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 성산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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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9년 11월 27일 (수) 01:21 판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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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 성산산성
Seongsansanseong Fortress, Haman
"함안 성산산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함안 성산산성
영문명칭 Seongsansanseong Fortress, Haman
한자 咸安 城山山城
주소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광정리 569
지정번호 사적 제67호
지정일 1963년 1월 21일
분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곽
시대 삼국시대
수량/면적 227,821㎡
웹사이트 "함안 성산산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성산산성은 함안 성산(139.4m) 정상 부분에 있는 산성이다. 성벽의 윗부분이 많이 허물어져 흙과 돌을 섞어 쌓은 것처럼 보이나, 1991년부터 4년간 진행되었던 발굴조사에서는 납작하게 다듬은 모난 돌들을 수직에 가깝게 쌓아 올린 것이 확인되었다. 규모는 면적 227,821㎡, 전체 길이가 1.4km로, 성벽은 안쪽의 작은 분지를 감싸면서 높은 곳을 따라 쌓았는데 그 모양은 남북이 길고, 동서가 짧은 타원형이다. 동쪽과 남쪽, 서쪽의 성벽에서 성문터가 발견되었고, 성의 안쪽에는 물을 저장하던 시설과 건물터 네 곳 정도가 확인되었다.

성산산성은 『여지도서*』와 『함주지**』에 가야고성(加耶古城)으로 기록되어 있다. 성산에 얽힌 전설에 따르면 아라가야가 신라에 점령되었을 때 신라군에 맞서 싸우던 장군이 전쟁에 진 것을 원통해 하며 울면서 성산으로 들어갔는데 그 뒤부터는 장군을 본 사람도 없고 장군의 행적이나 사후의 흔적도 없었다고 한다. 이처럼 성산산성에는 신라와의 전쟁에서 진 아라가야 장군의 슬픈 이야기가 전한다.

성산산성을 발굴할 때 목제품, 과일의 씨와 함께 신라 시대 유물인 신라 기와, 깨진 토기 조각이 나왔다. 또한 700년 전의 연꽃 씨앗도 출토되었는데, 그 싹을 틔운 것을 ‘아라홍련’이라 한다. 동문 터 안쪽에서는 300여 점의 목간(木簡)이 출토되었는데, 이 목간들은 산성의 역사뿐만 아니라 우리 고대사를 새롭게 밝혀줄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이다.


  • 『여지도서(輿地圖書)』 : 영조 33년에서 41년(1757~1765)에 각 읍에서 편찬한 읍지(邑誌)를 모아 책으로 만든 전국 읍지.
  • 『함주지(咸州誌)』 : 선조 20년(1587)에 정구(鄭逑)가 편찬한 함안군 읍지. 가장 오래된 읍지의 하나이다.

서문지

서문지는 성산산성의 서남쪽 성벽에 위치하고 있고, 백산마을 사람들이 산성으로 오르내리는 이용하는 출입구로 이용되었다. 서문지의 발굴조사는 15차(2010년), 16차(2012년) 두 차례에 걸쳐 가야문화재연구소에 의해 실시되었다.

발굴조사결과 서문지 및 서성벽은 성벽 축조 이전의 구지표면을 ‘L’자형으로 굴착하여 성벽을 조성하고, 성벽 내부에 사질점토를 다져 보축(補築)하였다. 서문지는 바닥에 박석이 정연하게 깔려 있고, 양 측벽에 붙어서 초석으로 추정되는 2개의 편평석이 확인되어 신라 산성에서 주로 확인되는 현문(懸門)식으로 조성되었다고 추정된다. 그리고 성문 외부에는 출입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출입시설로 추정되는 원형(原形)의 석축시설이 확인되었다.

유물은 당초문·보상화문 암막새, 연화문 수막새 등의 기와류가 다량 수습되었다.

남문지

남문지는 성산산성의 남쪽 성벽에 위치하고 있고, 괴항마을 사람들이 산성으로 오르내리던 출입구로 이용되었다. 남문지의 발굴조사는 1991년 전 창원문화재연구소(현 가야문화재연구소)에 의해 실시되었다.

발굴조사결과 남문지는 후대 개축으로 인해 초축 시 양상은 명확하지 않으나 바닥에 박석이 정연하게 깔려 있고, 양측벽에 붙어서 초석으로 추정되는 2개의 편평석이 확인되어 신라 산성에서 주로 확인되는 현문(懸門)식으로 조성되었다고 추정된다.

유물은 남문지 부근에서 귀면와(鬼面瓦), 막새 등 기와류 25점이 수습되었다.

영문

Seongsansanseong Fortress, Haman

Seongsansanseong is an oval stone fortress encircling the summit of Jonamsan Mountain. It is presumed to have been built in the mid-6th century by the kingdom of Silla (57 BCE-935 CE). It measures 1.4 km in perimeter.

Through a series of excavation surveys, gate sites were found in the eastern and southern sections of the fortress, as well as a water storage site and several building sites inside the fortress. Excavated artifacts include roof tiles, pottery shards, and fruit seeds. In particular, a total of 245 wood slips recording various official posts and geographical names of Silla were found from the eastern gate site.

West Gate Site

The site of the west gate has been used by the residents of the neighboring Baeksan Village as a pathway to Seongsansanseong Fortress.

Excavations conducted in 2010 and 2012 revealed various aspects of the gate's construction and design.

The gate's foundation and adjacent walls were made by preparing the basic shape of the gate foundation by digging up the ground, then lining the sides of the opening with stone slabs, filling the empty space with roughly hewn stone bricks, and reinforcing the wall with layers of a sand-clay mixture. It is presumed that the gate was accessed with a stone ladder.

Artifacts excavated near the west gate include various roof tiles such as concave and convex roof-end tiles decorated with scroll, floral medallion, and lotus designs.

South Gate Site

The site of the south gate has been used by the residents of the neighboring Goehang Village as a pathway to Seongsansanseong Fortress.

Excavation of this site was conducted in 1991. Two layers of stone walls were found around this site, suggesting that the south gate was reconstructed or repaired after its first construction.

The sides of the foundation were lined with stone slabs, and the empty space between them was filled with roughly hewn stone bricks.

It is presumed that the gate was accessed with a stone ladder.

Artifacts excavated near the south gate include various roof tiles such as roof-end tiles and tiles with a demon design.

영문 해설 내용

성산산성은 조남산의 정상부를 둘러싼 타원형의 석성이다. 6세기 중엽 경 신라에 의해 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 길이는 1.4km이다.

발굴조사 결과 동쪽과 남쪽에서 성문터가 발견되었고, 성 안에서는 저수시설과 건물터도 확인되었다. 기와, 토기편, 과일씨 등의 유물들이 출토되었으며, 특히 신라의 관직명과 지명이 기록된 245점의 목간이 동문터에서 발견되었다.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