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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해인사-종합안내판/개별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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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해인사
Haeinsa Temple, Hapcheon
합천 해인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합천 해인사
영문명칭 Haeinsa Temple, Hapcheon
한자 陜川 海印寺
주소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122
지정번호 사적 제504호
지정일 2009년 12월 21일
분류 유적건조물
수량/면적 56,469㎡
웹사이트 합천 해인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1. 종합안내판

법보종찰(法寶宗刹) 해인사는 불보사찰(佛寶寺刹) 통도사, 승보사찰(僧寶寺刹) 송광사와 더불어 한국의 삼대 사찰로 꼽힌다. 해인사는 한국 화엄종의 근본 도량이자 우리 민족 믿음의 총화인 팔만대장경을 모신 사찰이다. 해인사는 신라시대에 화엄종의 정신적인 기반을 확충하고 선양한다는 기치 아래, 이른바 화엄십찰(華嚴十刹)의 하나로 세워진 가람(伽藍)이다. 화엄종의 근본 경전인 화엄경은 4세기 무렵 중앙아시아에서 성립된 대승경전의 최고봉으로서, 본래 이름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며 동양문화의 정수라고 일컬어진다. 이 경전에 해인삼매(海印三昧)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해인사 이름은 바로 이 ‘해인삼매’에서 비롯되었다. 해인삼매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한없이 깊고 넓은 큰 바다에 비유하여, 거친 파도 곧 중생의 번뇌 망상이 비로소 멈출 때 우주의 갖가지 참된 모습이 그대로 물속에(海) 비치는(印) 경지’를 말한다.

이러한 정신을 바탕으로 해인사는 해동 화엄종의 초조(初祖) 의상대사의 법손인 순응(順應)과 그 제자인 이정(理貞)이 신라 애장왕 3년(서기 802) 10월 16일에 왕과 왕후의 도움으로 지금의 대적광전 자리에 창건하였다. 이에 화엄종은 해인사를 중심으로 희랑대사를 위시하여 균여(均如), 의천(義天)과 같은 빼어난 학승들을 배출하였다. 해인사는 한국불교의 성지이며 또한 세계문화유산인 해인사 장경판전 및 세계기록유산인 팔만대장경을 비롯해 반야사 원경왕사비, 건칠(乾漆) 목조희랑대사상, 영산회상도, 청량사 석조석가여래좌상과 삼층석탑 등 국보, 보물 70여점이 있으며, 중요민속자료인 광해군 내외 및 상궁 옷 등 많은 문화유산을 소장하고 있다.

2. 개별안내판

해인사는 서기 802년(신라 애장왕 3년)에 순응, 이정 두 스님이 창건하였다. 해인사의 이름은 화엄경의 ‘해인삼매(海印三昧)’에 기초하였다고 전해진다. 해인삼매는 바다에 풍랑이 그치면 모든 형상이 온전히 비치듯이 법계의 실상을 본래 모습 그대로 자각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해인사는 창건 이래 우리나라 화엄종의 근본 도량이었으며 현재는 대한불교 조계종이 지정한 최초의 총림(叢林, 선원ㆍ강원ㆍ율원을 모두 포함한 종합 수행도량)으로 운영되고 있다. 특히, 고려팔만대장경판을 봉안하고 있어 불법의 큰 보배가 현전하는 법보종찰로 유명하다. 유네스코는 해인사에 보관된 고려팔만대장경의 고유한 역사ㆍ문화적 가치를 인정하여 1995년 장경판전을 세계문화유산으로, 2007년 대장경 경판을 비롯한 해인사의 모든 경판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였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1. 종합안내판

해인사는 부처님의 가르침인 경전을 모시고 있는 법보종찰이자 많은 문화유산을 소장하고 있는 한국 불교의 ‘성지’이다. 석가모니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불보사찰 통도사, 16명의 고승을 배출한 승보사찰 송광사와 더불어 한국의 삼대 사찰로 꼽힌다.

해인사라는 이름은 화엄경에 나오는 ‘해인삼매’라는 구절에서 비롯되었다. 해인삼매는 큰 바다로 비유할 수 있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 속에서 중생의 번뇌와 망상이 멈추고 참된 모습이 비치는 경지를 이른다.

해인사는 해동 화엄종을 일으킨 의상대사의 사상을 그대로 이어받은 승려 순응과 그의 제자인 이정이 왕실의 도움을 받아 802년에 창건하였다. 이후 고려 건국에 도움을 주었다고 하는 희랑대사가 930년 경에 중창하였고, 1481년에서 1490년 사이 왕실의 후원 하에 현재 규모로 확장되었다.

해인사는 임진왜란 중에도 승병 및 의병들의 활약 덕분에 피해가 없었다. 그러나 1695년부터 1871년 사이에 발생한 총 7차례의 화재로 대다수 건물들의 소실과 중건을 반복해야 했다. 또 한국전쟁 중인 1951년 폭격 위험에 처했다가 조종사 김영환 대령의 결단으로 위기를 넘기기도 하였다.

해인사에 모셔져 있는 팔만대장경은 고려시대에 깊은 불심을 바탕으로 몽골의 침입을 이겨내고자 하는 염원을 담아 만든 불교 경전 목판이다. 조선시대에 해인사로 옮겨온 이후 지금도 인출이 가능할 정도로 양호한 상태로 보전되어 왔으며, 2007년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경판이 보관되어 있는 장경판전도 199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외에도 해인사에는 국보와 보물 70여점을 비롯해 중요민속자료인 광해군 내외와 상궁의 옷 등 많은 문화유산이 소장되어 있다.


2. 개별안내판

해인사는 802년 순응과 그의 제자인 이정이 창건하였다. 절의 이름은 화엄경에 나오는 ‘해인삼매’라는 구절에서 비롯되었다.

현재의 건물들은 대부분이 조선 후기에 있었던 7차례의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다가 중건한 것들이다.

해인사는 2007년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고려대장경판을 모시고 있어 불법의 보배를 전하는 ‘법보종찰’로 유명하다. 이외에도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장경판전을 비롯해 국보급 문화재가 많이 소장되어 있다.

현재 대한불교 조계종에서 지정한 종합 수행도량(총림)으로써, 승가대학과 성보박물관을 비롯해 산사에 머물면서 한국 전통 문화와 불교의 수행 정신을 배울 수 있는 템플스테이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 대장경판 이전 년도 확인 필요 -> 현재 해인사 홈페이지 기록 중 실록 근거 정보로 기입 (1399년 정종 실록에 해인사에 소장되었다는 내용이 보임)
  • 템플스테이(선림원) / 성보박물관 / 팔만대장경연구회 / 승가대학 운영 중임.
  • 삼보사찰 : 통도사는 신라의 자장(慈藏)이 646년에 창건하면서 당(唐)에서 가지고 온 불사리(佛舍利)를 봉안함으로써 불보사찰(佛寶寺刹)이 되고, 해인사는 1398년(태조 7)에 강화도 선원사(禪源寺)에 있던 고려대장경을 옮겨와서 보관하고 있으므로 법보사찰(法寶寺刹)이 되고, 송광사는 국사(國師)의 칭호를 받은 16명의 고승을 배출함으로써 승보사찰(僧寶寺刹)이 됨.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