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중

합천 추본사, 명곡사

HeritageWiki
이슬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1년 1월 10일 (일) 10:34 판 (새 문서: {{진행중}} {{문화유산정보 |사진=합천추본사명곡사.jpg |사진출처=[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57849# 합천 추본사와 명곡사], 한국민족...)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이동: 둘러보기, 검색


합천 추본사⋅명곡사
합천 추본사와 명곡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대표명칭 합천 추본사⋅명곡사
한자 陜川 追本祠⋅明谷祠
주소 경상남도 합천군 야로면 정대리 762-1
지정번호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64호
지정일 1988년 12월 23일
분류 유적건조물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합천 추본사‧명곡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추본사와 명곡사는 분성 배씨(裵氏)의 시조 배지타(裵祗沱)를 비롯하여 부(賦), 현경(玄慶), 우(祐), 승고(承古), 원룡(元龍), 맹후(孟厚), 명원(明遠), 형원(亨遠), 일장(一長)공을 제사지내는 곳이다.

배씨는 10여 개의 본관(本貫)이 전해지고 있으나 모두 신라 육부 촌장의 한 사람인 배지타에서 연원(淵源)하는 같은 뿌리의 혈족이다.

추본사는 1537년(중종 32)에 처음 세워졌으며, 1948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 새로 지었다. 사당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건물의 앞쪽에 기둥을 따로 설치하여 앞면을 틔운 점이 특이하다.

명곡사는 원래 1675년(숙종 1)에 세워진 명곡서원의 사당이었는데, 서원철폐령으로 헐렸다. 이후 1938년에 명곡사를 새로 지었고, 1948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추본사와 명곡사는 분성배씨 집안에서 선조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이곳에는 신라 육부족 촌장의 한 명으로 성씨의 시조가 되는 배지타를 비롯해 고려 건국에 공을 세운 중시조 배현경(?-936), 분성(현재 김해 지역)을 본관으로 하는 시조 배원룡, 명곡서원에 배향되어 있던 배일장(1613-1677) 등 총 11명의 위패가 모셔져 있으며, 매년 3월 3일에 이들에게 제사를 올린다.

추본사가 서쪽에, 명곡사가 동쪽에 자리해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두 건물은 각각 내삼문을 갖추고 담장을 둘러 별도의 영역을 설정했다.

추본사는 1537년에 처음 세워졌으며, 1948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 새로 지었다. 건물 정면에 4개의 기둥을 세워 단청과 연결되도록 한 후 지붕을 올려 건물 본체와 기둥 사이에 트여있는 공간을 만든 점이 독특하다.

명곡사는 1675년/1700년에 설립된 명곡서원의 사당이었다. 명곡서원이 1686년 서원철폐령으로 인해 헐린 뒤 1938년에 명곡사를 새로 지었고, 1948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내삼문 바깥쪽에는 명곡서원 유허비가 세워져 있다.

두 건물 외에도 경내에는 서쪽에 제사를 준비하기 위한 재실인 돈목재가 있고, 동쪽에 출입문이 있다.

  • 명곡서원 건립 시기 확인 필요 -> 민백에는 1700년으로 되어 있음.
  • 지금 위치로 옮긴 이유는 확인 안 됨.

참고 자료

-> ‘배씨’ 연혁 설명

  • 합천추본사및명곡사, 경남관광길잡이 문화재 DB, http://tour.gyeongnam.go.kr/index.gyeong?menuCd=DOM_000009404005001000&no=238&page_no=1435&reurl=DOM_000009404005000000 -> 합천 추본사(追本祠)와 명곡사(明谷祠)는 분성(盆城)(현 김해) 배(裵)씨의 시조(始祖)인 배지타(裵祗)를 비롯하여 배부(裵賦), 배현경(裵玄慶), 배우(裵祐), 배승고(裵承古), 배원룡(裵元龍), 배맹후(裵孟厚), 배명원(裵明遠),배형원(裵亨遠), 배일장(裵一長)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이다. 추본사는 1537년(중종 32)에 상정대(上汀坮)에 창건되었으나 무너져 1948년 현 위치로 이건하였다. 1675년에 명곡에 명곡서원을 지었으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1938년에 상정에 명곡사로 다시 지었으며, 1948년에 지금의위치로 옮겼다. 현재의 추본사와 명곡사는 가야천과 묵촌천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산사면 끝자락에 남동향하여 자리잡고 있다. 서쪽에 추본사를 두고 동쪽에 명곡사를 배치하였는데이 두 영역은 나란하게 배치되어 있다. 추본사의 서쪽에는 재실은 돈목재(敦睦齋)가 있으며 명곡사의 동쪽에는 출입문인 백인문(百忍門)이 있다. 추본사는 정면 3칸, 측면 1.5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이다. 평면은 정면에 툇칸을 두고 배면에통칸 마루방을 두어 위패를 봉안하였다. 공포는 정면에만 공포를 조성했는데 5익공이며 기둥상부에만 공포를 둔 것이 아니라 다포식처럼 주간에도 3기의 익공을 두었다. 초익공에는 용머리를 조각하였으며 2익공은 위로 향하도록하고 3익공은 아래로 향하도록 하였다. 2익공의 상단에는 만개한 꽃을 달고 3익공의 하단은 봉오리 문양을 조각해 놓았다. 2, 3익공은 마치 꽃봉오리처럼 이러한 공포의 구성은 4, 5익공도 똑같다. 보머리 끝에는 용두모양의 조각해 놓은 부재를 올려놓았다. 명곡사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에 평면은 통칸 마루방이며 공포형식은 2익공형식이다. 공포의 가공방법은 추본사와 유사하며 상부가구는 3량가이다.
  • 합천 추본사 명곡사,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1_1&ccbaCpno=2113802640000 -> 추본사와 명곡사는 분성 배씨의 시조 배지타를 비롯하여 부·현경·우·승고·원룡 및 맹후·명원·형원·일장 공을 제사지내는 곳이다. 추본사는 조선 중종 32년(1537)에 상정에 지었으나 무너져서 1948년 현위치로 옮겼다.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지붕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 지붕이며 앞면에 다른 기둥을 세워 트여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조선 숙종 1년(1675)에 명곡에 명곡서원을 지었으나 고종 때 서원철폐령으로 인해 헐리었다. 1938년에 상정에 명곡사로 다시 지었으며, 1948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앞면 3칸·옆면 1칸으로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추본사처럼 전면에 트여있는 공간은 없다.
  • 명곡서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18210 -> 1700년(숙종 26)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배일장(裵一長)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으며, 그 뒤 심일삼(沈一三)을 추가배향하였다.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어 지금까지 복원되지 못하였다.
  • 배일장, 국역 국조인물고(네이버 검색 연동)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946203&cid=62132&categoryId=62132 -> 생몰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