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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합천죽고리석조비로자나삼존상.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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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113803380000 합천 죽고리 석조 비로자나 삼존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사진출처=[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113803380000 합천 죽고리 석조 비로자나 삼존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합천 죽고리 석조비로자나 삼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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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합천 죽고리 석조비로자나삼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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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Stone Vairocana Buddha Triad in Jukgo-ri, Hapcheon
|한자=陜川 竹古里 石造 毘盧舍那 三尊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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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陜川 竹古里 石造毘盧舍那三尊象
|주소=경남 합천군 적중면 죽고리 산40,산37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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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경상남도 합천군 적중면 죽고리 산40,산37번지
 
|소장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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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번호=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38호
 
|지정번호=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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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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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ne Vairocana Buddha Triad in Jukgo-ri, Hapcheon'''
  
 
===영문 해설 내용===
 
===영문 해설 내용===
죽고리의 옛 절터에 있는 불상들로, 진리 그 자체를 상징하는 부처인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협시불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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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상징하는 부처인 비로자나불과 2구의 협시불로 이루어진 삼존불이다. 세 불상 모두 통일신라시대 말기 또는 고려시대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어디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며,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중앙에 있는 부처는 오른손으로 왼손 검지 손가락을 감싸고 있는 비로자나불의 손 모양을 하고 있다. 소라 모양의 머리카락으로 덮여 있는 머리에는 부처의 지혜를 상징하는 육계가 있고, 이마와 눈썹 사이에는 구멍이 있는데, 구슬을 박았던 자리이다. 이 구슬은 부처의 양 눈썹 사이에 난 희고 빛나는 털을 나타내며, 부처의 자비가 온 세계에 비춘다는 뜻을 담고 있다. 옷은 왼쪽 어깨에만 걸쳐져 있으며, 연꽃으로 장식한 사각형 받침에 앉아 있다.
 
  
좌우의 두 불상은 손의 방향만 반대일 뿐 동일한 모습이다. 가슴 가까이 올린 손에는 지물을 들고 있으며, 다른 한 손은 손바닥을 바깥으로 향한 채 허리 아래로 내려뜨렸다. 본존불의 향좌측에 있는 협시불은 머리 부분의 파손이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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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리에 있던 한 사찰에 모셔졌던 것으로 전해지지만, 원래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마을에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묘자리를 쓰기 위해 불상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난 이후 절이 폐사되었다고 한다.
  
불상들이 자리한 이 절터는 이곳에 있던 절의 이름이나 유래에 대해 알려진 것이 없어서 지역 이름을 따서 이름을 붙였다. 마을 주민들은 현재 불상 앞쪽에 있는 대나무숲을 사지로 인식하고 있으며, 묘자리를 쓰기 위해 불상을 옮기고 난 이후 절이 폐사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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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대좌에 앉아있는 비로자나불은 왼손으로 오른손 검지를 감싸고 있으며, 이러한 손 모양은 비로자나불의 특징이다. 소라 모양의 머리카락으로 덮여 있는 머리에는 부처의 지혜를 상징하는 육계가 있다. 이마와 눈썹 사이에 구슬 모양으로 새겨진 부분은 부처의 양 눈썹 사이에 난 희고 빛나는 털을 나타낸 것이며, 부처의 자비가 온 세계에 비춘다는 뜻을 담고 있다. 옷은 왼쪽 어깨에만 걸쳐져 있으며, 발은 몸에 비해 작게 표현되었다. 불상 뒤에는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성스러운 빛을 나타내는 광배가 있었을 것으로 보이나, 현재 광배는 없는 상태이다. 대좌는 가운데 기둥 부분만 원래의 것이고, 연꽃 문양을 새긴 상대석과 하대석은 새로 만든 것이다.
  
*본존불의 목과 머리 부분은 시멘트로 보수한 흔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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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의 두 불상은 손의 방향만 반대일 뿐 거의 유사한 모습이다. 가슴 가까이 올린 손에는 지물을 들고 있지만 무엇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협시보살들의 발은 별도로 제작한 후 결합했던 것으로 보이며, 우협시불의 발만 남아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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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경남 합천 죽고리 비로자나 삼존석불, 토함산솔이파리, 다음 블로그  http://blog.daum.net/kinhj4801/15961846 -> 2014년 답사 사진 / 이곳은 옥두봉의 북쪽자락으로 석불은 마을 민가 뒤편 산자락 초입에 위치하고 있다. 사지와 불상이 동일한 위치에 있었던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1977년 보고서에는 이를 동일 위치로 파악, 현재 불상이 있는 곳을 사지(寺址)로 보고하였다. 중앙에는 본존불인 비로자나불좌상이 있고 그 좌우에 입불상 2구가 배치되어 있는데 보살상이다. 마을 뒷쪽의 대나무밭 가장자리에 위치하고 있는 삼존석불에 대해 문화재청은 "원래 묘(墓)가 있었던 자리에 묘 주인의 극락왕생을 위하여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현재 묘는 없고, 3기의 불상만 남아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석불은 여러 차례 위치를 옮겨 봉안되었던 탓에 원래 사찰터는 아디인지 정확한 자리를 모른다고 하나 마을 주민들은 현재 불상 앞쪽에 있는 대나무숲을 사지로 인식하고 있으며, 묘자리를 쓰기 위해 불상을 옮기고 난 이후 절이 폐사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최근에 이 삼존불이 도난을 당했다가 본존불은 산등성이에서, 협시보살은 부산에서 되찾았다고 하며 이곳 사지(寺址)에서는 일제강점기 때 금동불상 1구가 출토된 바 있다는 보고서도 있다.
 
*경남 합천 죽고리 비로자나 삼존석불, 토함산솔이파리, 다음 블로그  http://blog.daum.net/kinhj4801/15961846 -> 2014년 답사 사진 / 이곳은 옥두봉의 북쪽자락으로 석불은 마을 민가 뒤편 산자락 초입에 위치하고 있다. 사지와 불상이 동일한 위치에 있었던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1977년 보고서에는 이를 동일 위치로 파악, 현재 불상이 있는 곳을 사지(寺址)로 보고하였다. 중앙에는 본존불인 비로자나불좌상이 있고 그 좌우에 입불상 2구가 배치되어 있는데 보살상이다. 마을 뒷쪽의 대나무밭 가장자리에 위치하고 있는 삼존석불에 대해 문화재청은 "원래 묘(墓)가 있었던 자리에 묘 주인의 극락왕생을 위하여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현재 묘는 없고, 3기의 불상만 남아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석불은 여러 차례 위치를 옮겨 봉안되었던 탓에 원래 사찰터는 아디인지 정확한 자리를 모른다고 하나 마을 주민들은 현재 불상 앞쪽에 있는 대나무숲을 사지로 인식하고 있으며, 묘자리를 쓰기 위해 불상을 옮기고 난 이후 절이 폐사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최근에 이 삼존불이 도난을 당했다가 본존불은 산등성이에서, 협시보살은 부산에서 되찾았다고 하며 이곳 사지(寺址)에서는 일제강점기 때 금동불상 1구가 출토된 바 있다는 보고서도 있다.
 
*2013 한국의 사지(寺址) 현황조사 보고서 上, 문화재청, pp. 585-587 -> 사지 설명 / 문화재 개별 설명 토함산솔이파리 블로그 내용 일부 중복
 
*2013 한국의 사지(寺址) 현황조사 보고서 上, 문화재청, pp. 585-587 -> 사지 설명 / 문화재 개별 설명 토함산솔이파리 블로그 내용 일부 중복

2021년 1월 16일 (토) 07:37 판


합천 죽고리 석조비로자나삼존상
Stone Vairocana Buddha Triad in Jukgo-ri, Hapcheon
합천 죽고리 석조 비로자나 삼존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합천 죽고리 석조비로자나삼존상
영문명칭 Stone Vairocana Buddha Triad in Jukgo-ri, Hapcheon
한자 陜川 竹古里 石造毘盧舍那三尊象
주소 경상남도 합천군 적중면 죽고리 산40,산37번지
지정번호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38호
지정일 1998년 11월 13일
분류 유물/불교조각/석조/불상
시대 통일신라
수량/면적 3점
웹사이트 합천 죽고리 석조 비로자나 삼존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대나무 숲이 있는 이 일대는 ‘죽고리 절터’로 알려져 있지만, 석불이 여러 차례 위치를 옮겨졌던 탓에 정확한 절터를 알 수 없다. 주민들은 무덤을 쓰기 위해 불상을 옮기고 난 이후 절이 폐사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고 한다.

중앙의 본존불(本尊佛)은 진리를 상징하는 비로자나불(毘盧舍那佛)로 지권인(智拳印)을 취하고 있다. 나발(螺髮)의 머리에 육계(肉髻)가 크게 표현되었고, 이목구비는 마모되어 뚜렷하지 않으나 눈이 약간 치켜 올라갔으며 입은 작다. 이마 중앙에는 백호공이 크게 새겨져 있다. 옷은 왼쪽 어깨에만 걸친 형태이며, 발은 몸에 비해 작게 표현하였다. 불상의 뒷부분에 광배가 있었을 것으로 보이나 현재 광배는 없는 상태이다. 대좌는 사각형의 연화대좌로 상대석과 하대석은 소실되어 중대석에 맞추어 새로 만든 것이다.

좌우에 세워진 두 불상은 수인만 바뀌었을 뿐 흡사하고 손에는 지물을 들고 있지만 무엇인지 불분명하다.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협시불로 문수와 보현보살로 추정되며 형식화가 진행된 지방양식의 불상으로 보인다.

죽고리 석조비로자나삼존상은 전체적으로 조각 기법 등으로 볼 때 통일신라시대 말기 또는 고려시대 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 지권인(智拳印) : 왼손의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 진 형상. 비로자나불에서만 볼 수 있다. 법으로써 중생을 구제한다는 의미가 있다.
  • 나발(螺髮) : 소라 모양으로 된 불상의 머리카락.
  • 육계(肉髻) : 부처의 정수리에 상투처럼 우뚝 솟아오른 혹과 같은 것으로 지혜를 상징.

영문

Stone Vairocana Buddha Triad in Jukgo-ri, Hapcheon

영문 해설 내용

진리를 상징하는 부처인 비로자나불과 2구의 협시불로 이루어진 삼존불이다. 세 불상 모두 통일신라시대 말기 또는 고려시대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죽고리에 있던 한 사찰에 모셔졌던 것으로 전해지지만, 원래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마을에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묘자리를 쓰기 위해 불상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난 이후 절이 폐사되었다고 한다.

가운데 대좌에 앉아있는 비로자나불은 왼손으로 오른손 검지를 감싸고 있으며, 이러한 손 모양은 비로자나불의 특징이다. 소라 모양의 머리카락으로 덮여 있는 머리에는 부처의 지혜를 상징하는 육계가 있다. 이마와 눈썹 사이에 구슬 모양으로 새겨진 부분은 부처의 양 눈썹 사이에 난 희고 빛나는 털을 나타낸 것이며, 부처의 자비가 온 세계에 비춘다는 뜻을 담고 있다. 옷은 왼쪽 어깨에만 걸쳐져 있으며, 발은 몸에 비해 작게 표현되었다. 불상 뒤에는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성스러운 빛을 나타내는 광배가 있었을 것으로 보이나, 현재 광배는 없는 상태이다. 대좌는 가운데 기둥 부분만 원래의 것이고, 연꽃 문양을 새긴 상대석과 하대석은 새로 만든 것이다.

좌우의 두 불상은 손의 방향만 반대일 뿐 거의 유사한 모습이다. 가슴 가까이 올린 손에는 지물을 들고 있지만 무엇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참고자료

  • 경남 합천 죽고리 비로자나 삼존석불, 토함산솔이파리, 다음 블로그 http://blog.daum.net/kinhj4801/15961846 -> 2014년 답사 사진 / 이곳은 옥두봉의 북쪽자락으로 석불은 마을 민가 뒤편 산자락 초입에 위치하고 있다. 사지와 불상이 동일한 위치에 있었던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1977년 보고서에는 이를 동일 위치로 파악, 현재 불상이 있는 곳을 사지(寺址)로 보고하였다. 중앙에는 본존불인 비로자나불좌상이 있고 그 좌우에 입불상 2구가 배치되어 있는데 보살상이다. 마을 뒷쪽의 대나무밭 가장자리에 위치하고 있는 삼존석불에 대해 문화재청은 "원래 묘(墓)가 있었던 자리에 묘 주인의 극락왕생을 위하여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현재 묘는 없고, 3기의 불상만 남아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석불은 여러 차례 위치를 옮겨 봉안되었던 탓에 원래 사찰터는 아디인지 정확한 자리를 모른다고 하나 마을 주민들은 현재 불상 앞쪽에 있는 대나무숲을 사지로 인식하고 있으며, 묘자리를 쓰기 위해 불상을 옮기고 난 이후 절이 폐사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최근에 이 삼존불이 도난을 당했다가 본존불은 산등성이에서, 협시보살은 부산에서 되찾았다고 하며 이곳 사지(寺址)에서는 일제강점기 때 금동불상 1구가 출토된 바 있다는 보고서도 있다.
  • 2013 한국의 사지(寺址) 현황조사 보고서 上, 문화재청, pp. 585-587 -> 사지 설명 / 문화재 개별 설명 토함산솔이파리 블로그 내용 일부 중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