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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333802130000 함양 도천리 소나무],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사진출처=[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333802130000 함양 도천리 소나무],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함양 도천리 소나무
 
|대표명칭=함양 도천리 소나무
|영문명칭=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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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Pine Tree of Docheon-ri, Hamyang
 
|한자=咸陽 道川里 소나무
 
|한자=咸陽 道川里 소나무
"|주소= 경남 함양군 병곡면 도천리 717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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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도천리 717번지
 
|소장처=
 
|소장처=
 
|지정번호=경상남도 기념물 제213호
 
|지정번호=경상남도 기념물 제2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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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해설문'''==
===기존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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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소나무는 우리나라 어디서든 잘 자라는 소나무과에 속한 늘 푸른 큰키나무(喬木)이다. 껍질은 검붉은 비늘형태이며, 잎은 바늘모양으로 두 잎이 모여 난다. 5월에 꽃이 피며, 열매인 솔방울은 9 ~ 11월에 익는다. 나무는 건축자재와 철도의 침목, 땔감 등으로 쓰이고, 소나무 진액인 송진은 약용이나 공업용으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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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천리 소나무는 나이가 35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대략 10m, 둘레는 2.8m 정도이고 하늘에서 사방으로 뻗은 가지의 폭은 약 20m에 달한다. 용이 우물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하여 용천송이라고도 한다.  
  
이 소나무는 수령이 350여 년에 이르는 것으로 높이 10m, 둘레 2.8m로, 하늘에서 사방으로 뻗친 가지의 폭(樹冠)은 20m에 달한다. 용이 우물에서 나무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하여 용천송(龍天松)이라고 부른다. 이 소나무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이 소나무 뿌리 쪽에 우물이 하나 있는데 아무리 심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았다고 한다. 이 마을은 하륜(河崙, 1347 ~1416)의 후손들이 대대로 살아온 곳으로서, 뒤에 후손 중의 한사람의 하맹보(河孟寶)가 우물 뒤에 토를 잡고 살았다고 한다. 선생의 부인은 매일 새벽 이 우물의 맑은 물을 떠놓고 남편과 아들을 위해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그 기도가 효험이 있었는지 남편은 충(忠), 효(孝), 예(禮)를 갖춘 공신(功臣)이 되었으며, 그의 아들 황(滉)도 군수품의 저정과 출납을 담당한 군자감(軍資監)에서 벼슬을 지냈다고 한다. 아들 황이 어머니의 정성을 기리기 위해 우물 위에다 한그루의 소나무를 심었는데 그 나무가 점점 자라면서 용이 승천하는 모습으로 변해 갔다고 한다.  
+
도천리 소나무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이 소나무의 뿌리 쪽에 우물이 하나 있는데 아무리 심한 가뭄에도 우물이 마르지 않았다고 한다. 조선 초기의 문신인 하륜(河崙)의 후손들이 대대로 살던 이 마을에 후손 중의 한 사람인 하맹보(河孟寶)가 우물 뒤에 터를 잡고 살았다. 그 부인이 매일 새벽 이 우물에 정화수를 떠 놓고 남편과 아들을 위해 두 손 모아 빌었는데, 남편은 충, 효, 예를 갖춘 공신이 되었고 그의 아들 황(滉)도 군자감(軍資監)에서 벼슬을 지냈다. 아들 황이 어머니의 정성을 기리기 위해 우물 위쪽에 한 그루의 소나무를 심었고 그 나무가 점점 자라면서 용이 승천하는 모습으로 변해 갔다고 한다.
  
===수정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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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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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ne Tree of Docheon-ri, Hamyang'''
소나무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나무로 전국 산야에 자라는 상록 침엽수이다. 껍질은 검붉은 비늘 형태이며, 잎은 바늘 모양으로 두 잎이 모여 난다. 5월에 꽃이 피며, 열매인 솔방울은 9~11월에 익는다. 잎과 꽃가루를 식용하며 나무는 목재로 쓰인다. 전국 각처에 수령이 오래된 소나무들이 천연기념물로 보호받고 있다.
 
  
이 소나무는 수령(樹齡)이 350여 년에 이르며 높이 10m, 둘레 2.8m로, 사방으로 뻗친 가지의 폭(樹冠)은 20m에 달한다. 용천송(龍天松)으로도 불리는데 용이 우물에서 나무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나무 아래에 있는 우물은 극심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았다고 한다. 이 우물과 관련하여 설화가 하나 전해진다.
+
Pine tree (''Pinus densiflora'' Siebold et Zucc.) is an evergreen coniferous tree in the family of Pinaceae. It is native to Korea, Japan, and China.
  
함양 도천리 우동(愚洞)은 조선초기 문신 하륜(河崙, 1347~1416)의 후손들이 대대로 살아온 곳으로서, 후손 중의 한 사람인 하맹보(河孟寶, 1531~1593)가 이 우물 뒤에 터를 잡고 살았다고 한다. 맹보의 부인이 매일 새벽 이 우물의 물을 떠놓고 기도를 드렸는데 그 기도의 효험이 있었는지 남편인 맹보는 공신(功臣)이 되었으며, 그의 아들 제(悌)<ref>두산백과에서는 아들 이름을 ‘황(滉)’이라 하고 있으나 이것을 제외한 나머지의 모든 자료에서 ‘제(悌)’로 확인되어 수정하였습니다.</ref>는 군수품의 저장과 출납을 담당한 군자감(軍資監)에서 벼슬을 지냈다고 한다. 아들 제가 어머니의 정성을 기리기 위해 우물 위에 한 그루의 소나무를 심었는데 그 나무가 바로 지금의 함양 도천리 소나무, 용천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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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ine tree in Docheon-ri is presumed to be over 350 years old. It measures about 10 m in height and 2.8 m in circumference at the trunk. The crown of branches spreads out in every direction and measures about 20 m in diame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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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e is a story about the origin of this tree. Udong Village in Docheon-ri was home to the descendants of Ha Ryun (1347-1416), a civil official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One of them, Ha Maeng-bo (1531-1593), lived on the land behind a well that was said to never dry up, no matter how severe the drought. His wife came every morning to draw water from the well and pray for her husband and son. Her prayers were answered, as Ha Maeng-bo was bestowed with the title of meritorious subject, and their son went on to serve as an official at the government bureau responsible for the storage of military supplies and expenditure. To honor his mother’s devotion, Ha Maeng-bo’s son planted this single pine tree behind the well. It is said that as the tree grew, it grew to resemble a dragon ascending into the sky. It therefore came to be known as Yongcheonsong, meaning "Pine of the Heavenly Dragon." The well can still be seen at the base of the tree.
<references/>
 
  
====1차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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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해설 내용===
소나무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나무로 전국 산야에 자라는 상록 침엽수이다. 껍질은 검붉은 비늘 형태이며, 잎은 바늘 모양으로 두 잎이 모여 난다. 5월에 꽃이 피며, 열매인 솔방울은 9~11월에 익는다. 잎과 꽃가루를 식용하며 나무는 목재로 쓰인다. 전국 각처에 수령이 오래된 소나무들이 천연기념물로 보호받고 있다.
+
소나무는 소나무과의 상록침엽교목으로 한국, 일본, 중국 등지에서 자란다.
  
도천리에 있는 이 소나무는 수령이 350여 년에 이르며, 높이 10m, 가슴높이의 둘레 2.8m, 사방으로 뻗친 가지의 폭은 20m에 달한다. 용이 우물에서 나무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하여, 용천송(龍天松)이라고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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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천리 소나무는 나이가 350년 이상으로 추정된다. 높이는 대략 10m, 둘레는 2.8m 정도이고 사방으로 뻗은 가지의 폭은 20m에 달한다.  
  
소나무 아래에 있는 우물은 극심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았다고 한다. 우물과 관련하여 설화가 하나 전해진다. 도천리 우동마을은 조선시대의 문신 하륜(河崙, 1347~1416)의 후손들이 대대로 살아온 곳으로서, 후손 중의 한 사람인 하맹보(河孟寶, 1531~1593)가 이 우물 뒤에 터를 잡고 살았다고 한다. 하맹보의 부인이 매일 새벽 이 우물의 물을 떠놓고 기도를 드렸는데, 그 기도의 효험이 있었는지 남편은 공신이 되었고 아들 하제(河悌)는 군수품의 저장과 출납을 담당한 군자감에서 벼슬을 지냈다. 하제가 어머니의 정성을 기리기 위해 우물 위에 한 그루의 소나무를 심었는데 그 나무가 바로 지금의 도천리 소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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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기원에 대해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도천리 우동마을은 조선시대의 문신 하륜(1347-1416)의 후손들이 대대로 살아온 곳이다. 후손 중의 한 사람인 하맹보(1531-1593)는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우물 뒤에 터를 잡고 살았다. 하맹보의 부인은 매일 새벽 우물물을 떠 놓고 남편과 아들을 위해 기도를 드렸는데, 남편은 공신이 되었고 아들은 군수품의 저장과 출납을 담당한 기관에서 벼슬을 지냈다. 아들이 어머니의 정성을 기리기 위해 우물 위에 한 그루의 소나무를 심었고, 그 나무가 점점 자라면서 용이 승천하는 모습으로 변해 갔다고 한다. 이후 이 나무는 ‘용천송’이라고도 불리며, 소나무 아래에는 우물이 여전히 남아 있다.
 
 
====자문의견====
 
# 분야별 자문위원 1
 
#*수정 문안의 첫 문단은 소나무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이며, 마지막 문단은 우물에 대한 설명인데, 소나무에 대한 설명보다도 훨씬 길고 자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조금 주객이 전도된 듯한데 적절히 문안의 내용과 분량을 조정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 분야별 자문위원 2
 
#*잎과 꽃가루를 식용하며 나무는 목재로 쓰인다. 전국각처에 수령이 오래된 소나무들이 천연기념물로 보호받고 있다. →삭제 하는게 좋을 듯(안내판 내용이 너무 길고 이 내용은 일반적인 내용이기 때문에 삭제해도 무방함)
 
# 읽기 쉬운 문안 자문위원
 
#*첫 단락의 소나무 일반 설명은 필요 없어 보입니다.
 
#*도천리 소나무라는 이름이 있으므로 ‘도천리에 있는 이 소나무는~’은 도천리 소나무는~으로 쓰는 게 더 명확해 보입니다.
 
#*‘사방으로 뻗친~’=> 사방으로 뻗은~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하여=> 하고 있다 하여
 
#*‘소나무 아래에 있는 우물은~마르지 않았다고 한다’는 문장 보다는 기존 안내문의‘이 소나무 뿌리 쪽에 우물이 하나 있는데 이 우물은 아무리 심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았다고 한다.’이 글이 더 자연스럽게 뒷문장으로 연결 됩니다. (이 우물과 관련하여 설화가 하나 전해진다-삭제 필요함. 우물이 아니라 소나무로 이야기를 끌어가야 함으로)
 
#*살아온 곳으로서=> 살아온 곳인데
 
#*하맹보가=> 하맹보도 /하맹보의 부인이=> 하맹보의 부인은/우물의 물=>우물물
 
#*기도를 드렸는데, 이 문장 이후로도 문장이 너무 깁니다. 기도를 드렸다. 끊어주세요.
 
#*마지막 문장은 ‘그 나무가 자라면서 점점 용이 승천하는 모습으로 변해 지금의 도천리 소나무가 되었다고 전한다
 
 
 
====2차 수정====
 
소나무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나무로 전국 산야에 자라는 상록 침엽수이다. 껍질은 검붉은 비늘 형태이며, 잎은 바늘 모양으로 두 잎이 모여 난다. 5월에 꽃이 피며, 열매인 솔방울은 9~11월에 익는다.
 
 
 
도천리 소나무는 수령이 350여 년에 이르며, 높이 10m, 가슴높이의 둘레 2.8m, 사방으로 뻗은 가지의 폭은 20m에 달한다. 용이 우물에서 나무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형상을 하고 있다 하여, 용천송(龍天松)이라고도 불린다.
 
 
 
소나무 뿌리 쪽에 우물이 하나 있는데 아무리 심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았다고 한다. 도천리 우동마을은 조선시대의 문신 하륜(河崙, 1347~1416)의 후손들이 대대로 살아온 곳인데, 후손 중의 한 사람인 하맹보(河孟寶, 1531~1593)도 이 우물 뒤에 터를 잡고 살았다고 한다. 하맹보의 부인은 매일 새벽 우물물을 떠 놓고 기도를 드렸는데, 그 기도의 효험이 있었는지 남편은 공신이 되었고 아들 하제(河悌) 역시 군수품의 저장과 출납을 담당한 군자감에서 벼슬을 지냈다. 하제가 어머니의 정성을 기리기 위해 우물 위에 한 그루의 소나무를 심었는데 그 나무가 바로 지금의 도천리 소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문맥요소'''==
 
=='''문맥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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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함양군 문화유산]]
 
[[분류:함양군 문화유산]]
 
[[분류:천연기념물]]
 
[[분류:천연기념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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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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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소나무]]
 
[[분류:2021 국문집필]]
 
[[분류:2021 국문집필]]
 
[[분류:2021 국문초안지원사업]]
 
[[분류:2021 국문초안지원사업]]
 +
[[분류:2021 영문집필]]

2021년 7월 12일 (월) 17:01 기준 최신판


함양 도천리 소나무
Pine Tree of Docheon-ri, Hamyang
함양 도천리 소나무,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함양 도천리 소나무
영문명칭 Pine Tree of Docheon-ri, Hamyang
한자 咸陽 道川里 소나무
주소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도천리 717번지
지정번호 경상남도 기념물 제213호
지정일 1998년 11월 13일
분류 자연유산/천연기념물/생물과학기념물/생물상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주
웹사이트 함양 도천리 소나무,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도천리 소나무는 나이가 35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대략 10m, 둘레는 2.8m 정도이고 하늘에서 사방으로 뻗은 가지의 폭은 약 20m에 달한다. 용이 우물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하여 용천송이라고도 한다.

도천리 소나무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이 소나무의 뿌리 쪽에 우물이 하나 있는데 아무리 심한 가뭄에도 우물이 마르지 않았다고 한다. 조선 초기의 문신인 하륜(河崙)의 후손들이 대대로 살던 이 마을에 후손 중의 한 사람인 하맹보(河孟寶)가 우물 뒤에 터를 잡고 살았다. 그 부인이 매일 새벽 이 우물에 정화수를 떠 놓고 남편과 아들을 위해 두 손 모아 빌었는데, 남편은 충, 효, 예를 갖춘 공신이 되었고 그의 아들 황(滉)도 군자감(軍資監)에서 벼슬을 지냈다. 아들 황이 어머니의 정성을 기리기 위해 우물 위쪽에 한 그루의 소나무를 심었고 그 나무가 점점 자라면서 용이 승천하는 모습으로 변해 갔다고 한다.

영문

Pine Tree of Docheon-ri, Hamyang

Pine tree (Pinus densiflora Siebold et Zucc.) is an evergreen coniferous tree in the family of Pinaceae. It is native to Korea, Japan, and China.

This pine tree in Docheon-ri is presumed to be over 350 years old. It measures about 10 m in height and 2.8 m in circumference at the trunk. The crown of branches spreads out in every direction and measures about 20 m in diameter.

There is a story about the origin of this tree. Udong Village in Docheon-ri was home to the descendants of Ha Ryun (1347-1416), a civil official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One of them, Ha Maeng-bo (1531-1593), lived on the land behind a well that was said to never dry up, no matter how severe the drought. His wife came every morning to draw water from the well and pray for her husband and son. Her prayers were answered, as Ha Maeng-bo was bestowed with the title of meritorious subject, and their son went on to serve as an official at the government bureau responsible for the storage of military supplies and expenditure. To honor his mother’s devotion, Ha Maeng-bo’s son planted this single pine tree behind the well. It is said that as the tree grew, it grew to resemble a dragon ascending into the sky. It therefore came to be known as Yongcheonsong, meaning "Pine of the Heavenly Dragon." The well can still be seen at the base of the tree.

영문 해설 내용

소나무는 소나무과의 상록침엽교목으로 한국, 일본, 중국 등지에서 자란다.

도천리 소나무는 나이가 350년 이상으로 추정된다. 높이는 대략 10m, 둘레는 2.8m 정도이고 사방으로 뻗은 가지의 폭은 약 20m에 달한다.

이 나무의 기원에 대해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도천리 우동마을은 조선시대의 문신 하륜(1347-1416)의 후손들이 대대로 살아온 곳이다. 후손 중의 한 사람인 하맹보(1531-1593)는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우물 뒤에 터를 잡고 살았다. 하맹보의 부인은 매일 새벽 우물물을 떠 놓고 남편과 아들을 위해 기도를 드렸는데, 남편은 공신이 되었고 아들은 군수품의 저장과 출납을 담당한 기관에서 벼슬을 지냈다. 아들이 어머니의 정성을 기리기 위해 우물 위에 한 그루의 소나무를 심었고, 그 나무가 점점 자라면서 용이 승천하는 모습으로 변해 갔다고 한다. 이후 이 나무는 ‘용천송’이라고도 불리며, 소나무 아래에는 우물이 여전히 남아 있다.

문맥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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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s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