르 의식에 기초하여 그것이 내포한 문학성을 밝히는 데 주로 초점을 두고 연구가 이루어져 온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전기는 한 사람의 행적을 기록한 문체로서, 장르적 시각에 입각했을 때 ‘전(傳)’과 ‘기(記)’는 일부 허구적 성격의 요소를 담고 있으나, 실제 주된 목적은 실존했던 인물 또는 인물과 관련된 사건이 멸실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전과 기의 구분적 위상에 대해서는 다음의 논저를 참고할 수 있다. -심경호, 한문산문미학, 고려대학교출판부, 2013년, 274쪽. 전기가 본질적으로 해당 인물에 대한 기억을 확산시키고자 하는 목적성이 강하게 작용한다는 것 신승훈, 「"전(傳)", 역사(歷史)와 문학(文學)의 경계(境界)」, 『동방한문학』, 제67권, 2016, 40쪽.
을 고려할 때 사료(史料)로서의 가치 또한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전기라는 장르적 시각에서 벗어나, 여항전기집을 사료로 보고 그 안에 담긴 내용 가운데 사실로서의 정보들을 정리해서 연구를 시도한 일부 사례들이 있다. 하단의 4가지 연구가 그에 해당한다.
문경호 문경호, 「《이향견문록》을 통해 본 조선후기 중인문화 연구」, 공주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8.
는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을 역사기록으로 수용하고, 입전된 작품을 통해 중인의 생활과 그로부터 드러나는 의식적 특질을 들여다보고자 하였다. 그는 이향견문록이 지닌 사료적 가치를 규명하기 위해 이향견문록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조희룡(趙熙龍)의 호산외기를 대상으로 인용과정에서의 변화를 분석하고, 입전 작품 5편 「유희경전(劉希慶傳)」, 「오효성전(吳孝誠傳)」, 「김지남전(金指南傳)」, 「조생전(曺生傳)」, 「홍순언전(洪純彦傳)」이 이에 해당한다. 과 실제 정사 자료를 비교함으로써 사실 위주의 기록이 담긴 중인 역사서로서 이향견문록이 수용될 수 있음을 주장하였다. 해당 연구의 아쉬운 측면은 상대적으로 표본이 적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연구는 역사적 시각에서 여항전기집에 접근하여 그로부터 유의미한 사실을 이끌어내고자 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권기석 권기석, 「《이향견문록》 수록 인물의 사회계층적 위상과 신분 관념」, 『조선시대사학보』, 72권, 조선시대사학회, 2015, 269~338쪽.
은 유재건의 이향견문록 입전된 인물의 생몰 연대, 활동 시기, 거주지, 신분 등의 정보를 분석하여 위항인의 범주 및 신분적 위상을 확인하고, 서술된 내용을 분석함으로써 위항인 계층의 신분의식이 무엇인지 밝히고자 하였다. 권기석 이전에 이향견문록 입전 인물을 대상으로 출신 신분, 직업, 성별을 분석하여 입전 양상을 살펴본 시도를 한 연구로서 김순용(2003)을 거론할 수 있다. 그러나 해당 연구는 『이향견문록』을 문학작품으로 전제하였다는 측면에서 권기석(2015)의 연구와는 차이가 있다.
문경호의 연구와 마찬가지로 이향견문록에 수록된 작품들로부터 사실 정보를 추출해서 분석을 시도하였다는 점이 주목할만하다. 이향견문록에서 추출한 사실 정보의 진위여부를 여타 자료와의 연계를 통해 검토함으로써 데이터의 엄밀성을 보완하였다면 더욱 섬세한 연구가 가능하였을 것이라 판단된다. 박철상 박철상, 「《이후시금록(以後視今錄)》을 통해 본 조희룡(趙熙龍)의 《호산외사(壺山外史)》」, 『한문학보』, 29권, 우리한문학회, 2013, 299~321쪽.
은 호산외사의 이본 이후시금록(以後今視錄)을 발굴하여 소개하고, 호산외사 저술 배경 및 저술 과정과 입전 기준을 밝혔다. 호산외사의 입전 맥락을 분석한 기존 연구의 경우 조희룡의 교유관계와 그가 친분을 맺었던 인물들을 간단히 언급해 주는 정도에서 입전 근거를 해명하였을 뿐 작품 분석을 통해 드러난 사실 정보를 기타 자료와 연계하여 검토함으로써 구체적 입전 기준이 무엇인지에까지는 도달하지 못하였다. 해당 연구의 주목할만한 점은, 그러한 측면에서 여러 문헌 자료를 검토하고 정리함으로써 호산외사에 입전된 인물들과 관련된 사실 정보를 복합적으로 제시하고, 이를 통해 입전 근거를 보다 명확하게 밝혔다는 사실이다.
홍단비 홍단비, 「호산외기 화가전을 통한 조희룡의 회화관 연구」, 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7.
는 『호산외기』에 실린 6편의 화가전 「최북전(崔北傳)」, 「임희지전(林熙之傳)」, 「김홍도전(金弘道傳)」, 「김영면전(金永冕傳)」, 「이재관전(李在寬傳)」, 「전기전(田琦傳)」. 을 미술사적 사료로 수용하여, 입전 원인을 분석함으로써 조희룡의 회화관을 살펴보았다. 해당 연구의 주목할 만한 지점은 『호산외기』에 서술된 내용뿐 아니라, 조희룡이 유배기간 동안 입전 인물들과 주고받은 편지, 유배 이후 저술한 산문집인 『석우망년록(石友忘年錄)』에 기록된 일화, 그리고 그림의 화제 등을 근거로 조희룡과 입전 화가들이 맺고 있던 관계의 양상을 밝혔다는 점이다. 43명 가운데 6명만을 대상으로 하였으나, 구체적 문헌 자료를 근거로 작가와 입전 인물 사이의 친분 거리를 분석하고, 이를 통해 입전 원인을 살펴보고자 한 첫 시도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위의 4가지 연구는 문학적 관점에서 여항전기집의 성격을 주로 밝히고자 하였던 기존 연구들과 달리, 여항전기집을 사료로 바라보고 그 안에 담긴 내용이 ‘사실’이라는 전제 하에 그것을 정리하고 그로부터 의미를 도출하고자 하였다는 측면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사료로서 전기집을 바라볼 시 ‘사실’로서 정리해야 할 관련 내용의 조각들이 많이 발견되고, 그로부터 전기집 편찬에 영향을 미쳤을 요소들이 무엇인지에 보다 구체적으로 접근해보는 것이 가능하다. 본 연구 또한 그와 같은 맥락의 연장선상에서 여항전기집을 사료로 전제하고 그로부터 추출할 수 있는 여러 사실 정보들을 정리함으로써, 세 여향전기집 수록 인물들의 입전 근거 또는 편찬 과정에 반영되었을 당시 인물들의 교유 관계에 관한 여러 정황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단일 문헌을 대상으로 삼아 상대적으로 표본 범위가 넓지 않고 전기집 외에 여타 자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한 앞서의 연구 사례들의 한계점을 보완하여, 세 여항전기집을 모두 연구 대상으로 삼고, 여타 사료나 족보 및 문집에서 발견 가능한 관련 정보를 디지털 데이터 형식으로 가공함으로써 개별 데이터 간에 어떠한 유의미한 연관성이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고자 한다. 이러한 작업은 선형적으로 서술된 전기집의 내용을 디지털 데이터로 치환해 비선형적으로 재구성해 다각도로 들여다봄으로써, 개별 전기집 편찬에 영향을 미친 당시 인적 네트워크의 구체적 양상이 무엇인지 짚어보고 더 나아가 먼저 간행된 전기집이 후차 편찬된 전기집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구체적 단서를 밝혀보고자 하는 시도이다. 각각의 전기집 편찬에 얽힌 여러 인물들이 당대 여항문화의 주축을 담당하였음을 고려할 때, 이와 같은 접근이 그동안 모호하게 다루어져 왔던 ‘여항인’의 실체를 밝히는 데 일조하고, 19세기 여항문화의 구체적 양상을 파악하는 데 있어서 또한 기여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