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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해인사 대장경판"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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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량 문제 => 명확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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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판수 : 스님은 81,350매 / 문화재청 ‘일제시대 조사기준’인 81,258매 / 해인사 홈페이지 : 81240매로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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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판수 : 스님은 81,350매 / 문화재청 ‘일제시대 조사기준’인 81,258매 / 해인사 홈페이지 : 81240매로 설명
  
2) 경전 수 : 1,514경 6,791책이다. / 문화재청 설명 1,496종 6,568권 / 해인사 : 1,537종 6,84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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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경전 수 : 1,514경 6,791책이다. / 문화재청 설명 1,496종 6,568권 / 해인사 : 1,537종 6,844권,
  
 
*초조/재조 과정 설명할 것인지? -> 현재 간단하게만 언급
 
*초조/재조 과정 설명할 것인지? -> 현재 간단하게만 언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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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8년 완성된 이 고려대장경의 교정 기록을 30권 분량에 담고 있는 고려국신조대장교정별록은 고대 동아시아 학자들이 수천 권에 달하는 경전의 내용을 어떻게 대조 및 편집하여 한 권의 경전을 탄생시켰는지를 자세하게 보여주는 현존하는 유일한 기록이다. 수기스님 등이 초조대장경과 송나라 대장경과 거란 대장경의 내용을 비교하면서 철저하게 교정하여 가장 완벽한 대장경으로 만들었다.  
 
*1248년 완성된 이 고려대장경의 교정 기록을 30권 분량에 담고 있는 고려국신조대장교정별록은 고대 동아시아 학자들이 수천 권에 달하는 경전의 내용을 어떻게 대조 및 편집하여 한 권의 경전을 탄생시켰는지를 자세하게 보여주는 현존하는 유일한 기록이다. 수기스님 등이 초조대장경과 송나라 대장경과 거란 대장경의 내용을 비교하면서 철저하게 교정하여 가장 완벽한 대장경으로 만들었다.  
  
#이운 과정에 대한 견해 -> 대부분 태조 때(1398년에) 서울 지천사를 거쳐 옮겨졌다고 설명/더 앞선 시기인 1377년으로 보는 견해도 있음 (언급 필요 없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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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운 과정에 대한 견해 -> 대부분 태조 때(1398년에) 서울 지천사를 거쳐 옮겨졌다고 설명/더 앞선 시기인 1377년으로 보는 견해도 있음 (언급 필요 없을듯..?)
  
 
==참고 자료==
 
==참고 자료==

2020년 4월 8일 (수) 15:50 판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
Printing Woodblocks of the Tripitaka Koreana in Haeinsa Temple, Hapcheon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
영문명칭 Printing Woodblocks of the Tripitaka Koreana in Haeinsa Temple, Hapcheon
한자 陜川 海印寺 大藏經板
주소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122
지정번호 국보 제32호
지정일 1962년 12월 20일
분류 기록유산/서각류/목판각류/판목류
시대 고려시대
수량/면적 81,258매
웹사이트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해인사 고려대장경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말씀을 담은 인류 최대의 기록물이다. 대장경판은 글자를 새긴 경판 판목과 경판 양 끝에 각목으로 덧댄 마구리로 이루어져 있다. 마구리를 포함한 경판은 가로 길이는 약 70cm, 세로 길이(폭)는 약 24cm, 두께는 약 2.8cm이고, 무게는 약 3.25kg이다. 글자는 경판 양면에 돋을새김(양각)되었다. 한 면에 글자를 새긴 세로줄 수는 23행이며, 행마다 새긴 글자 수는 14자 정도이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포괄적이고, 한역경전(漢譯經典) 중 가장 오래된 원판본이며, 틀린 곳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판 수는 81,350판에 달하며, 양면으로 판각되어 있어서 인경하면 16만장에 이른다. 경전의 수는 1,514경전이고, 총 글자 수는 52,389,400글자이며, 책으로 엮으면 6,791책이다.

약 240여 년 동안 세 차례에 걸친 고려대장경 판각은 불교문화를 꽃피우게 하였고 인쇄문화와 기록문화의 발전에도 크게 공헌하여 아시아 문화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이는 정신문화사적으로도 세계적인 자랑거리이다. 이러한 가치가 인정되어 장경판전은 1995년 12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고, 고려대장경판은 해인사의 다른 경판과 함께 2007년 6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대장경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말씀과 그 내용에 대한 해석 등을 집대성한 불교 경전 총서이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팔만대장경’은 국가 차원에서 제작한 고려 재조대장경판을 지칭한다. 이 경판들은 지금도 인쇄가 가능할 정도로 보전이 잘 이루어졌다. 경판 수는 81,258매에 달하며 양면으로 판각되어 있어서 인경하면 16만장에 이른다. 경전의 수는 1,514경전이고, 총 글자 수는 52,389,400글자이며, 책으로 엮으면 6,791책이다.

경판은 글자를 새긴 경판 판목과 경판 양 끝에 덧댄 각목인 마구리로 이루어져 있다. 경판 대부분은 한 면에 23행을, 한 행에 14글자를 새겼다. 마구리는 경판의 열람을 쉽게 하는 동시에 경판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간격을 주어 경판의 변형과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마구리를 포함한 경판은 가로 길이는 약 70cm, 세로 길이(폭)는 약 24cm, 두께는 약 2.8cm이고, 무게는 약 3.25kg이다.

이 대장경판은 거란의 침략을 불교의 힘으로 물리치겠다는 염원으로 1087년 완성되었던 초조대장경이 1232년 몽고의 침입으로 불타 없어지자 다시 만든 것으로, 재조대장경이라고도 한다.

강화도 선원사(禪源寺)에 있던 것을 1398년에 해인사로 옮겨왔다고 전하며, 자연적으로 항온ㆍ항습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설계된 장경판전에 보관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장경판전에는 사찰 차원에서 제작한 경판 5,987판도 함께 소장되어 있다. 여기에는 원효 등 한국 고승들의 저술과 시문집, 시대별로 갖추어진 경전의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한 판화 등 세계적으로 희귀한 가치를 지닌 자료들이 포함되어 있다.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는 대장경판은 한역(漢譯) 경전 중 가장 오래된 판본으로 1236년에 시작되어 1251년에 완성되었다. 조성 당시 동아시아 지역에 존재했던 다수의 경전을 비롯해 교리나 불교와 관련된 역사 기록을 집대성하였음에도 오류가 거의 없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해인사 대장경판은 아시아 전역에서 유일하게 완벽한 형태로 현존하는 판본자료로서, 산스크리트어에서 한역된 불교대장경의 원본 역할을 하고 있다.

87,000여장의 고려대장경판 및 제 경판은 불교문화뿐만 아니라 인쇄문화와 기록문화의 발전에도 크게 공헌하여 아시아 지역의 문화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2007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 '판목'으로 분류해도 되는지 확인 필요.
  • 수량 문제 => 명확하지 않음

1) 경판수 : 스님은 81,350매 / 문화재청 ‘일제시대 조사기준’인 81,258매 / 해인사 홈페이지 : 81240매로 설명

2) 경전 수 : 1,514경 6,791책이다. / 문화재청 설명 1,496종 6,568권 / 해인사 : 1,537종 6,844권,

  • 초조/재조 과정 설명할 것인지? -> 현재 간단하게만 언급

<sample> 현전하는 대장경판은 몽골의 침임으로 인해 피폐해진 국가가 처한 어려움을 불교의 힘으로 이겨내고자 했던 고려인들의 염원에서 시작된 국가 사업의 결과물이다. 이에 앞서 거란의 침임 때 호국의 정신을 되새기며 완성되었던 초조대장경이 있으나, 팔공산에 보관되어 있었던 이 경판들은 몽골군의 침임 때 전소되었다. (책 내용 요약)

  • 1248년 완성된 이 고려대장경의 교정 기록을 30권 분량에 담고 있는 고려국신조대장교정별록은 고대 동아시아 학자들이 수천 권에 달하는 경전의 내용을 어떻게 대조 및 편집하여 한 권의 경전을 탄생시켰는지를 자세하게 보여주는 현존하는 유일한 기록이다. 수기스님 등이 초조대장경과 송나라 대장경과 거란 대장경의 내용을 비교하면서 철저하게 교정하여 가장 완벽한 대장경으로 만들었다.
  • 이운 과정에 대한 견해 -> 대부분 태조 때(1398년에) 서울 지천사를 거쳐 옮겨졌다고 설명/더 앞선 시기인 1377년으로 보는 견해도 있음 (언급 필요 없을듯..?)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