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안대군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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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안대군 묘
Tomb of Prince Hoean
회안대군묘”, 쏠쏠한 일상, 네이버 블로그, 2013.08.29.
대표명칭 회안대군 묘
영문명칭 Tomb of Prince Hoean
한자 懷安大君 墓
주소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금상동 59-5
지정(등록) 종목 시도기념물 제123호
지정(등록)일 2005년 12월 16일
분류 유적건조물/무덤/무덤/봉토묘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2기
웹사이트 회안대군 묘,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조선 태조의 넷째 아들 이방간(李芳幹) 묘이다. 이방간의 호는 망우당(忘牛堂)이고, 시호는 양희(良僖)이다. 조선이 건국되자 태조 1년(1392) 회안군에 봉해졌다. 1398년에 동생 이방원과 1차 왕자의 난을 주도하여 정도전 일파를 제거한 공으로 공신에 책봉되었다. 정종 2년(1400)에 박포와 함께 제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켰으나 실패하고 토산, 익산, 전주, 홍성 등지에서 유배생활을 하였다. 유배 중인 태종 1년(1401) 회안대군에 봉해졌다.

회안대군묘는 금상동 법사산의 남쪽 끝자락에 부인 김포금씨(金浦琴氏)묘와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특이하게 묘가 위아래 세로로 조성되어 있는데, 위가 방간의 묘이고, 아래가 부인의 묘이다.

이 터는 군왕이 나올 명당으로 여겨져 뜸을 떠서 땅의 기운을 끊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지금도 산허리에 파놓은 구멍들이 남아 있어 사람들은 ‘뜸터’라고 부른다.

영문

Tomb of Prince Hoean

This is the tomb of Prince Hoean (1364-1421) and his wife Lady Geum.

Prince Hoean, also known by his birth name Yi Bang-gan, was the fourth son of King Taejo (r. 1392-1398), the founder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In 1398, Yi Bang-gan joined his younger brother Yi Bang-won (1367-1422) in a revolt to remove the crown prince, their much younger half-brother Yi Bang-seok, and succeeded in having him disposed of. King Taejo abdicated and his second son, Yi Bang-gwa (1357-1419), became king.

However, just two years later in 1400, Yi Bang-gan and Yi Bang-won competed over the succession to the throne, and Yi Bang-won was successful. Yi Bang-gwa gave the throne to Yi Bang-won, who became King Taejong (r. 1400-1418). Yi Bang-gan was exiled and sent from place to place before eventually being sent to the Jeonju area in 1410.

Usually, a husband and wife’s twin tomb mounds are located side-by-side, but here the tomb mound of Yi Bang-gan is located on the slightly higher ground directly behind the tomb mound of Lady Geum.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회안대군(1364~1421)과 부인 금씨의 묘이다.

회안대군의 이름은 이방간으로 조선을 건국한 태조의 넷째 아들이다.

1398년 이방간은 동생인 이방원과 함께 이복동생인 이방석을 세자 자리에서 몰아내려고 모의하고 이방석을 살해하였다. 이러한 일에 충격을 받은 태조는 퇴위하고 둘째 아들인 이방과가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불과 2년 후인 1400년 왕위를 둘러싼 싸움이 다시 일어났다. 이번에는 이방간과 이방원이 대립하였고, 이방원이 승리하였다. 위협을 느낀 이방과는 이방원에게 왕위를 물려주었고, 이방원이 태종으로 즉위하였다. 이방간은 유배되었고 이후 유배지를 여러 차례 옮기다가, 1410년 전주지역으로 오게 되었다.

보통 부부의 묘는 나란히 배치되는데, 이 묘에서는 뒤가 방간의 묘이고 앞쪽이 부인의 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