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석재전집5:장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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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장」
작품명 장대장
작품출처 임석재, 『韓國口傳說話. 5 : 京畿道篇』, 평민사, 1989, 379~386쪽.
저자 임석재(任晳宰)
구술자 李昌培
채록장소 서울시 능산구 옥수동(서울시 能山區 玉水洞)
채록연월 1978년 9월


개요

본 작품은 장지영 대장의 탄생과 성장 후의 행적을 다룬 이야기이다. 만포첨사(滿浦僉使)가 되어 부임하러 가던 중, 무당을 만나 벌어진 일을 담고 있다.

내용

장지영 대장의 아버지는 농 속, 장안 즉, 서울에 살았다.[1] 장지영 아버지의 이름은 장도령이고 육조판서를 거쳐 정승 지위에 올랐지만, 자식이 없어 매일 슬퍼했다. 부인은 예로부터 자식 없는 사람은 명산대천[2]에 발원을 하면[3] 아들을 얻을 수 있다고 하니 우리도 가보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둘은 명산대천을 찾아가서 발원을 했고 그 후부터 태기가 있어 부인이 열흘 만에 옥동자를 낳았다. 아이는 서너 살부터 말이 청산유수여서 대감이 글자를 가르치니 한 자를 가르치면 열 자를 아는 신동이었다. 장대장은 열세 살 되는 해에 혼인을 했는데, 세월이 흘러 장대장의 부모님이 죽자 집안 꼴이 말이 아니었다. 장대장은 양사꼴[4]로 이거[5]하여 집을 짓고 공부했다. 그런데 살림이 원체 가난하고 수입이 없어 굶는 날이 더 많았다. 수입이라고는 마누라가 남의 집 삯바느질이나 한 품삯이 다였다.

하루는 생쥐가 밥풀을 얻어먹으려고 돌아다니는데 먹을 것이 없어 장대장이 그 생쥐를 잡아먹었다. 이를 본 부인이 “여보 양반이다 하고 공부만 하지 말고 성인도 종시속[6]하랬다고 남과 같이 등짐이라도 져서 구명도생[7]해야 하지 않겠소” 그러니까 양반으로서 부인에게서 이런 말을 듣는 것이 체면이 아니라 생각하고 그 길로 대감집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친구가 만포첨사[8] 한자리를 해주어 장대장이 떠나게 되는데, 홍제원[9]을 당도하니까 앞에 물동이를 이고 가는 갈매치마를 입은 엉덩이가 큰 여자가 보였다. 그 여자의 집은 떡집이었고 장대장은 수작을 부리려고 말을 멈추고 마부에게 “얘 내가 목이 말라 물이나 한 그릇 얻어먹고 올 테니 말 좀 멈추어라.” 말했다. 마부는 물 마시려면 날 시키면 되지 여자 뒤를 따라갈 것까지 없지 않나 하며 수상해했다. 장대장이 여자 뒤를 따라가 떡을 달라며 말을 거는데, 여자의 얽은 얼굴을 보고는 “여보 홍제원 인절미는 눅기가 사발로 퍼먹고 가게 눅다던데 이건 이렇게 단단해서 못 먹겠으니 내가 다녀올 때까지 푸욱 물려 놨다가 날 주시오.”라고 핑계를 대고 다시 마상에 올랐다.

하루종일 가다보니 서산에 해가 져서 주막에 갔다. 근처에서 풍악소리가 들려 주인에게 물으니까 “서울에서는 시월상달이라고 해서 대감놀이 성주바지를 하지만은 시골에서는 일 년에 소가 애썼다고 해서 소굿을 합니다”라고 답했다. 장대장은 굿당에 구경을 갔다가 무당에게 노랫가락을 하라고 청했다. 정신없이 굿을 하던 무당이 ‘시골 굿에서는 노랫가락을 잘 모르는데, 노랫가락은 서울에서나 하는 것인데 웬일이야’하고 마당을 바라보니까 인모망건 앞이 툭 터진 망건을 쓴 양반네가 서서 청하고 있어서 신이 저절로 나서 신세타령을 했다.

무당은 노래하면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장대장에게 수작을 걸었다. 그러니 이번에는 장대장이 창부타령으로 노래를 불렀다. 무당과 장대장은 대화를 이어나가다 이후 서울에다 살림을 차리고 아이도 낳았다. 그런데 아이가 원인 모를 병에 걸려 약을 어떤 약을 써도 듣질 않자 아랫골 사는 곱단이란 무당을 찾아가 길흉을 물었다. 무당은 “이 아이는 신의 몸에서 난 아이가 돼 놔서 저 신당에 가서 큰 굿을 하지 않으면 황천 들어가겠소”라고 말했다. 무당 말대로 할미당에서 굿을 하는데 이때 장대장 부인이 한쪽 구석에 앉아있다가 별안간 벌떡 일어나서 춤을 한참 추다가 푸념을 했다.

굿당의 구석구석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은 부인이 무당보다 공수도 잘 주고 춤도 잘 춘다고 수군거렸다. 그때, 소경이 경을 읽고 있다가 이 여자의 푸념 소리를 듣고는 ‘옳다 저년이 지난번에 나를 망신 준 년이로구나’하고 장대장에게 이르겠다며 노래했다. 장대장 부인은 소경이 과거의 이야기를 남편에게 일러바칠까 봐 두려워 노래를 부르며 이르지 말라고 청했다. 그럼에도 소경이 장대장에게 이르려 하자 장대장 부인은 “사장네 아즈바니 사장네 아저씨 이르지 마오 이르지 마오 이때는 어느 때요 구시월 시단풍에 울 밑에 국화 피고 방방곡곡에 단풍 들고 우리 댁 초립동이 방광하면 우리 집이 빌 테니 그때에 족자병풍 둘러치고 원앙금침 둘이서 비고 어쩌구 저쩌구 하면 새끼장님을 낳더라도 원대로 해줄 테니 장대장보고 이르지 마오”라고 하니 이 말을 들은 장님은 흥이 올라 흥타령을 했다.

  • 1978년 9월 10일 서울시 능산구 옥수동(구 고양군 한지면 두모리) 이창배 66세, 남

지식 관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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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농 속=장안(長安)=서울
  2. 名山大川, 경개 좋고 이름난 산천
  3. 소원을 빌면
  4. 지명, 양사골
  5. 移居
  6. 從時俗, 세상의 풍속대로 따름
  7. 救命圖生, 구차스럽게 목숨을 부지하여 살아
  8. 滿浦僉使, 만포진 첨절제사
  9. 공무로 출장하는 벼슬아치들의 숙박을 위하여 설치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