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화소록:연화편
연꽃 | |
편명(한자) | 蓮花 |
---|---|
이칭 | 연화 |
학명 | Nelumbo nucifera |
영명 | Water lily |
과 | 수련과 Nymphaeaceae |
생육상 | 여러해살이물풀 |
개화기 | 7월~8월 |
양화소록 원문&번역
蓮花
<중국에서 유래한 정보들>
爾雅云, 荷芙蕖也, 其莖茹, 其葉荷, 其花菡萏, 其實蓮, 其根藕, 其中的.
『이아』에 이르길, '하'(꽃이 핀 연의 모습)는 '부거'라고 한다. 그 줄기는 '여'라고 하고, 그 잎을 '하'라고 하고, 그 꽃을 '함담'이라 하고, 그 열매는 '연'이라 부르고, 그 뿌리는 '우'라고 하고, 그 씨를 '적'이라고 한다.
○周濂溪愛蓮說曰, “予獨愛蓮出淤泥而不染, 濯清漣而不妖, 中通外直. 不蔓不枝, 香遠益清, 亭亭淨植, 可遠觀而不可褻翫焉. 蓮花之君子也.”
주렴계의 <애련설>에서 말하길, “나는 특히 연꽃을 사랑한다. 연꽃은 진흙탕에서 크지만 그 진흙탕에 물들지 않고, 자기를 씻어 맑게 빛나며 잔잔하여 요사스럽지 않다.(맑은 잔물결에 흔들림을 맑은 물에 씻는다는 문학적인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음) 줄기 가운데는 비어 있고, 겉은 곧으며, 넝쿨도 내지 않고, 가지도 나누지 않는다. 향은 멀리 갈수록 더욱 맑으며, 곧고 깨끗하게 자라, 가히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옳지 않은가, 어찌 가까이 두고 즐기겠는가. 연꽃은 꽃 중의 군자라고 할 수 있다.
○曾端伯以蓮花為淨友.
증단백은 연꽃을 일러 '정우 - 깨끗한 벗'이라고 하였다.
○種蓮法. 蓮須以牛糞壤地, 以立夏前三兩日, 掘藕根取節頭, 著泥中種之, 當年即便開花. ○又法, 五月二十日, 移深種蓮柄長者, 以竹枝子扶之, 無不活.
연꽃을 심는 법에서는 연꽃은 모름지기 쇠똥을 땅에 두었다가 입하 2~3일 전에 연의 뿌리를 캐어 그 꼭대기 부분을 가져다가 진흙에 심으면 확실히 그 해에 바로 꽃이 피어난다고 하였다.
○又法, 五月二十日, 移深種蓮柄長者, 以竹枝子扶之, 無不活.
또 다른 방법으로, 5월 20일 연꽃의 줄기가 긴 것만 깊숙이 옮겨 심고, 대나무 가지로 대어 놓으면 살아나지 못하는 것이 없다고 하였다.
○又法, 初春掘根三節無損處, 種泥深令到硬土, 當年有花.
또 다른 방법으로, 이른 봄 흠집이 없는 뿌리를 세 마디 정도 파내어, 진흙 깊이 단단한 곳에 닿을 정도로 깊이 심으면 그 해에 꽃이 있게 된다고 한다.
○種蓮子, 八九月取堅黑子, 瓦上磨尖直皮薄, 取墐土作熟泥, 封如三指大長二寸, 使蔕頭平重, 磨處尖銳, 泥欲乾時, 擲水中, 重頭即下向, 薄皮向上, 易生. 不磨卒不生.
연꽃 씨앗을 심을 때는, 8~9월에 단단한 검은 씨를 골라 기와 위에 놓고, 씨의 뾰족한 위 부분을 갈아 껍질을 얇게 만든다. 도랑가의 흙을 취해 진흙을 숙성 시키고, 손가락 세 개의 굵기에 두 마디 길이 정도로 덮고, 씨앗의 꼭지 쪽을 평평하게 누르고, 갈았던 쪽은 뾰족하고 날카롭게 간다. 진흙이 마르려고 할 때, 물 가운데로 던지면, 무거운 머리가 곧 아래로 향하게 되고, 껍질이 얇아진 쪽은 위를 향하게 된다. 그러니 또한 살아난다. 갈지 않은 것은 살아나지 못한다.
<강희안이 쓴 이야기>
凡子皆倒著帶上, 故根自上頭尖處出, 蓮子根不先出, 莖葉自下頭出, 下頭即蔕頭也. 使蔕頭平重之說, 恐非是矣.
무릇 모든 씨눈은 모두 씨앗 위쪽에 거꾸로 있으므로 당연히 뿌리는 위의 뾰족한 꼭대기로부터 돋아난다. (살아난다) 연의 씨앗에 뿌리가 먼저 나오지 않고, 줄기와 잎이 아래 머리 부분에서 나온다. 아래 머리는 곧 꼭지의 머리 부분이다. 꼭지의 머리를 평평하고 무겁게 한다는 말은 의심컨데 옳지 않은 것 같다.
○花木忌云, “蓮花最怕桐油, 就池以手搯去荷葉中心, 滴桐油數點入其中, 滿池皆死.”
화목이 싫어하는 것에 이르길, 연꽃은 오동나무 기름을 가장 두려워 한다고 한다. 연못에 가서 연꽃 잎을 제거하고, 그 줄기의 중심인 빈 곳에 오동나무 기름을 몇 방울 떨어 뜨리면 연못에 가득한 연꽃이 모두 죽게 된다고 하였다.
凡種蓮, 紅白不宜并植, 白盛則紅必殘, 一池內須作隔分種. 種法須依古方, 但不拘節日耳.
무릇 연꽃을 심을 때에는 붉은색과 흰색을 나란히 심지 말아야 한다. (예를 들자면) 흰색이 채워지면 곧 붉은색은 반드시 손상된다. (그 반대도 성립된다) 하나의 연못 안에 모름지기 종을 구분하여 간격을 띄워 심어야 한다. 종법은 마땅히 옛 방법을 따라야 하나, 절기에 꼭 구애 받지는 않아도 된다. 도성 안에 한 줌의 흙/한 치의 땅도 한 조각/마디의 금과 같은데, 어찌 연못을 꼭 파내야 하는가? 다만 큰 옹기 두 개를 구해 홍백의 씨를 나누어 심으면 가히 충분하다.
분재
城中寸土如寸金, 豈宜鑿池, 只得大甕二事, 分種紅白, 乃可. 種蒔悉去旁根, 勿令荷柄雜擾, 雜擾花不開. 始氷藏瓮陽處, 不使凍破, 明春取去, 開花盆盛. 若重不能轉, 掘去宿根, 空其瓮, 明年改盛, 亦可.
씨앗을 옮겨 심을 때 뿌리 곁은 모두 버려 연꽃의 줄기를 어지럽게 섞이게 하지 않아야 한다. (줄기가) 뒤섞여 어지럽게 되면 꽃이 피지 않는다. 얼음이 얼기 시작하면 옹기를 (실내로 가져와) 볕이 드는 곳으로 옮겨 동파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다음에 봄이 와서 다시 가지고 나오면 옹기에 담긴 꽃이 피게 된다. 만약 무거워 옮기기 어렵다면, 묵은 뿌리를 꺼내고, 그 옹기를 비워 그 다음 해에 다시 담는 것도 좋다.
埋瓮與地面差高, 瓮口須要廣闊, 兼種菰蒲蘋藻之類, 亦放小魚五六尾, 以為池沼之形.
옹기를 묻을 때는 지면보다 높게 한다. 옹기는 모름지기 그 입구가 넓고 트여있는 것으로 구해야 한다. 향초, 부들(창포), 개구리밥, 말과 같은 류의 물풀을 함께 넣고, 또한 작은 물고기 대여섯마리를 함께 놓아 연못의 모양새가 되도록 한다.
○人生一世, 汨沒聲利, 薾然疲役, 至於老死而不已, 果何所為哉. 縱不能掛冠拂衣, 逍遙於江湖之間, 公退之暇, 每遇清風明月, 蓮荷香溢, 菰蒲影飜, 亦有小魚潑潑於蘋藻之際, 開襟散步, 哈哦徙倚, 身雖拘繫名韁, 亦足以神遊物表, 暢敍情懷矣.
사람이 태어나 한 생을 살아갈 때, 명성과 이익에 몰두하여 고군분투하여 일하고, 늙어 죽을 때까지 그치지 못한다면, 과연 어떤 삶을 산 것인가? 벼슬의 갓과 옷의 먼지를 털어 버리고 강과 호수 사이에서 거닐지 못 하더라도, 일하는 와중에도 틈을 내어 (일상과 멀어져) 자주 청풍명월을 만나 연꽃의 향기가 가득하고, 향초와 부들의 그림자가 나부끼고 또 작은 물고기가 개구리밥과 말풀 사이에서 파닥거리는 장면을 마주할 때, 옷깃 (마음)을 풀고 거닐며 “합아사의”가볍게 읖조리며 걸음을 옮기다 보면, 몸은 비록 매어 있지만, 정신은 만물 밖에서 즐겁게 거닐며 마음에 품은 것들을 차례차례 펼 수 있어진다.
古人云, “振轡於朝市, 則充屈之心生, 閒步於林野, 則寥落之意興.”
옛 사람이 이르길, 조정과 시장에서 고삐를 쥐고 흔들면 곧 욕심과 (배가 나온 모습) 답답해하는 마음이 생겨나고, 숲과 들판을 걸으며 한가로이 살면 곧 쓸쓸하고 침잠하여 생각에 잠기게 된다. (충굴하면 좋아보이긴 하지만 답답함이 생기나, 대신 임야로 가면 잡다한 것이 사라지고 텅빈 상태가 되는, 치유가 되는, 깨끗한 상태로 돌아가게 된다.)
是知人之一心, 與地變遷, 莫知其嚮矣. 故守道養德之士, 厭繁擾喜閑曠, 優遊自怡, 不為牽縶, 古今一致, 此則難與俗士論說也.
사람의 마음은 어느 곳에 있는 지에 따라 변하고 움직이기 때문에 그 방향을 알지 못하고 저물어버리기도 한다. 예로부터 이치를 지키고 덕을 기르는 선비가 번잡하고 어지러운 것을 싫어하고, 한가하고 너른 것을 좋아하여 한가롭게 놀고, 스스로 즐기고 고삐를 쥐고 끌지 않으려고 하였고,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그렇기에 곧 속된 선비와는 이야기 하기가 어렵다.
연화편에 나오는 인용문
인용 | 문헌명 | 이칭 | 시대 | 저자 | 비고 |
---|---|---|---|---|---|
이아 | 석초13 |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사전 | |||
애련설 | 송나라 | 주렴계(주돈이) | |||
증단백 | |||||
종수물법 | 거가필용사류전집 |
연꽃을 키우는 요즘의 강희안들
- 미니 연꽃 키우기
- 유투브 알고리즘 따라 다른 연꽃 분재 영상도 보세요.
더 읽을 거리
시맨틱 데이터 & 스토리 텔링
증단백은 연꽃은 깨끗한 벗 '청우'라 하였고, 주돈이는 <애련설>을 통해 연꽃을 예찬하였다.
조선후기 문신 홍석모가 연중행사와 풍속들을 정리하고 설명한 풍속지인 <동국세시기>에는 다음과 같은 언급이 있다.
"6월에 한양에서는 천연정의 연꽃을 보러 산보객이 많이 모인다."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그를 비롯해 채홍원, 정약전, 한치응, 이유수 등의 15인의 남인관료들과 함께 '죽란시사'라는 문예 창작 모임을 결성했다. 정약용의 <여유당전서>에 실린 <죽란시사첩 서>에는 다음과 같은 언급이 있다.
"살구꽃이 막 피면 한 번 모이고, 복숭아꽃이 막 피면 한 번 모인다. 한여름에 참외가 익으면 한 번 모이고, 막 서늘해지면 서지(西池)에서 연꽃 구경하러 한 번 모인다. …모일 때마다 술과 안주, 붓과 벼루를 장만하여 술을 마시고 시를 읊도록 한다."
강희안(姜希顔, 1419~1464)은 그의 저서 <양화소록>에서 이아에 나온 연꽃에 대한 설명, 주렴계(주돈이)의 애련설, 증단백의 '정우', 옮겨심는 법 등 중국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이어서 연꽃을 기르는 법에 대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설명한다. 또한 연꽃을 분재한 작은 연못을 두고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썼다.
"사람이 태어나 생을 살아감에 있어, 명성과 이익에 몰두하여 고군분투하고, 늙어 죽을 때까지 그치지 못한다면, 과연 어떤 삶을 산 것인가? 벼슬의 갓과 옷의 먼지를 털어 버리고 강과 호수 사이에서 거닐지 못 하더라도, 일하는 와중에도 틈을 내어 자주 청풍명월을 만나 연꽃의 향기가 가득하고, 향초와 부들의 그림자가 나부끼고 또 작은 물고기가 개구리밥과 말풀 사이에서 파닥거리는 장면을 마주할 때, 옷깃을 풀고 가볍게 읖조리며 걸음을 옮기다 보면, 몸은 비록 매어 있지만, 정신은 만물 밖에서 즐겁게 거닐며 마음에 품은 것들을 차례차례 펼 수 있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