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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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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연서원
회연서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회연서원
한자 檜淵書院
주소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동강한강로 9 (신정리)
지정번호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1호
지정일 1974년 12월 10일
분류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서원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회연서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서원은 유학을 가르치던 사설교육기관으로 조선 시대 중기 이후 설립되었다. 회연서원이 위치하고 있는 곳은 선조 16년(1583)에 한강 정구(寒岡 鄭逑, 1543~1620)가 회연초당을 세우고 인재를 양성하였던 곳이다. 정구는 조선 시대의 학자, 문신으로, 외증조 김굉필의 도학을 전수하고 그 기반 위에 퇴계학과 남명학을 통합하여 새로운 학통을 세워 실학의 연원을 확립하였다. 공조참판, 대사헌 등을 역임하였고,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인조 5년(1627)에 유림들이 정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회연초당이 있던 자리에 회연서원을 세웠다. 숙종 16년(1690)에 왕으로부터 ‘회연’이라는 이름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고종 5년(1868) 흥선대원군의 서원훼철령으로 헐렸다가, 1974년에 복원되었다.

회연서원의 건물은 교육 공간인 강당, 정구의 위패를 모신 사당,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서재,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인 전사청(典祀廳), 유물을 전시한 숭모각(崇慕閣), 지역 선대 유학자의 위패를 모신 향현사 등이 있다. 그 밖에 정구가 직접 조성한 앞뜰인 백매원에는 신도비가 서있다.


  • 사액서원 : 조선시대 왕으로부터 서원 이름이 적힌 현판과 노비, 서적, 토지 등을 하사받아 그 권위를 인정받은 서원이다.
  • 신도비 : 2품 이상의 벼슬을 지낸 사람의 행적을 기록하여 무덤 근처에 세우는 비를 말한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서원은 조선시대에 설립된 사설교육기관으로, 선현 제향과 교육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회연서원은 조선 중기의 대학자 중 한 사람인 정구(1543-1620)를 기리기 위해 지역 유림들이 1627년에 건립한 서원이다. 이곳은 본래 정구가 후학 양성을 위해 세운 서당인 회연초당이 있던 자리로, 현재 서원의 앞뜰도 정구가 직접 조성했다고 한다.

정구는 성리학뿐만 아니라 의약, 역사, 천문, 풍수 등 다양한 분야에 박학하였으며, 관직에 연연하지 않고 학문에 전념하면서 후학을 양성하는 일에 힘썼다.

회연서원은 1690년 사액을 받으며 국가로부터 토지와 노비 등을 하사받았다.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월철폐령으로 건물 대부분이 철거되었다가, 1974년 문화재 지정 이후 점차 복원되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경내에는 강당, 사당,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 제사 준비 공간인 전사청, 지역 유학자들의 위패를 보신 향현사 등의 건물이 있다. 강학 공간인 강당을 동쪽에 두고, 제향 공간인 사당을 서쪽에 배치한 구조로 되어 있다.

정문 역할을 하는 문루 왼편에는 정구의 신도비(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12호)가 있다. 이 신도비는 1633년에 처음 세워졌고, 1668년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다. 신도비의 비문은 신흠(1566-1628)이 지었고, 김세렴(1593-1646)이 글씨를 썼다.

  •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 숭모각은 1984년에 새로 지어진 것이다.
  • 정구가 앞뜰에 매화나무 100그루를 심고, 이름을 ‘백매원’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현재 심어져 있는 나무 중 실제 정구가 심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수령이 오래된 나무는 4그루 뿐이라고 함)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