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 홍주읍성"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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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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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해설문'''==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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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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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 홍주읍성은 내포의 중심인 홍주의 정치와 행정이 이루어지던 곳을 둘러쌓은 전형적인 조선 시대 읍성이다. 길이 약 1,772m의 돌로 쌓은 성벽 중 약 800m 정도 남아 있으며, 『세종실록지리지』에 성의 둘레에 대한 기록과 함께 여름과 겨울에도 마르지 않는 샘이 있다는 기록이 전한다. 성은 신라 말~고려 초에 쌓은 것으로 보인다.  
홍주(洪州)의 지방관(목사(牧使): 조선 시대에 지방 행정 단위인 목을 다스리던 정삼품 외직 문관)이 근무하는 건물인 안회당(安懷堂)의 바깥문이다. 고종 7년(1870)에 한응필 목사가 홍주읍성을 크게 수리할 때 같이 세운 것이다. 홍주아문(洪州衙門)이란 현판은 흥선대원군이 직접 써 주었는데,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정면 5칸인 것이 특징이며, 가운데 출입문은 사방 경계를 위해 긴 받침돌 위에 나무 기둥을 세웠다. 조선 시대에 건립된 관청 출입문 중에 가장 크고 독특한 모습을 갖추고 있어, 조선 시대 관청 출입문의 구조와 형태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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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새로운 양식으로 각 고을 읍성을 쌓았던 조선 초기 이후 여러 차례 고쳐 쌓았으며, 1870년 홍주목사 한응필이 대대적으로 다시 쌓았다. 삼국 시대 이후 쌓았던 읍성의 특징과 조선 초기 새로운 형식으로 쌓은 읍성의 양식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안회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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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동문인 조양문은 현재까지 그대로 남아 있고 1975년에 수리했다. 우리나라 아문 중에서 가장 크고 특이한 형태를 지닌 홍주아문은 조양문을 만들 때 함께 세웠는데, 조선 시대 관아의 구조와 형태를 지니고 있다. 글씨는 흥선대원군이 직접 썼다고 하는데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이 건물은 조선 시대 충남 서북부 지역의 중심지였던 홍주의 지방관(목사(牧使): 조선 시대에 지방 행정 단위인 목을 다스리던 정삼품 외직 문관)이 근무하던 관청이다. 22칸의 목조 기와 건물로, 숙종 4년(1678)에 처음 세웠고, 고종 7년(1870) 한응필 목사가 다시 크게 지었다.  
 
  
‘안회당’이라는 이름은 『논어』의 ‘노자안지(老者安之) 붕우신지(朋友信之) 소자회지(少者懷之)’에서 인용한 것으로 ‘노인은 평안하게 모시고 벗은 믿음으로 대하고 아랫사람은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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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늑약에 반대하여 1906년 민종식 등이 의병을 일으켜 이 성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을 공격하여 덕산으로 격퇴시킨 일이 있다. 2012년에 성의 남문인 홍화문을 복원하였으며, 2019년에 수구유적 정비 북문인 망화문을 복원하였다.
 
 
현판의 글씨는 흥선대원군이 썼다고 전하는데, 광복 이후 분실되어 1991년 새로 제작하였다.
 
 
 
====홍주읍성 감옥====
 
감옥은 범죄 혐의가 있는 사람을 가두는 시설로 조선시대에는 담장을 둥그렇게 둘러 원옥(圓獄)이라고도 하였다. 서울에는 형조와 한성부, 사헌부와 병조 승정원 등에 설치되었으며, 지방에는 행정 관청에 설치되었다.
 
 
 
고종 9년(1872)에 제작된 홍주 지도를 보면, 홍주읍성 내 원형 담장 안에 1개 동의 옥사가 있었음이 확인된다. 감옥을 주관하던 홍주재판소는 1895년에 설치되었는데, 1913년 홍주재판소와 검사국이 옮겨가면서 감옥도 철거되었다. 
 
 
 
현재의 감옥은 홍주읍성 내 역사공원 조성 사업이 추진되던 2012년 당시 현재의 위치에 복원된 것이다.
 
  
 
===영문===
 
===영문===
====홍주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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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gjueupseong Walled Town, Hongseong'''
'''Gate of the Magistrate's Office of the Hongju Local Government'''
 
 
 
This was originally the main gate of Anhoedang, the Magistrate's Office of the Hongju Local Government, and is now used as the gate of the Hongseong-gun Office. This gate was built in 1870 when the Hongjueupseong Walled Town went through a renovation. The old magistrate's office is located behind the Hongseong-gun Office building.
 
 
 
The wooden plaque bears the Chinese characters for the "Gate of the Office of Hongju."
 
 
 
This gate is the largest local government office gate established during the Joseon period (1392-1910).
 
 
 
====안회당====
 
'''Anhoedang, the Magistrate’s Office of the Hongju Local Government'''
 
 
 
This was the office of the Hongju county magistrate during the Joseon period (1392-1910). It was originally established in 1678 and was significantly expanded in 1870 when the Hongjueupseong Walled Town went through a renovation.
 
 
 
Its name, “Anhoedang,” is a reference to a passage in the ''Analects'' which says, “in regard to the aged, give them rest; in regard to friends, show them sincerity; in regard to the young, treat them tenderly.” When the office was renovated in 1870, a new name plaque for this building was written by Heungseon Daewongun (1820-1898), prince regent and de facto ruler of Joseon during the early period of the reign of King Gojong (r. 1863-1907). However, it was lost and replaced with the current one in 1991.
 
  
====홍주읍성 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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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walled town, called ''eupseong'' in Korean, was established at an important location in an area to protect residents and serve military and administrative functions.
'''Prison of the Hongju Local Government'''
 
 
 
This is a reconstruction of a prison building which was used in the Hongjueupseong Walled Town during the Joseon period (1392-1910). The original building was demolished in 1913, and the current one was rebuilt in 2012.
 
 
 
This prison is where more than 100 Korean Catholic believers were martyred during the great persecution of 1866-1871. The persecution of Catholics was led by Heungseon Daewongun (1820-1898), prince regent and de facto ruler of Joseon during the early period of the reign of King Gojong (r. 1863-1907). As he felt threatened by the invasive approach of Western countries, he prohibited foreign trade and persecuted Catholics in Korea en masse. The persecution reached its peak in 1868.
 
  
 
===영문 해설 내용===
 
===영문 해설 내용===
====홍주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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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성이란 지방 주요 지역에 쌓은 성으로, 지방 주민들을 보호하고 군사, 행정 기능을 담당하던 곳이다.
이 문은 원래 홍주의 목사가 근무하던 관청인 안회당의 정문이었으나, 지금은 홍성군청의 정문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문은 1870년 홍주읍성을 크게 수리할 때 같이 세웠다. 현재 안회당은 홍성군청 뒤에 위치하고 있다.
 
 
 
정면에 걸린 현판에는 ‘홍주아문,’ 즉 ‘홍주 관아의 문’이라고 적혀있다.
 
 
 
조선시대에 건립된 관청 출입문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안회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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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읍성은 신라 말~고려 초에 처음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홍주는 홍성 지역의 옛 이름이다. 조선 세종(재위 1418-1450) 때부터는 왜구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전국의 읍성을 보수하거나 고쳐 지었는데, 홍주읍성도 1451년에 보수하고 1870년에는 대대적으로 다시 지었다.  
이 건물은 조선시대 홍주 목사가 근무하던 관청이다. 1678년에 처음 세웠고, 1870년에 홍주읍성을 수리할 때 크게 확장하였다.
 
  
건물의 이름 중 ‘안회(安懷)’은 『논어』에서 비롯한 것으로, ‘노인은 평안하게 모시고, 벗은 믿음으로 대하고, 아랫사람은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1870년 중수 당시 흥선대원군이 직접 현판을 써주었다고 하는데, 분실되어 1991년 지금의 현판으로 교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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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된 후에는 홍주 지역에서 천여 명의 의병이 모여 이 읍성에서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기도 하였다.
  
====홍주읍성 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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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전체 성벽의 길이는 약 1,772m였고, 성벽에는 동쪽, 서쪽, 북쪽에 문이 있었다. 지금은 약 800m 길이의 성벽이 남아 있으며, 동헌인 안회당과 동문인 조양문만 원래의 건물이 남아 있다. 동문은 1975년에 해체 수리하였고, 남문과 북문은 각각 2012년과 2019년에 다시 지었다.  
조선시대 홍주읍성의 감옥이다. 원래의 건물은 1913년에 철거되었고, 현재의 건물은 2012년에 다시 세운 것이다.
 
  
이곳은 병인박해 때 100명이 넘는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한 곳이다. 고종의 친부인 흥선대원군은 서양 세력의 침략적 접근에 위기의식을 느껴, 외국과의 통상수교를 거부하고 천주교 말살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박해는 1868년에 최고조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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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회당의 정문은 현재 홍성군청의 정문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문은 1870년에 세운 것이며, 조선시대에 건립된 관청 출입문 중 가장 크다.  
  
=='''참고'''==
 
*“[https://blog.naver.com/hsgstory/220847028226 홍주읍성 우물터, 홍주옥]”, 함께하는 홍성이야기, 네이버 블로그, 2016.10.29.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34563 홍성 홍주성지, '전국에서 두 번째로 순교자 많아"]“, 오마이뉴스, 2017.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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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2020 영문집필]]

2020년 10월 1일 (목) 02:15 판

{{홍성 홍주읍성(개별안내판)

홍성 홍주읍성
Hongjueupseong Walled Town, Hongseong
대표명칭 홍성 홍주읍성
영문명칭 Hongjueupseong Walled Town, Hongseong
한자 洪城 洪州邑城
주소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오관리 200-2번지
지정번호 사적 제231호
지정일 1972년 10월 14일
분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지
시대 삼국시대
수량/면적 109,542㎡
웹사이트 홍성 홍주읍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홍성 홍주읍성은 내포의 중심인 홍주의 정치와 행정이 이루어지던 곳을 둘러쌓은 전형적인 조선 시대 읍성이다. 길이 약 1,772m의 돌로 쌓은 성벽 중 약 800m 정도 남아 있으며, 『세종실록지리지』에 성의 둘레에 대한 기록과 함께 여름과 겨울에도 마르지 않는 샘이 있다는 기록이 전한다. 성은 신라 말~고려 초에 쌓은 것으로 보인다.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새로운 양식으로 각 고을 읍성을 쌓았던 조선 초기 이후 여러 차례 고쳐 쌓았으며, 1870년 홍주목사 한응필이 대대적으로 다시 쌓았다. 삼국 시대 이후 쌓았던 읍성의 특징과 조선 초기 새로운 형식으로 쌓은 읍성의 양식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성의 동문인 조양문은 현재까지 그대로 남아 있고 1975년에 수리했다. 우리나라 아문 중에서 가장 크고 특이한 형태를 지닌 홍주아문은 조양문을 만들 때 함께 세웠는데, 조선 시대 관아의 구조와 형태를 지니고 있다. 글씨는 흥선대원군이 직접 썼다고 하는데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을사늑약에 반대하여 1906년 민종식 등이 의병을 일으켜 이 성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을 공격하여 덕산으로 격퇴시킨 일이 있다. 2012년에 성의 남문인 홍화문을 복원하였으며, 2019년에 수구유적 정비 및 북문인 망화문을 복원하였다.

영문

Hongjueupseong Walled Town, Hongseong

A walled town, called eupseong in Korean, was established at an important location in an area to protect residents and serve military and administrative functions.

영문 해설 내용

읍성이란 지방 주요 지역에 쌓은 성으로, 지방 주민들을 보호하고 군사, 행정 기능을 담당하던 곳이다.

홍주읍성은 신라 말~고려 초에 처음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홍주는 홍성 지역의 옛 이름이다. 조선 세종(재위 1418-1450) 때부터는 왜구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전국의 읍성을 보수하거나 고쳐 지었는데, 홍주읍성도 1451년에 보수하고 1870년에는 대대적으로 다시 지었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된 후에는 홍주 지역에서 천여 명의 의병이 모여 이 읍성에서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기도 하였다.

원래 전체 성벽의 길이는 약 1,772m였고, 성벽에는 동쪽, 서쪽, 북쪽에 문이 있었다. 지금은 약 800m 길이의 성벽이 남아 있으며, 동헌인 안회당과 동문인 조양문만 원래의 건물이 남아 있다. 동문은 1975년에 해체 수리하였고, 남문과 북문은 각각 2012년과 2019년에 다시 지었다.

안회당의 정문은 현재 홍성군청의 정문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문은 1870년에 세운 것이며, 조선시대에 건립된 관청 출입문 중 가장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