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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계사 명부전 시왕도 및 사자도"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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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해설문'''==
===기존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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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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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계사의 시왕도와 사자도는 모두 고종15년(1878)에 왕실 상궁들이 시주하고 승려 화가 성암당 승의가 그렸다.
  
===수정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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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왕도는 시왕을 중심으로 그를 보좌하는 권속들을 빽빽하게 그렸으며, 12지신과 지옥의 형벌 장면을 표현하고. 각 지옥의 명칭을 적어놓은 것이 특징이다. 사자도는 두 명의 사자와 지옥장군이 그려져 있으며, 시왕도와 함께 장군·사자도를 함께 그리는 당시 전통을 잘 보여준다.
====초고====
 
명부전 시왕상 뒤에 봉안된 세 점의 시왕도와 한 점의 사자도이다. 시왕(十王)은 저승세계에서 죽은 자의 죄를 심판하는 10명의 왕이며, 사자(使者)는 사람에게 목숨이 다했음을 알리고 죽은 이를 지옥으로 데려오는 임무를 맡는다.
 
  
시왕도와 사자도를 함께 그리는 것은 조선 말기 서울, 경기지역에서 유행하였다. 화계사에 남아 있는 시왕도와 사자도는 모두 1878년 왕실 상궁들이 시주하였으며, 당시 경기 지역에서 활동하던 승려 화가 승의(勝宜)가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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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시왕도는 10명의 왕 중 둘 또는 셋을 폭에 그려 총 4폭으로 구성되었는데, 1폭이 분실되었다. 각 폭 모두 시왕을 중심으로 그를 보좌하는 권속들을 빽빽하게 그렸으며, 지옥의 형벌 장면을 함께 표현하였다. 12지신상이 등장하고, 각 지옥의 명칭을 적어놓은 것이 특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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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해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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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왕상 뒤에 모셔진 세 점의 시왕도와 점의 사자도는 모두 1878년 왕실 상궁들이 시주하고 승려 화가 승의가 그렸다. 조선 말기 서울, 경기 지역에서는 시왕도와 사자도를 함께 그리는 것이 유행하였다.  
  
사자도는 화면을 둘로 나누어 두 명의 사자와 지옥장군을 그렸다. 사자는 깃발을 들거나 말의 고삐를 쥔 채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며, 장군은 오른손에 장대를 잡고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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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왕도는 원래 4폭으로 구성되었는데, 1폭이 분실되었다. 각 폭에는 시왕을 중심으로 그를 보좌하는 권속들을 빽빽하게 그렸으며, 12지신과 지옥의 형벌 장면을 표현하고. 각 지옥의 명칭을 적어놓은 것이 특징이다. 사자도는 두 명의 사자와 지옥장군이 그려져 있다.
 
 
====자문의견====
 
#분야별 자문위원1
 
#*상궁들이 시주하였으며 -> 상궁들의 시주로 제작되었으며
 
#분야별 자문위원2
 
#*화계사 명부전에는 시왕상과 사자상 뒤에 시왕도와 사자도가 걸려 있다. 시왕(十王)은 저승세계에서 죽은 자의 죄를 심판하는 10명의 왕이며, 사자(使者)는 사람에게 목숨이 다했음을 알리고 죽은 이를 지옥으로 데려오는 임무를 맡는다. 화계사 명부전 시왕도와 사자도는 명부전 건립되던 1878년에 지장보살도와 함께 일괄로 시왕도 4폭 사자도 2폭이 제작되었으나 현재 시왕도 3점, 사자도 1점만이 전한다. 시왕도와 사자도를 그린 승려 화가는 성암당 승의(聖庵堂 勝宜)이다.   
 
#*사자도는 화면을 둘로 나누어 두 명의 사자와 지옥장군을 그렸다. 사자는 깃발을 들거나 말의 고삐를 쥔 채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며, 장군은 오른손에 장대를 잡고 서 있다.
 
 
 
====2차 수정====
 
명부전 시왕상 뒤에 봉안된 세 점의 시왕도와 한 점의 사자도이다. 시왕(十王)은 저승세계에서 죽은 자의 죄를 심판하는 10명의 왕이며, 사자(使者)는 사람에게 목숨이 다했음을 알리고 죽은 이를 지옥으로 데려오는 임무를 맡는다.
 
 
 
조선 말기 서울, 경기 지역에서는 시왕도와 사자도를 함께 그리는 것이 유행하였다. 화계사에 남아 있는 시왕도와 사자도는 모두 1878년 왕실 상궁들의 시주로 제작되었으며, 당시 경기 지역에서 활동하던 승려 화가 성암당 승의(聖庵堂 勝宜)가 그렸다.
 
 
 
시왕도는 10명의 왕 중 둘 또는 셋을 한 폭에 그려 총 4폭으로 구성되었는데, 1폭이 분실되었다. 각 폭 모두 시왕을 중심으로 그를 보좌하는 권속들을 빽빽하게 그렸으며, 지옥의 형벌 장면을 함께 표현하였다. 12지신상이 등장하고, 각 지옥의 명칭을 적어놓은 것이 특징적이다.
 
 
 
사자도는 화면을 둘로 나누어 두 명의 사자와 지옥장군을 그렸다. 사자는 깃발을 들거나 말의 고삐를 쥔 채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며, 장군은 오른손에 장대를 잡고 서 있다.  
 
  
 
=='''참고자료'''==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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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시도유형문화재]]
 
[[분류:시도유형문화재]]
 
[[분류:불화]]
 
[[분류: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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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2020 영문집필]]

2020년 10월 17일 (토) 05:23 판


화계사 명부전 시왕도 및 사자도
화계사 명부전 시왕도 및 사자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화계사 명부전 시왕도 및 사자도
한자 華溪寺 冥府殿 十王圖 및 使者圖
주소 서울특별시 강북구 화계사길 117
지정번호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92호
지정일 2016년 8월 4일
분류 유물/불교회화/탱화/기타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4점
웹사이트 화계사 명부전 시왕도 및 사자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화계사의 시왕도와 사자도는 모두 고종15년(1878)에 왕실 상궁들이 시주하고 승려 화가 성암당 승의가 그렸다.

시왕도는 시왕을 중심으로 그를 보좌하는 권속들을 빽빽하게 그렸으며, 12지신과 지옥의 형벌 장면을 표현하고. 각 지옥의 명칭을 적어놓은 것이 특징이다. 사자도는 두 명의 사자와 지옥장군이 그려져 있으며, 시왕도와 함께 장군·사자도를 함께 그리는 당시 전통을 잘 보여준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시왕상 뒤에 모셔진 세 점의 시왕도와 한 점의 사자도는 모두 1878년 왕실 상궁들이 시주하고 승려 화가 승의가 그렸다. 조선 말기 서울, 경기 지역에서는 시왕도와 사자도를 함께 그리는 것이 유행하였다.

시왕도는 원래 4폭으로 구성되었는데, 1폭이 분실되었다. 각 폭에는 시왕을 중심으로 그를 보좌하는 권속들을 빽빽하게 그렸으며, 12지신과 지옥의 형벌 장면을 표현하고. 각 지옥의 명칭을 적어놓은 것이 특징이다. 사자도는 두 명의 사자와 지옥장군이 그려져 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