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구단 난간석 석물 유적"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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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16일 (목) 16:44 판
환구단 Hwangudan Alta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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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환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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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Hwangudan Altar |
한자 | 圜丘壇 |
지정번호 | 사적 제157호 |
지정일 | 1967년 7월 15일 |
분류 | 유적건조물/종교신앙/제사유적/제사터 |
시대 | 대한제국시대 |
수량/면적 | 4,278㎡ |
웹사이트 | 환구단,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해설문
국문
환구단 난간석 석물 유적은 고종이 천지에 고유제를 지낸 후, 1897년 10월 12일 황제 즉위식을 거행한 환구단을 구성했던 3개층의 원형 난간석 중 일부이다. 이들 석재는 조선 경성철도호텔을 지으면서 환구단이 해체되어 남게 된 석물 유적이며, 그동안 황궁우의 정문이자 환구단과 황궁우를 연결하는 문에 해당하는 전벽돌로 이루어진 삼문(이하 전축 삼문) 좌·우측의 난간석재로 사용되었다. 전축삼문 주변의 직선담장을 복원하면서 다시 해체되어 현 위치에 보관되고 있다. 대한제국 선포와 고종의 황제 즉위가 이루어졌던 환구단의 역사적 실체라고 할 수 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곳에 모아놓은 석물은 환구단의 난간석 중 일부이다. 환구단은 3층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원형의 난간석을 둘렀다.
환구단은 1897년 10월 12일 고종이 대한제국의 황제로서 즉위식을 거행하였던 곳이다. 그러나 1910년 일본이 대한제국을 강제로 병합한 후, 1912년 환구단을 헐고 그 자리에 경성철도호텔을 지었다.
이후 환구단의 난간석은 환구단과 황궁우 사이 삼문의 좌우측 난간 석재로 사용되었다. ***년 삼문 주변의 담장을 복원하면서 난간이 다시 해체되었고, 석물은 현 위치에 보관하고 있다.
동영상
참고
- "환구단", 나무위키.
- "환구단에서 황제에 오르다", 주제로 본 한국사, 우리역사넷, 국사편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