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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삼가 기양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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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1년 1월 11일 (월) 15:57 판 (영문 해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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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삼가 기양루
합천 삼가 기양루,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합천 삼가 기양루
한자 陜川 三嘉 岐陽樓
주소 경남 합천군 삼가면 삼가1로 57 (금리)
지정번호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93호
지정일 1974년 2월 16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합천 삼가 기양루,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누각은 사방을 바라볼 수 있도록 문과 벽이 없이 다락처럼 높게 지은 건물을 뜻하는데, 기양루는 조선시대 삼가현 관청의 출입문으로 사용된 외삼문(外三門)*이다. 삼가현의 관청 건물들은 1914년 삼가현이 합천군에 병합될 때 헐어버렸기 때문에 그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다행히 1872년에 제작한 지방지도에는 삼가현 관아 출입구인 기양루가 표시되어 있다.

기양루라는 이름은 삼가의 옛 지명인 ‘기양’에서 따온 것이며, 이 건물이 누가 언제 지어졌는지는 모르지만, 합천군에서 가장 오래된 누각 건물로 알려져 있다. 앞면 3칸, 옆면 2칸의 2층 누각으로 관청의 누각답게 화려한 장식과 단청이 눈길을 끈다. 하부는 따로 기단을 만들지 않고, 원형의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기둥을 세웠다.

2층의 누(樓)에는 1914년 삼가현이 폐지 될 당시에 관청 건물에 걸렸던 여러 현판과 편액들을 떼서 이곳에 모아 걸어 두었다.


  • 외삼문(外三門) : 바깥담에 세 칸으로 세운 대문.

영문

영문 해설 내용

기양루는 조선시대 삼가현 관아의 출입문으로 사용되었던 누각이다.

처음 세워진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임진왜란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현재 합천 지역에 남아있는 누각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누각의 이름은 삼가의 옛 지명에서 따온 것이며, ‘도계문루’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이곳은 고을 수령들의 연회장으로도 쓰였다고 하며, 1914년에 삼가현을 합천군으로 병합하면서 대부분의 관청 건물들이 헐리고 기양루만 남았다.

건물 아래층 오른편에 출입을 위한 계단이 있고, 위층에는 1914년에 헐린 여러 관아 건물들의 현판들을 모아 걸어 두었다.

참고 자료

  • 합천 최고(最古)의 누각 삼가 기양루(三嘉 岐陽樓)_170127, 겨울섬, 개인 블로그 https://gotn.tistory.com/325 ->이 누각은 동편에 관아 터가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 삼가현성(三嘉縣城) 안에 있었던 관청의 부속 건물로 보여지며, 조성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 건물에 이순신 장군이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임진왜란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 지자체 제공 조사자 의견 중 -> 기양루의 ‘기양(岐陽)’이라는 명칭의 유래를 현재의 안내판에는 통일신라 경덕왕 때 삼기현(三岐縣)과 강양군(江陽郡)이라는 따온 것이라고 하지만, 강양(江陽)은 삼가가 아닌 합천의 옛지명이므로 삼가현의 관청건물의 지명에 사용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음. 초계면 출신의 유학자 권용현(權龍鉉, 1899~1988)이 지은 ‘삼가향교중수상량문(三嘉鄕校重修相梁文)’에는 삼가의 옛지명 기양(岐陽)을 사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