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 해설문

"화령전 - 재실"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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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tual 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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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is a ritual house where the officiants who presided over the rituals prepared for the rituals. When a king took part in the rituals in person, he changed his clothes here and entered into the courtyard of the main hall through the gate in front of this ritual house. A brick pathway was laid to mark the path from this ritual house to the main 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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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ooden plaque hung on this building reads “Punghwadang (風化堂),” meaning “a hall for cultivating the customs and discipline of society.” The building got this name in the early 20th century when it was used by local Confucian scholars, after rituals were suspended at Hwaryeongjeon Shr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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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19일 (화) 21:55 판


해설문

국문

정전에서 제사를 지낼 때 제사를 주관하는 헌관이 제사를 준비하는 곳이다. 국왕이 직접 제사지낼 때는 어재실로도 쓰였다. 헌관은 재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대기하고 있다가 시간이 되면 재실 앞 동문을 통해 정전 마당으로 들어선다. 동문에서 정전 월대 사이에는 헌관이 나아가는 길을 구분해 놓았으며 월대에 오르기 전에 대기하는 장소인 판위(版位)가 마련되어 있다. 국왕 친제 또는 작헌례 때는 이 길을 따라 국왕이 판위에 나아간다. 제사 시각이 되면 판위에서 월대 동편 계단을 통해 월대에 오른다. 재실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1칸반 규모이며 좌우 양 끝에 온돌방이 1칸씩 있고 가운데 3칸은 대청을 두었다.

현재 대청 처마 밑에는 풍화당(風化堂)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1908년 정전에 모시고 있던 정조 어진을 서울로 옮겨 모시고 난 후에 쓸모를 잃은 화령전을 두고 당시 국정을 총괄하던 내각에서 화령전의 빈 건물을 수원의 풍화당 부로들이 머물면서 관리하도록 하라는 명을 내렸다. 풍화당이란 수원 지역 향교 유림을 지칭한다. 이명에 따라 수원의 유림에서 재실을 거처로 사용하면서 풍화당으로 부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재실 본래의 기능에 맞추어 정전에서 제례를 있을 때 제관이 머무는 장소로 쓰이고 있다.

영문

Ritual House

This is a ritual house where the officiants who presided over the rituals prepared for the rituals. When a king took part in the rituals in person, he changed his clothes here and entered into the courtyard of the main hall through the gate in front of this ritual house. A brick pathway was laid to mark the path from this ritual house to the main hall.

The wooden plaque hung on this building reads “Punghwadang (風化堂),” meaning “a hall for cultivating the customs and discipline of society.” The building got this name in the early 20th century when it was used by local Confucian scholars, after rituals were suspended at Hwaryeongjeon Shrine.

영문 해설 내용

운한각에서 제사를 지낼 때 제사를 주관하는 관리가 제사를 준비하던 곳이다. 왕이 직접 제사에 참여할 때는 이 건물에서 옷을 갈아입고 재실 맞은편의 문을 통해 운한각 마당으로 들어섰다. 재실에서 운한각으로 이동하는 경로를 따라 바닥에 벽돌을 깔아 동선을 표시했다.

처마 밑에는 ‘풍화당(風化堂)’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는데, ‘사회의 풍속과 기강을 교화한다’는 뜻이다. 20세기 초 정조의 어진을 서울로 옮긴 후 화령전에서의 제사가 중단되자, 화령전의 재실 건물은 수원의 유림들이 사용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풍화당이라고 부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


정전에서 제사를 지낼 때 제사를 담당하는 관리가 대기하던 곳이다. 국왕이 직접 제사에 참여할 때는 국왕이 이 건물에서 옷을 갈아입고 정전으로 나아갔다. 건물 앞 출입문에서 정전 까지 왕이 이동하는 경로를 따라 바닥에 벽돌로 깔아 동선을 표시했다. 실내 중앙 바닥은 나무 판자(마루)를 깔았고 좌우 방은 온돌을 설치했다. 마루와 온돌은 한국의 전통적인 주택의 기본적인 구성방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