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구평 윤씨 신도비
합천 구평 윤씨 신도비 Steles of the Papyeong Yun Clan, Hapche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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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합천 구평 윤씨 신도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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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Steles of the Papyeong Yun Clan, Hapcheon |
한자 | 陜川 龜坪 尹氏 神道碑 |
주소 | 경상남도 합천군 오리밭길 85-26 (가회면, 제각) |
지정번호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20호 |
지정일 | 2002년 8월 14일 |
분류 |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2기(15.30㎡) |
웹사이트 | 합천 구평 윤씨 신도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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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신도비는 2품 이상의 벼슬을 지낸 사람의 행적을 기록하여 무덤 앞이나 무덤으로 가는 길목에 세운 비석을 말한다. 이 신도비는 구산 윤탁(龜山 尹鐸, 1554~1593)과 추담 윤선(秋潭 尹銑, 1559~1639) 선생을 기리기 위해 1901년에 세운 것으로 2기가 나란히 서 있다.
구산 윤탁은 조선 선조 25년(1592)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키고, 1593년에는 진주성에 들어가 왜적을 막다가 순절하였다. 추담 윤선은 임진왜란 기간 동안 세자(世子)의 막하에서 활동하였고, 광해군 때 의정부 우참찬을 지냈다.
두 비석은 내용만 다를 뿐 비의 재질과 모양 및 크기가 서로 같다. 아래에 거북받침돌을 하고, 그 위에 비몸[碑身]을 세운 뒤 머릿돌을 얹었다. 정면 바라보는 쪽에서 오른편이 구산 윤탁, 왼편에 있는 비석이 추담 윤선의 신도비이다.
이 신도비는 인조반정(仁祖反正)* 이후 남명학파가 와해되어 북인(北人)*이 거의 사라지고 없는 상황에서 조선 후기까지 북인임을 자처했던 집안에서 세운 비석이라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의가 있다.
- 인조반정(仁祖反正) : 1623년 이귀, 김유 등 서인(西人) 일파가 정변을 일으켜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인조를 왕위에 앉힌 사건.
- 북인(北人) : 조선 중기의 정파(政派).
영문
Steles of the Papyeong Yun Clan, Hapcheon
영문 해설 내용
조선시대의 학자이자 무신인 윤탁(1554-1593)과 문신 윤선(1559-1639)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신도비이다. 오른쪽이 윤탁의 비이고 왼쪽이 윤선의 비이며, 두 비 모두 파평윤씨 문중에서 1901년에 세웠다.
윤탁은 1585년 무과에 급제하였고,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활약하다가 1593년 진주성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윤선은 1588년 문과에 급제하였고, 임진왜란 당시 세자였던 광해군(재위 1608-1623)을 수행했으며, 광해군이 왕위에 오른 후 여러 고위 관직을 역임하였다.
두 비석은 재질, 모양, 크기가 서로 같다. 거북 모양의 받침돌, 사암 재질의 몸돌, 지붕 모양의 머릿돌로 이루어져 있다. 윤탁의 비는 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이만도(1842-1910)가 비문을 지었고, 윤선의 비는 문신 허전(1797-1886)이 비문을 지었다. 2기 모두 학자 하인수(1830-1904)가 글씨를 썼다.
참고자료
- 합천 가회면 구평, 申祺丞의 伸天之路, 다음 블로그, http://blog.daum.net/sws8007/16154857 -> 이미지 출처
- 윤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423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