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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 홍주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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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 홍주읍성
Hongjueupseong Walled Town, Hongseong
대표명칭 홍성 홍주읍성
영문명칭 Hongjueupseong Walled Town, Hongseong
한자 洪城 洪州邑城
주소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오관리 200-2번지
지정번호 사적 제231호
지정일 1972년 10월 14일
분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지
시대 삼국시대
수량/면적 109,542㎡
웹사이트 홍성 홍주읍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홍주아문

홍주(洪州)의 지방관(목사(牧使): 조선 시대에 지방 행정 단위인 목을 다스리던 정삼품 외직 문관)이 근무하는 건물인 안회당(安懷堂)의 바깥문이다. 고종 7년(1870)에 한응필 목사가 홍주읍성을 크게 수리할 때 같이 세운 것이다. 홍주아문(洪州衙門)이란 현판은 흥선대원군이 직접 써 주었는데,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정면 5칸인 것이 특징이며, 가운데 출입문은 사방 경계를 위해 긴 받침돌 위에 나무 기둥을 세웠다. 조선 시대에 건립된 관청 출입문 중에 가장 크고 독특한 모습을 갖추고 있어, 조선 시대 관청 출입문의 구조와 형태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안회당

이 건물은 조선 시대 충남 서북부 지역의 중심지였던 홍주의 지방관(목사(牧使): 조선 시대에 지방 행정 단위인 목을 다스리던 정삼품 외직 문관)이 근무하던 관청이다. 22칸의 목조 기와 건물로, 숙종 4년(1678)에 처음 세웠고, 고종 7년(1870) 한응필 목사가 다시 크게 지었다.

‘안회당’이라는 이름은 『논어』의 ‘노자안지(老者安之) 붕우신지(朋友信之) 소자회지(少者懷之)’에서 인용한 것으로 ‘노인은 평안하게 모시고 벗은 믿음으로 대하고 아랫사람은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현판의 글씨는 흥선대원군이 썼다고 전하는데, 광복 이후 분실되어 1991년 새로 제작하였다.

홍주읍성 감옥

감옥은 범죄 혐의가 있는 사람을 가두는 시설로 조선시대에는 담장을 둥그렇게 둘러 원옥(圓獄)이라고도 하였다. 서울에는 형조와 한성부, 사헌부와 병조 및 승정원 등에 설치되었으며, 지방에는 행정 관청에 설치되었다.

고종 9년(1872)에 제작된 홍주 지도를 보면, 홍주읍성 내 원형 담장 안에 1개 동의 옥사가 있었음이 확인된다. 감옥을 주관하던 홍주재판소는 1895년에 설치되었는데, 1913년 홍주재판소와 검사국이 옮겨가면서 감옥도 철거되었다.

현재의 감옥은 홍주읍성 내 역사공원 조성 사업이 추진되던 2012년 당시 현재의 위치에 복원된 것이다.

영문

홍주아문

Gate of the Office of Hongju

This was originally the main gate of Anhoedang, the Office of Hongju. The old office currently stands behind the Hongju County Office building. This gate was built in 1870 when the Hongjueupseong Walled Town went through a renovation.

The wooden plaque bears its name meaning, “the Gate of the Office of Hongju.” It is said the original plaque was written by Heungseon Daewongun (1820-1898), prince regent and de facto ruler of Joseon during the early period of the reign of King Gojong (r. 1863-1907). However, the original was lost and replaced to the current one.

This is the largest office gate established during the Joseon period (1392-1910).

안회당

홍주읍성 감옥

This is a reproduction of a prison building which was used in the Hongjueupseong Walled Town. The original building was demolished in 1913, and the current one was rebuilt in 2012.

This prison is also where more than 100 Korean Catholic believers were martyred during the great persecution of 1866-1871. The persecution of Catholics was led by Heungseon Daewongun (1820-1898), prince regent and de facto ruler of Joseon during the early period of the reign of King Gojong (r. 1863-1907). As he felt threatened by the invasive approach of Western countries, he prohibited foreign trade and persecuted Catholics in Korea en masse. As a result, the worst persecution of Catholics in the history of Korea began in 1866 and continued to 1871, with the peak in 1868.

영문 해설 내용

홍주아문

이 문은 원래 홍주의 목사가 근무하던 관청인 안회당의 정문으로, 1870년 홍주읍성을 크게 수리할 때 같이 세웠다. 현재 안회당은 홍성군청 뒤에 위치하고 있다.

정면에 걸린 현판에는 ‘홍주아문,’ 즉 ‘홍주 관아의 문’이라고 적혀있다. 원래의 현판은 흥선대원군이 직접 써주었다고 하는데, 분실되어 새 현판으로 교체하였다.

조선시대에 건립된 관청 출입문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안회당

이 건물은 홍주 목사가 근무하던 관청이다. 1678년에 처음 세웠고, 1870년에 홍주읍성을 수리할 때 크게 확장하였다.

건물의 이름 중 ‘안회(安懷)’은 『논어』에서 비롯한 것으로, ‘노인은 평안하게 모시고, 벗은 믿음으로 대하고, 아랫사람은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원래의 현판은 흥선대원군이 직접 써주었다고 하는데, 분실되어 1991년 새 현판으로 교체하였다.

홍주읍성 감옥

홍주읍성의 감옥이다. 원래의 건물은 1913년에 철거되었고, 현재의 건물은 2012년에 다시 세운 것이다.

이곳은 병인박해 때 100명이 넘는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한 곳이기도 하다. 고종의 친부인 흥선대원군은 서양 세력의 침략적 접근에 위기의식을 느껴, 외국과의 통상수교를 거부하고 천주교 말살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1866년부터 1871년까지 한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천주교 박해가 계속되었으며, 1868년에 가장 심했다.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