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음선생영정

HeritageWiki
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8년 12월 2일 (일) 13:41 판

이동: 둘러보기, 검색
한음선생 영정
Portrait of Yi Deok-hyeong
대표명칭 한음선생 영정
영문명칭 Portrait of Yi Deok-hyeong
한자 漢陰先生 影幀
주소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금곡길 134
지정번호 문화재자료 제298호
지정일 1988년 8월 30일
분류 유물/일반회화/인물화/초상화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점
웹사이트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해설문

국문

한음 이덕형(李德馨, 1561~1613)의 영정이다. 한음은 1580년 선조13년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갔으며, 1591년에는 예조참판이 되어 대제학을 겸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 때에는 왕을 호종하고, 청원사로 명나라에 가 파병을 성취시키는 등 많은 공을 세웠다.

1608년 광해군 즉위 후 다시 영의정이 되었다가 1613년 영창대군의 처형과 폐모론을 반대하여 관직을 삭탈당하고 용진(龍津), 현재 경기도 양수리로 낙향하였다가 병으로 작고하였다.

비단에 그려진 이 영정은 크기가 90×155cm로, 이와 같은 영정이 영주의 소수서원, 상주의 근암서원, 포천의 용주서원에도 봉안되어 있었는데 모두 한국전쟁 때 소실되고 이곳에만 남아 있다. 영정에는 ‘한음선생영정’이라고 쓰여 있으며, 그림의 솜씨가 비교적 정교한 편이다. 1988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98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영문

This painting is a memorial portrait of Yi Deok-hyeong (1561-1613), a civil official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Yi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580 and started his career in the government where he served as vice minister of rites, among other positions. When Japanese troops invaded the Korean Peninsula in 1592, he played an active role in escorting the king to safety in the north and persuading the Ming dynasty to send Chinese troops to help expel the Japanese invaders.

After the war, Yi was promoted to serve as chief state councilor in 1608 by King Gwanghaegun. However, amid political turmoil, he was removed from office and exiled to Yongjin (present-day Yangsu-ri, Gyeonggi-do), where he died from illness.

This 90×155cm portrait painted on silk features comparatively fine brush techniques and is the only surviving portrait of Yi Deok-hyeong, having been kept by his descendants who lived in Dangjin. Other portraits of Yi, which had been stored in Confucian academies across the country, were all destroyed by fire during the Korean War (1950-1953). The painting was designated as Chungcheongnam-do Cultural Heritage Material No. 298 in 19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