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해인사 길상탑"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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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탑에 대한 언급 더 필요할지..? => 소탑은 원래 99개, 77개를 두는 것이 원칙이므로 19개는 없어진 듯 하다. 불경에는 소탑 99기를 안치하면 9만 9천의 불탑을 조성하는 것과 같다는 조탑 공덕이 있어, 많은 소탑들이 탑 속에 봉안되어 왔으며, 이 탑에서 발견된 소탑들은 높이는 6.5-7cm로 모두 흙으로 만들어졌고 실제 탑과 동일한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 *소탑에 대한 언급 더 필요할지..? => 소탑은 원래 99개, 77개를 두는 것이 원칙이므로 19개는 없어진 듯 하다. 불경에는 소탑 99기를 안치하면 9만 9천의 불탑을 조성하는 것과 같다는 조탑 공덕이 있어, 많은 소탑들이 탑 속에 봉안되어 왔으며, 이 탑에서 발견된 소탑들은 높이는 6.5-7cm로 모두 흙으로 만들어졌고 실제 탑과 동일한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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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탑의 가치 추가 기술할 것인지..? => 탑의 높이를 일장삼척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비록 상륜부가 결실되었으나 현재 탑의 높이를 3m로 볼 때 이 탑의 조성에 당척이 적용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어 당시 도량형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뿐만 아니라 탑지의 기록에 따라 석탑건립에 소요된 비용과 물품등은 당시의 사원 경제 연구에 도움이 | + | *탑의 가치 추가 기술할 것인지..? => 탑의 높이를 일장삼척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비록 상륜부가 결실되었으나 현재 탑의 높이를 3m로 볼 때 이 탑의 조성에 당척이 적용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어 당시 도량형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뿐만 아니라 탑지의 기록에 따라 석탑건립에 소요된 비용과 물품등은 당시의 사원 경제 연구에 도움이 된다. 아울러 탑을 건립하게 된 배경 및 소요된 비용 등의 기록을 통해 통일신라말기 혼란된 사회상을 비롯하여, 경제상을 밝히는 중요한 단서를 전해주고 있다. (출처: 합천문화원) |
==참고 자료== | ==참고 자료== |
2020년 4월 9일 (목) 23:07 판
합천 해인사 길상탑 Gilsangtap Pagoda of Haeinsa Temple, Hapche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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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합천 해인사 길상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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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Gilsangtap Pagoda of Haeinsa Temple, Hapcheon |
한자 | 陜川 海印寺 吉祥塔 |
주소 |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산1-1 |
지정번호 | 보물 제1242호 |
지정일 | 1996년 5월 29일 |
분류 |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탑 |
시대 | 통일신라 |
수량/면적 | 1기 |
웹사이트 | 합천 해인사 길상탑,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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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길상탑은 해인사 일주문 밖 남동쪽으로 약 50m 되는 곳에 있다. 이 탑은 오랜 내란으로 해인사 주변에서 전몰한 승려와 백성을 위해 문수사리보살의 가피를 빌고자 해인사의 훈혁 스님이 895년에 세운 위령탑이다. 전형적인 신라 계통의 3층탑으로 높이는 약 3m이다. 1966년 탑 속에서 최치원이 지은 탑지(塔誌), 157개의 소탑(小塔) 등의 유물이 나왔다. 이 탑지(塔誌)는 당시의 사회 상황과 탑의 건립 내력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 삼층탑은 895년 해인사의 승려 훈혁이 세웠다고 전한다.
탑은 바닥돌과 받침돌, 몸돌, 지붕돌과 머리장식 일부로 구성되어 있다.
받침돌은 2층으로 되어 있는데, 이 중 위층은 하나의 돌을 사용해서 만들어졌다. 지붕돌은 모서리가 약간 들려있고, 꼭대기의 연꽃 모양의 머리장식은 후대에 새로 만들어 올린 것이다.
1966년 탑 속에서 흙으로 만든 157개의 소탑과 탑지 4장 등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이 유물들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탑지에는 혼란스러웠던 당시의 시대 상황과 탑의 건립 내력이 적혀있으며, 신라의 학자 최치원이 지었다고 전한다. 기록에 따르면 이 탑은 절의 보물을 지키려다 희생된 스님들과 백성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 소탑에 대한 언급 더 필요할지..? => 소탑은 원래 99개, 77개를 두는 것이 원칙이므로 19개는 없어진 듯 하다. 불경에는 소탑 99기를 안치하면 9만 9천의 불탑을 조성하는 것과 같다는 조탑 공덕이 있어, 많은 소탑들이 탑 속에 봉안되어 왔으며, 이 탑에서 발견된 소탑들은 높이는 6.5-7cm로 모두 흙으로 만들어졌고 실제 탑과 동일한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 보주:새로 만들어 올린 부재(언제 수리했는지 확인 어려움.)
- 탑의 가치 추가 기술할 것인지..? => 탑의 높이를 일장삼척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비록 상륜부가 결실되었으나 현재 탑의 높이를 3m로 볼 때 이 탑의 조성에 당척이 적용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어 당시 도량형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뿐만 아니라 탑지의 기록에 따라 석탑건립에 소요된 비용과 물품등은 당시의 사원 경제 연구에 도움이 된다. 아울러 탑을 건립하게 된 배경 및 소요된 비용 등의 기록을 통해 통일신라말기 혼란된 사회상을 비롯하여, 경제상을 밝히는 중요한 단서를 전해주고 있다. (출처: 합천문화원)
참고 자료
- 경상남도의 석탑2, 국립문화재연구소, 2017.
- http://www.dapsa.kr/blog/?p=34248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06843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2,12420000,38&pageNo=1_1_1_0
- 전통사찰총서 20 - 경남의 전통사찰 3, 사찰문화연구원, 2005.
- 합천문화원 http://hapcheon.kccf.or.kr/home/main/history.php?conf_kccf_addr=hapcheon&menuinfo_code=culture&CULTURE_IDX=13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