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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e of Yi Jeung-y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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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stele was built in 1559 by the people of Hapcheon to commemorate the service of Yi Jeung-yeong (?-1563) as the magistrate of the county during 1554-1558. The stele bears the name Yuaebi which originates from the expression Yuaejaemin, meaning “to treat people with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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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ele consists of a body stone and a capstone decorated with a lotus bud. The text of the stele was composed by the prominent scholar Jo Sik (1501-1572) and calligraphed by a famous calligrapher Hwang Gi-ro (1521-1567). It describes Yi as a beneficent governor who during the extremely lean year of 1554 generously provided aid to the people of his county whom he loved like his own children.
  
 
===영문 해설 내용===
 
===영문 해설 내용===

2021년 3월 8일 (월) 13:59 판


합천군수 이증영 유애비
Stele of Yi Jeung-yeong
합천군수 이증영 유애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합천군수 이증영 유애비
영문명칭 Stele of Yi Jeung-yeong
한자 陜川郡守 李增榮 遺愛碑
주소 경상남도 합천군 죽죽길 80 (합천읍, 연호사)
지정번호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67호
지정일 2001년 12월 20일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기(基)
웹사이트 합천군수 이증영 유애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이 비석은 합천군수 이증영(李增榮, ?~1563)의 공덕을 칭송하기 위해 세운 송덕비(頌德碑)로 ‘백성들에게 사랑을 베푼다’라는 ‘유애재민(遺愛在民)’에서 따와 유애비(遺愛碑)라고 하였다. 비석에는 1554년부터 1558년까지 합천군수를 지냈던 이증영이 1554년의 극심한 흉년에 백성을 자식처럼 사랑하여 구휼하고, 청렴하게 관직생활을 했던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비석은 1559년(조선 명종 14)에 세워졌으며, 비문은 남명 조식(南冥 曺植)이 지었고, 글씨는 고산 황기로(孤山 黃耆老, 1521∼1575?)가 썼다. 황기로는 초서(草書)를 잘 써서 ‘초성(草聖)’이라 불린 명필인데, 그의 작품 가운데 해서(楷書)로 쓰여진 작품으로는 이 비석이 유일하게 알려져 있다.

영문

Stele of Yi Jeung-yeong

This stele was built in 1559 by the people of Hapcheon to commemorate the service of Yi Jeung-yeong (?-1563) as the magistrate of the county during 1554-1558. The stele bears the name Yuaebi which originates from the expression Yuaejaemin, meaning “to treat people with love.”

The stele consists of a body stone and a capstone decorated with a lotus bud. The text of the stele was composed by the prominent scholar Jo Sik (1501-1572) and calligraphed by a famous calligrapher Hwang Gi-ro (1521-1567). It describes Yi as a beneficent governor who during the extremely lean year of 1554 generously provided aid to the people of his county whom he loved like his own children.

영문 해설 내용

1554년부터 1558년까지 합천 군수를 지낸 이증영(?-1563)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합천 사람들이 1559년에 세웠다. 비석의 이름은 ‘유애비’로, ‘백성들에게 사랑을 베푼다’라는 뜻의 ‘유애재민’에서 비롯되었다.

비석은 몸돌과 연꽃봉오리 모양의 머릿돌로 이루어져 있다. 비문은 합천 출신의 저명한 유학자 조식(1501-1572)이 지었고, 이증영이 1554년의 극심한 흉년에 백성을 자식처럼 사랑하여 구휼하고, 청렴하게 관직생활을 했던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글씨는 명필로 이름난 황기로(1521-1567)가 썼다.

참고자료

  • 지자체 제공 조사자 의견 중 -> 조선시대의 비(碑)는 비의 머리 부분에 해당하는 비두(碑頭)와 비문을 새기는 비신(碑身) 그리고 비를 받치고 있는 비부(碑趺: 비대(碑臺)⋅비좌(碑座)⋅대좌(臺座)라고도 한다)로 구성되어 있다. 비의 재료를 살펴보면, 조선 초기에는 몇몇 예를 제외하고는 비신과 비두가 서로 연결된 통석(通石)으로 되어 있다. 조선 숙종 연간부터는 비두와 비신이 분리된 별도의 석재로 이루어졌다. (출처-네이버 지식백과(묘비로 조상의 이름을 빛내다 『장례의 역사』, 2006. 박태호))
  • 합천군수 이증영 유애비,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113803670000&pageNo=1_1_1_1 -> 이 비석의 주인공 이증영은 황기로와 함께 조선 중종 29년(1534)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이후 명종이 대군으로 있을 당시 그의 사부였으며, 명종이 즉위한 뒤 벼슬길에 올라 여러 벼슬을 거친 뒤 합천군수를 지내게 되었다. 그 뒤 1563년 청주목사 재직 중에 죽었다.
  • 합천군수 이증영 유애비, 여행하며 역사도 만나도 맛집도 찾는..., 네이버 블로그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gamrae007&logNo=221008871500&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 -> 2017년 현장 사진
  • 연호사&합천군수 이증영 유애비&대야성 비군, 들꽃-문화재 다 모여라, 네이버 블로그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hyeng19&logNo=220952402289&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 -> 비군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