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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교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지방에서 유학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국립교육기관이다. 덕행과 학문의 모범을 보인 성현에게 제사를 올리며, 유교의 경전과 역사, 시나 문장을 짓는 법을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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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향교는 조선시대인 태조 7년(1398)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이곳은 고려 때부터 이 지역의 교육을 담당하던 소소당(昭昭堂)이 있던 자리이며, 함양향교는 소소당을 개편한 것으로 추정된다. 함양향교는 정유재란 때 소실되어 선조 36년(1603)에 다시 세웠고, 이후 여러 차례 중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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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교가 경사진 대지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경내의 건물들은 총 4단의 층단에 배치되어 있다. 맨 아랫단에는 정문의 역할을 하는 태극루(太極樓)와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서재(東·西齋)가 있고, 두 번째 단에는 강당인 명륜당(明倫堂)이 있다. 세 번째 단에는 앞쪽의 강학공간과 뒤쪽의 제향공간을 구분하는 내삼문과 담장이 있고, 그 뒤에는 제사를 준비하기 위한 재실, 제기고와 동·서무(東西撫)가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높은 단에는 사당인 대성전(大成殿)을 두어, 제향 공간으로서의 위엄을 나타냈다. 지금도 매년 음력 2월과 음력 8월에는 유교 성현들에 대한 제례를 거행한다.
  
 
=='''문맥요소'''==
 
=='''문맥요소'''==

2021년 4월 13일 (화) 17:24 판


함양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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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향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함양향교
영문명칭 0
한자 咸陽鄕校
주소 경남 함양군 함양읍 원교길 50 (교산리)
지정번호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25호
지정일 1983년 8월 12일
분류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향교
수량/면적 11동
웹사이트 함양향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향교는 유교의 옛 성현(聖賢)을 받들면서, 지역 사회에서 인재를 양성하고 미풍양속을 장려할 목적으로 설립된 전통시대의 지방 교육기관이다.

이곳은 1398년(태조7년)에 향교로 건립되었다고 하는데, 원래는 고려 때 경학(經學)을 공부하였던 소소당(昭昭堂)이 있던 곳이다. 정유재란 때 불탄 것을 1603년(선조36)에 다시 세운 이후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현재의 모습은 19세기 이후에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향교의 공간은 교육과 제례(祭禮)의 두 영역으로 나뉜다. 유생(儒生)이 학문을 연마하는 명륜당(明倫堂)과 일상생활을 하는 동·서재(東·西齋)는 교육 기능을 담당하고, 공자와 저명한 유학자의 위패(位牌)를 모시는 대성전(大成殿) 및 동·서무(東西撫)는 제례 기능을 가각 담당하고 있다.

함양 향교의 건물배치는 교육 공간을 앞 쪽에, 제례 공간을 뒤쪽에 두는 향교 건물배치의 일반적 형태인 전학후묘(前學後廟) 양식을 따르고 있다.

다만, 지형 탓으로 정문인 태극루(太極樓)를 비롯해 교육 영역, 제례 영역이 일직선상에 놓여있지 않다. 또 급경사의 땅이기 때문에 여러 층단을 만들어 건물을 세웠다. 태극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이지만, 기둥 사이가 넓어 대단히 크게 보인다. 유교의 교육 이념을 담은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건물로서 전형적인 명륜당의 형태를 띠고 있다. 대성전은 짧고 굵은 기둥을 설치함으로써 권위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특히 이곳은 동·서무가 온전한 형태로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사례에 속한다. 지금 봄과 가을에 두 차례에 걸쳐 성현들에 대한 제례만을 올리고 있다.

수정 국문

초고

이곳은 1398년(태조7년) 함양에 지어진 향교이다. 향교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지방에서 유학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된 국립교육기관이다. 고려시대는 지방관을 파견한 주현(主縣)보다 파견하지 못한 속현(屬縣)이 더 많았기 때문에 향교 또한 전국적으로 확산되지는 못했다. 조선은 개국과 더불어 전국을 주부군현(州府郡縣)으로 재편하고 각 읍치에 향교를 설치하였다. 함양향교 또한 이러한 분위기에서 창건되었는데, 이미 고려 때부터 이 지역의 교육을 담당하던 소소당(昭昭堂)을 개편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정유재란 때 불탄 것을 1603년(선조36)에 다시 세운 이후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현재의 모습은 19세기 이후에 완성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향교는 강학(講學)과 제향(祭享)의 두 목적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데 함양향교는 남쪽에 강학의 기능을 지닌 명륜당(明倫堂)과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서재(東·西齋)를 두었고, 북족에 제향의 기능을 지닌 대성전(大成殿) 및 동·서무(東西撫)를 배치한 전학후묘(前學後廟) 양식을 따르고 있다. 다만, 지형이 평평하지 않은 까닭에 정문인 태극루(太極樓)에 강학 공간과 제향 공간이 일직선으로 반듯하지 않으며, 공간마다 층단으로 이루어진 상승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함양향교는 교육을 담당하는 훈도(訓導) 1명이 16세 이하는 정원에 포함하지 않는 정원 50명의 생도(生徒)를 담당하였다. 공자(孔子)에게 지내는 제사인 석전제(釋奠祭)를 드릴 때에는 대성전(大成殿)에 위치한 공자 외에도 배위(配位)인 4현(賢) 및 10철(哲), 동·서무(東西撫)에 위치한 송(宋)의 주돈이(周敦頤), 정호(程顥), 정이(程頤)ㆍ주자(朱子) 및 신라(新羅)의 설총(薛聰), 최치원(崔致遠), 고려의 안유(安裕), 정몽주(鄭夢周), 조선의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 조광조(趙光祖), 이언적(李彦迪), 이황(李滉), 이이(李珥), 성혼(成渾), 김장생(金長生), 송시열(宋時烈), 송준길(宋浚吉), 박세채(朴世采), 김인후(金麟厚)등도 제사의 대상에 포함하였다.

1차 수정

향교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지방에서 유학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국립교육기관이다. 덕행과 학문의 모범을 보인 성현에게 제사를 올리며, 유교의 경전과 역사, 시나 문장을 짓는 법을 가르쳤다.

함양향교는 조선시대인 태조 7년(1398)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이곳에는 고려 때부터 이 지역의 교육을 담당하던 소소당(昭昭堂)이 있었으며, 함양향교는 소소당을 개편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향교는 정유재란 때 소실되어 선조 36년(1603)에 다시 세웠고, 이후 여러 차례 중수되었다.

향교가 경사진 대지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경내의 건물들은 총 4단의 층단에 배치되어 있다. 맨 아랫단에는 정문의 역할을 하는 태극루(太極樓)와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서재(東·西齋)가 있고, 두 번째 단에는 강당인 명륜당(明倫堂)이 있다. 세 번째 단에는 앞쪽의 강학공간과 뒤쪽의 제향공간을 구분하는 내삼문과 담장이 있고, 그 뒤에는 제사를 준비하기 위한 재실, 제기고와 동·서무(東西撫)가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높은 단에는 사당인 대성전(大成殿)을 두어, 제향 공간으로서의 위엄을 나타냈다. 지금도 매년 음력 2월과 음력 8월에는 유교 성현들에 대한 제례를 거행한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 1
    • 함양향교는 조선시대인 태조 7년(1398)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18세기 영조 때 발간된 『여지도서』에 따르면, 이곳에는 고려 때부터 이 지역의 교육을 담당하던 소소당(昭昭堂)이 있었다고 하며, 함양향교는 소소당을 개편한 것으로 추정된다.
    • 향교가 경사진 대지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경내의 건물들은 명륜당이 앞에 오고 대성전이 뒤에 오는 전학후묘의 배치형태로 총 4단의 층단에 배치되어 있다.
  2. 분야별 자문위원 2
  3. 읽기 쉬운 문안 자문위원
    • 첫번째 단락의 첫문장 다음에는 향교가 교육의 공간이자 제례의 공간임을 명확하게 짚어주면 더 좋을 듯 합니다. 예를 들면, “향교의 공간은 유교의 경전과 역사, 문장을 가르치는 교육 공간과 학문에 모범을 보인 성현에게 제사를 올리는 공간으로 나뉜다.”
    • ‘원래 이곳에는 고려 때부터 이 지역의 교육을 담당하던 소소당(昭昭堂)이 있었으며, 함양향교는 소소당을 개편한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이곳은 고려시대 이 지역 교육을 담당하던 소소당이 있던 자리다.
    • 이 향교는 => 함양향교는

2차 수정

향교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지방에서 유학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국립교육기관이다. 덕행과 학문의 모범을 보인 성현에게 제사를 올리며, 유교의 경전과 역사, 시나 문장을 짓는 법을 가르쳤다.

함양향교는 조선시대인 태조 7년(1398)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이곳은 고려 때부터 이 지역의 교육을 담당하던 소소당(昭昭堂)이 있던 자리이며, 함양향교는 소소당을 개편한 것으로 추정된다. 함양향교는 정유재란 때 소실되어 선조 36년(1603)에 다시 세웠고, 이후 여러 차례 중수되었다.

향교가 경사진 대지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경내의 건물들은 총 4단의 층단에 배치되어 있다. 맨 아랫단에는 정문의 역할을 하는 태극루(太極樓)와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서재(東·西齋)가 있고, 두 번째 단에는 강당인 명륜당(明倫堂)이 있다. 세 번째 단에는 앞쪽의 강학공간과 뒤쪽의 제향공간을 구분하는 내삼문과 담장이 있고, 그 뒤에는 제사를 준비하기 위한 재실, 제기고와 동·서무(東西撫)가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높은 단에는 사당인 대성전(大成殿)을 두어, 제향 공간으로서의 위엄을 나타냈다. 지금도 매년 음력 2월과 음력 8월에는 유교 성현들에 대한 제례를 거행한다.

문맥요소

Nodes

Lin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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