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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 경기도 파주 문산포에 살던 천씨, 박씨, 문씨 등 세 노인이 덕목리 앞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다가 바닷속에서 그물에 돌덩이가 걸려 건져내었다. 자세히 보니 불상이었고 이를 꿈속에서 부처가 일러준 대로 파손된 배를 재료로 하여 절을 지어 불상을 모셨다. 절을 짓는데 큰 공을 세운 검은 소는 심복사가 창건되자 죽었다. 사람들은 이를 보살이 절을 세우기 위해 나타났다가 사라진 것이라고 하여 무덤을 만들고 비를 세웠다고 하는 이러한 설화가 전해지는 불상이 현재 대적광전에 모시고 있는 석조비로자나불상이다. | 고려말 경기도 파주 문산포에 살던 천씨, 박씨, 문씨 등 세 노인이 덕목리 앞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다가 바닷속에서 그물에 돌덩이가 걸려 건져내었다. 자세히 보니 불상이었고 이를 꿈속에서 부처가 일러준 대로 파손된 배를 재료로 하여 절을 지어 불상을 모셨다. 절을 짓는데 큰 공을 세운 검은 소는 심복사가 창건되자 죽었다. 사람들은 이를 보살이 절을 세우기 위해 나타났다가 사라진 것이라고 하여 무덤을 만들고 비를 세웠다고 하는 이러한 설화가 전해지는 불상이 현재 대적광전에 모시고 있는 석조비로자나불상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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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계(肉髻) : 원래 인도 사람들이 머리카락을 올려 묶던 상투에서 유래했으며, 부처의 크고 높은 지혜를 상징함. | * 육계(肉髻) : 원래 인도 사람들이 머리카락을 올려 묶던 상투에서 유래했으며, 부처의 크고 높은 지혜를 상징함. | ||
* 삼도(三道) : 불상의 목에 가로로 표현된 세 줄기 주름 | * 삼도(三道) : 불상의 목에 가로로 표현된 세 줄기 주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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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21일 (금) 02:38 판
평택 심복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Stone Seated Vairocana Buddha of Simboksa Temple, Pyeongtae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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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평택 심복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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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Stone Seated Vairocana Buddha of Simboksa Temple, Pyeongtaek |
한자 | 平澤 深福寺 石造毘盧蔗那佛坐像 |
주소 | 경기도 평택시 현덕면 심복사길 22(덕목리) |
지정번호 | 보물 제565호 |
지정일 | 1972.03.02 |
분류 | 유물/불교조각/석조/불상 |
시대 | 통일신라 |
수량/면적 | 1구 |
웹사이트 | "평택 심복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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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평택 심복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통일신라 후기의 불상으로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그 위에 있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는 낮게 표현되어 있다. 둥글고 원만한 얼굴에 귀가 크고 짧은 목에는 삼도(三道)의 표현이 뚜렷하다. 옷은 양 어깨를 감싸고 있으며, 옷깃과 소매 깃에는 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불신의 높이 121cm, 연대 높이 107cm, 상대 직경 113cm, 하대 직경 115cm이다.
고려말 경기도 파주 문산포에 살던 천씨, 박씨, 문씨 등 세 노인이 덕목리 앞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다가 바닷속에서 그물에 돌덩이가 걸려 건져내었다. 자세히 보니 불상이었고 이를 꿈속에서 부처가 일러준 대로 파손된 배를 재료로 하여 절을 지어 불상을 모셨다. 절을 짓는데 큰 공을 세운 검은 소는 심복사가 창건되자 죽었다. 사람들은 이를 보살이 절을 세우기 위해 나타났다가 사라진 것이라고 하여 무덤을 만들고 비를 세웠다고 하는 이러한 설화가 전해지는 불상이 현재 대적광전에 모시고 있는 석조비로자나불상이다.
- 육계(肉髻) : 원래 인도 사람들이 머리카락을 올려 묶던 상투에서 유래했으며, 부처의 크고 높은 지혜를 상징함.
- 삼도(三道) : 불상의 목에 가로로 표현된 세 줄기 주름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참고
- 평택시사, 평택 심복사석조비로자나불좌상, 평택시.
- 민족문화대백과사전, 평택 심복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한국학중앙연구원.
- 문화유산 스토리마당, 추상적인 진리를 부처모습으로 의인화한, 심복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