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의묘
| 숭의묘 (崇義廟) |
|
| 명칭 | 숭의묘 |
|---|---|
| 한문명칭 | 崇義廟 |
| 유형 | 관왕묘 |
| 건립일 | 1903년 |
| 건립 기록 | 『고종실록』 등. |
| 주소 | 알 수 없음 |
| 위도 | 알 수 없음 |
| 경도 | 알 수 없음 |
| 문화재 지정 | 비지정 |
개요
숭의묘는 1903년에 궁내부 특진관 조병식(趙秉式)이 추진하여 세운 것으로, 서묘 또는 서관왕묘로도 취급되었으며 서울 동서남북 사방의 관왕묘들 가운데 가장 마지막에 들어선 관왕묘였다. 서대문 밖에 위치했으며 관우 및 유비, 제갈량, 장비, 마초, 황충, 조운, 관평, 주창, 왕보, 조루 등을 배향하였다. 대체로 관왕묘가 관우를 주존으로 삼고 관평, 주창, 왕보, 조루를 함께 모셨던 데 반해 숭의묘는 촉한 정권의 주요 인물들을 다수 포함했다는 점이 특이하다.
숭의묘는 북관왕묘 및 기타 고종 대에 건립된 여러 지방 관왕묘들과 마찬가지로 관우신앙 및 관왕묘에 대한 국가적 관심이 폭발했던 시기를 배경으로 건립이 추진되었다. 국가의 안위를 기원하고 무신으로서 관우의 힘을 빌고자 했던 고종 이하 왕실의 바람이 깊게 투영된 것이었겠지만, 숭의묘 제례는 채 5년을 가지 못했으며 일제에 의해 국가 의례가 통폐합되는 과정에서 폐지되었다.
현황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크게 훠첼되었고, 현재는 완전히 소실되었다.
관련 기록
지식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