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중

"함양 법인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의 두 판 사이의 차이

Heritage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자문의견)
(2차 수정)
55번째 줄: 55번째 줄:
  
 
====2차 수정====
 
====2차 수정====
이 불상은 죽은 이를 서방 극락세계로 인도하여 그의 영혼을 구제하는 아미타여래를 나타낸 것이다. 모든 중생이 성불하고 왕실과 백성이 안녕하기를 기원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조선 효종 8년(1657) 여름 덕유산 은신암에서 제작되었다. 불상 제작에는 영규(靈圭)와 조능(祖能)을 비롯한 총 7명의 승려 조각가들이 참여하였고, 700여 명의 시주자들이 동참하였다. 시주자로 참여한 승려 중에는 17세기 불교 조각을 주도했던 여러 유파의 승려 조각가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었다.
+
법인사 극락보전의 주불인 이 불상은 죽은 이를 서방 극락세계로 인도하여 그의 영혼을 구제하는 아미타여래를 나타낸 것이다. 모든 중생이 성불하고 왕실과 백성이 안녕하기를 기원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조선 효종 8년(1657) 여름 덕유산 은신암에서 제작되었다. 불상 제작에는 영규(靈圭)와 조능(祖能)을 비롯한 총 7명의 승려 조각가들이 참여하였고, 700여 명의 시주자들이 동참하였다. 시주자로 참여한 승려 중에는 17세기 불교 조각을 주도했던 여러 유파의 승려 조각가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었다.
  
불상은 결가부좌를 하고 있으며, 오른손은 가슴 높이까지 들고 왼손은 무릎에 얹어 엄지와 가운뎃손가락을 맞대고 있다. 이 손 모양은 중생에게 설법하는 아미타여래를 상징하는 것이다. 양어깨를 덮은 상의(上衣), 그 안의 내의(內衣), 그리고 오른쪽 어깨 일부와 왼팔을 감싸고 있는 대의(大衣)를 입고 있으며, 두 다리 사이에서 부채꼴 모양으로 힘있게 표현된 옷자락의 주름이 매우 특징적이다.  
+
불상은 결가부좌를 하고 있으며, 오른손은 가슴 높이까지 들고 왼손은 무릎에 얹어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다. 이 손 모양은 중생에게 설법하는 아미타여래를 상징하는 것이다. 양어깨를 덮은 상의(上衣), 그 안의 내의(內衣), 그리고 오른쪽 어깨 일부와 왼팔을 감싸고 있는 대의(大衣)를 입고 있으며, 두 다리 사이에서 부채꼴 모양으로 힘있게 표현된 옷자락의 주름이 매우 특징적이다.  
  
불상 안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 경전, 다라니 등의 유물들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41호로 지정되었다. 발원문은 불상 안에 다시 봉안되었고, 나머지 유물들은 해인사 성보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
불상 안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은 불상 안에 다시 봉안되었고, 경전과 다라니 등의 나머지 복장 유물들은 해인사 성보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문맥요소'''==
 
=='''문맥요소'''==

2021년 4월 13일 (화) 14:17 판


함양 법인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Wooden Seated Amitabha Buddha of Beobinsa Temple, Hamyang
함양 법인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함양 법인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영문명칭 Wooden Seated Amitabha Buddha of Beobinsa Temple, Hamyang
한자 咸陽 法印寺 木造阿彌陀如來坐像
주소 경남 함양군 안의면 금성길 14, 법인사 (금천리)
지정번호 보물 제1691호
지정일 2010년 12월 21일
분류 유물/불교조각/목조/불상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구
웹사이트 함양 법인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없음

수정 국문

초고

법인사 극락보전에 봉안되어 있는 이 불상은 죽은 이를 서방 극락세계로 인도하여 그의 영혼을 구제하는 아미타여래를 나타낸 것이다.

1657년에 조성된 이 불상은 영규(靈圭)가 불사의 책임을 맡고, 조능(祖能) 등 7명의 조각승들이 제작에 참여하였으며, 덕유산 장수사(長水寺)의 부속 암자였던 은신암(隱身菴)에서 조성되었다.

불상은 결가부좌를 하고 있으며, 오른손은 가슴 높이까지 들고 왼손은 무릎에 얹어 엄지와 가운뎃손가락을 맞대고 있다. 이 손 모양은 중생에게 설법하는 아미타여래를 상징하는 것이다.

이 불상은 법의의 주름이 특징적이다. 다리를 덮은 옷자락 중앙에는 부채꼴 모양의 주름을 표현하였으며, 무릎 좌우의 주름은 각기 다르게 조각하였다.

불상 안에 봉안되어 있던 조성발원문과 경전, 다라니 등의 유물들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41호로 지정되었다. 발원문은 불상 안에 다시 봉안되었고, 나머지 유물들은 해인사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1차 수정

이 불상은 죽은 이를 서방 극락세계로 인도하여 그의 영혼을 구제하는 아미타여래를 나타낸 것으로, 조선 효종 8년(1657)에 조성되었다. 모든 중생이 성불하고 왕실과 백성이 안녕하기를 기원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영규(靈圭)와 조능(祖能)을 비롯한 총 7명의 승려 조각가들이 제작에 참여하였고 700여 명이 시주하였다.

불상은 결가부좌를 하고 있으며, 오른손은 가슴 높이까지 들고 왼손은 무릎에 얹어 엄지와 가운뎃손가락을 맞대고 있다. 이 손 모양은 중생에게 설법하는 아미타여래를 상징하는 것이다. 양어깨를 덮은 상의(上衣), 그 안의 내의(內衣), 그리고 오른쪽 어깨 일부와 왼팔을 감싸고 있는 대의(大衣)를 입고 있으며, 두 다리 사이에서 부채꼴 모양으로 힘있게 표현된 옷자락의 주름이 매우 특징적이다.

불상 안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 경전, 다라니 등의 유물들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41호로 지정되었다. 발원문은 불상 안에 다시 봉안되었고, 나머지 유물들은 해인사 성보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 1
    • 이 불상은 죽은 이를 서방 극락세계로 인도하여 그의 영혼을 구제하는 아미타여래를 나타낸 것으로, 조선 효종 8년(1657)에 조성되었다. 모든 중생이 성불하고 왕실과 백성이 안녕하기를 기원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영규(靈圭)와 조능(祖能)을 비롯한 총 7명의 승려 조각가들이 제작에 참여하였고 700여 명이 시주하였다. --> 이 불상은 서방정토에 머물면서 중생을 극락으로 이끈다는 아미타여래좌상이다. 발원문에는 조선 효종 8년(1657) 영규(靈圭)와 조능(祖能)을 비롯한 총 7명의 승려 조각가들이 제작에 참여하였다는 내용이 있어서 여러 명의 조각승들이 분업을 통해 불상을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2. 분야별 자문위원 2
    • 불상의 원 제작봉안처 표기 -> 경상도慶尙道 안음安陰 북령北嶺 덕유산德裕山 은신암隱身菴
    • 불상의 형태 설명문장 수정 -> 얼굴, 몸, 수인, 의습 등의 특징을 순차적으로 정리.
    • 시주질 내용을 추가 -> 시주에 참여한 승려들 가운데는 단연 벽암각성의 문도가 두드러지며 17세기 불교 조각을 주도했던 여러 유파의 조각승(彫刻僧)들이 대거 시주자로 참여하고 있는 점이 특색있다.
  3. 읽기 쉬운 문안 자문위원
    • 이 불상은 극락보전의 주불로 죽은 이를 서방 극락세계로 인도하여 그의 영혼을 구제하는 아미타여래를 나타낸 것으로, 조선 효종 8년(1657)에 경상도(慶尙道) 안음(安陰) 북령(北嶺) 덕유산(德裕山) 은신암(隱身菴)에서 조성되었다. 모든 중생이 성불하고 왕실과 백성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영규(靈圭)와 조능(祖能) 등 7명의 승려 조각가들이 제작에 참여하였다. 벽암(碧岩) 각성(覺性)과 호구당(虎丘堂) 계주(戒珠) 등 대선사가 불사를 이끌어, 700여 명이 시주하였다.
      이 불상은 전체적으로 비례가 맞고 안정감이 있다. 손의 모양인 수인은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하고 오른손은 손등을 위로 하여 중지와 엄지를 맞댄 중품하생인(中品下生印)으로 중생에게 설법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양어깨를 덮은 상의(上衣), 그 안의 내의(內衣), 그리고 오른쪽 어깨 일부와 왼팔을 감싸고 있는 대의(大衣)를 입고 있으며, 두 다리 사이에서 부채꼴 모양으로 힘있게 표현된 옷자락의 주름이 매우 특징적이다. 코가 높고 입이 가늘어서 날카로운 인상을 주지만, 은은한 미소가 감돌고 있어 부드러움을 주고 있다.
      불상 안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은 불상 안에 다시 봉안되었고, 나머지 경전, 다라니 등의 복장 유물들은 해인사 성보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조선 후기 불상 조각양식의 계승과 변화과정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2차 수정

법인사 극락보전의 주불인 이 불상은 죽은 이를 서방 극락세계로 인도하여 그의 영혼을 구제하는 아미타여래를 나타낸 것이다. 모든 중생이 성불하고 왕실과 백성이 안녕하기를 기원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조선 효종 8년(1657) 여름 덕유산 은신암에서 제작되었다. 불상 제작에는 영규(靈圭)와 조능(祖能)을 비롯한 총 7명의 승려 조각가들이 참여하였고, 700여 명의 시주자들이 동참하였다. 시주자로 참여한 승려 중에는 17세기 불교 조각을 주도했던 여러 유파의 승려 조각가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었다.

불상은 결가부좌를 하고 있으며, 오른손은 가슴 높이까지 들고 왼손은 무릎에 얹어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다. 이 손 모양은 중생에게 설법하는 아미타여래를 상징하는 것이다. 양어깨를 덮은 상의(上衣), 그 안의 내의(內衣), 그리고 오른쪽 어깨 일부와 왼팔을 감싸고 있는 대의(大衣)를 입고 있으며, 두 다리 사이에서 부채꼴 모양으로 힘있게 표현된 옷자락의 주름이 매우 특징적이다.

불상 안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은 불상 안에 다시 봉안되었고, 경전과 다라니 등의 나머지 복장 유물들은 해인사 성보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문맥요소

Nodes

ID Class Label Description
함양 법인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Object 함양 법인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법인사 극락보전 Place 법인사 극락보전 현재 법인사의 극락보전 내 오른쪽에 봉안되어 있다.
함양 법인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복장물 일괄 Heritage 함양 법인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복장물 일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41호로 지정되어 있다.
영규 Actor 영규(靈圭)
조능 Actor 조능(祖能)
하품중생인 Concept 하품중생인(下品衆生印) 오른손은 들고 왼손은 무릎에 얹어 엄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맞대고 있는 손모양은 중생에게 설법하는 아미타여래를 상징한다.
수인 Concept 수인(手印) 모든 불보살과 제천선신의 깨달음의 내용이나 활동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표시 가운데, 양쪽 손가락으로 나타내는 모양.
은신암 Place 은신암(隱身菴) 이 불상은 덕유산 장수사의 말사인 은신암에서 조성되었다.

Links

Source Target Relation
함양_법인사_목조아미타여래좌상 법인사_극락보전 currentLocation
함양_법인사_목조아미타여래좌상 조능 creator
함양_법인사_목조아미타여래좌상 영규 creator
함양_법인사_목조아미타여래좌상 하품중생인 isRelatedTo
함양_법인사_목조아미타여래좌상 은신암 isProducedIn
하품중생인 수인 type
함양_법인사_목조아미타여래좌상 함양_법인사_목조아미타여래좌상_복장물_일괄 isRelatedTo
함양_법인사_목조아미타여래좌상_복장물_일괄 H38-0441-0000 isDesignatedAs

참고자료

  • 함양 법인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1123816910000&pageNo=1_1_1_1 → 문화재 기본 설명 : 수인은 하품중생인을 결하였는데,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오른손은 손등을 위로 하여 중지와 엄지를 맞대었다. 나발을 표현된 머리에는 육계가 구분이 불분명하게 낮고, 육계의 경계에는 반달형의 중간계주를, 정수리에는 원통형의 정상계주를 표현하였다. 미간에는 백호를 돌출되게 표현하고, 목에는 삼도의 흔적을 얕게 표현하였다. / 이 불상은 군의 주름과 오른쪽 다리 소매 자락의 표현이 매우 특징적인데, 다리 중앙에서 수평으로 부채꼴 모양으로 주름을 이루는 것이나 무릎 좌우의 주름이 각기 다른 점 그리고 왼쪽 무릎 뒤에 놓인 좁은 소맷자락이 무릎에 밀착되어 흘러내려 승각기의 안쪽으로 들어가게 표현하였지만 소매자락이 몸에 밀착되지 않게 표현한 점 등은 이 불상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 법인사 아미타여래좌상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할 당시 발원문과 복장 유물이 확인되었으나 발원문은 현재 불상에 다시 납입한 것으로 추정되며, 발원문을 제외한 묘법연화경과 보협인다라니, 복장 마개 등의 복장 유물은 현재 해인사성보박물관에 위탁 보관중이다.
  • 『문화재대관 – 보물_불교조각 2』, 문화재청, 2017, 320~322쪽. → 법인사 극락보전의 주불로 봉안되어 있는 이 불상은, 원래 순치順治 14년(효종 8, 1657) 여름에 경상도慶尙道 안음安陰 북령北嶺 덕유산德裕山 은신암隱身菴에서 제작되었던 불상이다. 모든 중생의 성불도成佛道와 왕실과 백성의 안녕 등을 발원할 목적으로 조성된 이 불상은 벽암碧岩 각성覺性과 호구당虎丘堂 계주戒珠 등 제산諸山의 대선사를 앞세워 불사를 이끌었고, 이에 수많은 승속의 사부대중들이 시주로 화답하였다. 불상의 제작에는 영규靈圭와 조능祖能, 현수玄修, 문찬文瓚, 영열英悅, 심인心印, 상신上信 등 일곱 명의 조각승이 공조하였고, 700여명의 많은 시주자들이 동참하였다.
  • 함양 법인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복장물 일괄, 디지털함양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hamyang.grandculture.net/hamyang/toc/GC07200430 → 함양 법인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복장물 일괄은 2006년 4월 6일에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41호로 지정되었다. 복장물로는 전지 1장으로 이루어진 「조성발원문(造成發願文)」과 함께 대장경 목록 1매,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2권, 『보치진언다라니(寶齒眞言陀羅尼)』 683매, 『다라니(陀羅尼)』 2장 등이 있다. 「조성발원문」은 불상 안에 다시 납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묘법연화경』을 비롯한 복장물은 경상남도 합천군 해인사 성보박물관에서 위탁보관 중이다. / 복장물에서 나온 「조성발원문」을 통해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이 1657년(효종 8)에 조성되었으며, 전체 불사의 책임은 영규(靈圭)가 맡았고, 불상은 조능(祖能)을 비롯한 조각승이 맡았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불상 조성에 참여한 조각승들의 담당 역할이 분명하게 분리되어 기록되어 있다. 또한 시주자, 조상불사 관계자, 당시 기거했던 아동의 이름까지도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다.


  • 조능의 불상은 두 다리 사이 부채꼴 모양의 힘 있는 군의 표현과 복부로 들어가는 복견의 예각, 각선이 깊고 예리한 옷 주름이 특징이다. 이러한 특징들은 17세기 전반에 전라북도와 충청남도에서 활동한 조각승 법령(法靈) 및 법령의 작풍을 계승한 조각승 혜희(慧熙)와 유사하다.
  • 소맷자락에 대한 설명: 이 불상은 군의 주름과 오른쪽 다리 소매 자락의 표현이 매우 특징적인데, <…중략…> 왼쪽 무릎 뒤에 놓인 좁은 소맷자락이 무릎에 밀착되어 흘러내려 승각기의 안쪽으로 들어가게 표현하였지만 소매자락이 몸에 밀착되지 않게 표현한 점 등은 이 불상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 불상 안에 들어 있던 발원문에는 각 조각승들이 담당한 역할이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