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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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0년 5월 21일 (목) 11:44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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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역지
Geumjeongyeok Post Station Site
대표명칭 금정역지
영문명칭 Geumjeongyeok Post Station Site
한자 金井驛址
주소 충청남도 청양군 화성면 용당리 용곡 일원
지정번호 청양군 향토유적 제14호
지정일 2018년 1월 12일



해설문

국문

역(驛)은 관리 인원을 두고 국가의 명령과 공문서의 전달, 공무(公務)로 인한 여행자에 대한 필마(匹馬)제공 및 숙식, 중요 군사정보 전달 등을 담당하였다. 이러한 역제(驛制)는 삼국시대부터 있어 왔지만 전국적 규모로 역이 설치된 것은 고려시대이고 조선시대에는 고려의 제도를 계승하면서 한양을 기점으로 역로망을 형성, 발전시켰다. 조선시대에 충청도는 좌도와 우도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금정도(金井道)는 우도에 속한 대표적인 역도(驛道)로 금정역(金井驛)을 포함하여 9개 의 역을 관할하였다. 금정도는 청양군 남양면 금정리에 소재하였는데, 1614년(광해군 6)에는 ‘충청우도 중 시흥도’를 통합하면서 현재의 화성면 용당리 용곡으로 위치를 옮기게 되었다. 현재 용곡 마을 상당수가 당시 금정역으로 활용되었다고 전해진다. 금정역에는 종6품인 찰방(察訪)을 파견하여 관리하였는데 1795년(정조 19) 정약용이 금정역 찰방으로 약 6개월 간 재임하였다. 재임기간 중에는 6개월간의 생활을 기록한 일기인 『금정일록(金井日錄)』을 남겼다. 금정역 찰방은 1895년 역원제도가 폐지되면서 사라지게 되었고, 현재는 용당리 입구에 ‘금정도찰방 비석군이’이 자리하고 있다.

영문

Geumjeongyeok Post Station Site

A post station was a regional center of logistics and communication which together with many others formed a large network responsible for the delivery of state orders, official documents and urgent military information, reception of foreign envoys, and transportation of goods. Post stations also provided accommodation and horses to government officials traveling on duty. It is said that stations like these first appeared in the 5th century during the Three Kingdoms period (57 BCE-668 CE). During the Joseon period (1392-1910), there was a nationwide network of post stations, which was replaced in 1895 with a modern communication system.

The whole area of today’s Yeonggok Village was once occupied by the Geumjeongyeok Post Station. It had nine of the 27 post stations of West Chungcheong-do Province under its jurisdiction and was managed by a post station circuit inspector. In 1795, one of the greatest thinkers and reformers of the late Joseon period, Jeong Yak-yong (1762-1836), served as circuit inspector of this post station for six months. Jeong wrote about the details of his daily life at this post station in his journal (Geumjeong illok).

영문 해설 내용

역은 국가의 명령과 공문서를 전달하고, 긴급한 군사정보를 전달하며, 외국 사신을 영접하고, 물자의 전송을 담당하던 교통통신기관이다. 정부 관리들이 공무를 수행하기 위해 여행할 때, 이곳에서 숙박하거나 말을 빌려 탈 수도 있었다. 한국에서 이러한 제도는 삼국시대인 5세기 경에 처음 시작된 것으로 전해지며, 조선시대에는 수도인 한양을 중심으로 전국적인 역로망을 형성하였다가, 1895년 근대통신수단이 도입되면서 폐지되었다.

현재 용곡마을 일대는 조선시대에 금정역이 있던 곳이다. 금정역은 당시 충청우도에 있던 27개의 역 중 9개를 관리하던 곳이었으며, 찰방이라는 지방 관리가 파견되어 역의 운영을 감독하였다.

조선 후기 최고의 학자이자 개혁사상가였던 정약용(1762-1836)이 1795년 금정역의 찰방으로 부임하여 약 6개월간 재임하였으며, 이때의 생활을 기록한 일기인 『금정일록(金井日錄)』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