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 벽화산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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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산성지
Byeokhwasanseong Fortress Site, Uiryeong
의령 벽화산성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벽화산성지
영문명칭 Byeokhwasanseong Fortress Site, Uiryeong
한자 碧華山城址
주소 경상남도 의령군 의령읍 하리 113-2
지정번호 시도기념물 제64호
지정일 1983년 8월 6일
분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지
수량/면적 일원
웹사이트 의령 벽화산성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의령 벽화산성은 벽화산 정상부를 따라 쌓은 둘레 약 800m 정도의 테뫼식* 산성이다. 성 안쪽은 일제강점기부터 공동묘지로 사용되어 대부분 일반인의 무덤들이 있으며, 성 바깥의 남쪽에는 삼국시대 고분인 벽화산성 고분군이 있다.

벽화산성은 삼국시대에 처음 만들어져 사용되다가 어느 시점에 쓰이지 않게 되었고, 이후 조선시대에 성을 수리하여 다시 사용하였다.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성은 높이 0.5~2.0m 정도의 벽만 남아 있는데, 성벽의 면을 비교적 잘 맞추어 쌓아 올렸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의 성은 이전에 쌓은 삼국시대 성벽 위에 덧대어 쌓아 올렸다. 성벽의 면이 고르지 못하고 들쭉날쭉한 모양으로 긴박한 시기에 급히 쌓아 올렸음을 알 수 있다. 곽재우가 임진왜란 때에 이곳에서 성을 고쳐 쌓아 왜적을 물리쳤다는 이야기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후 조선 고종 13년(1876)에 의령현감 송기노가 성을 고쳐 쌓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 테뫼식 산성: 산 정상부의 능선을 따라 테를 두르듯이 돌려 쌓은 성

영문

Byeokhwasanseong Fortress Site, Uiryeong

This fortress surrounding the peak of Byeokhwasan Mountain (522 m above sea level) was built at the turn of the 7th century, during the Three Kingdoms period. It was used until the Goryeo period (918-1392) but was then abandoned. During the Joseon period (1392-1910), upon the outbreak of the Japanese invasion of 1592, Gwak Jae-u (1552-1617), a well-known Korean civilian army leader, repaired the fortress so it could be used again. It was repaired again in 1876 by the magistrate of Uiryeong. Since the early 20th century, this site was used as a cemetery.

The walls of the fortress were built in two phases. The lower part was built during the Three Kingdoms period and is around 0.5-2 m in height. The upper part was built atop the existing wall during the Joseon period. The upper part is uneven, and it is therefore presumed that it was hastily built.

The oval shaped fortress originally measures 800 m in circumference.

영문 해설 내용

벽화산(해발 522m) 정상부를 둘러쌓은 산성이다. 삼국시대인 7세기 무렵에 쌓은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시대까지 사용되다가 이후 방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장인 곽재우가 성을 수리하여 다시 사용하였다. 1876년 당시 의령 현감이 고쳐 쌓았다. 20세기 초부터는 공동묘지로 사용되었다.

성벽은 두 단계로 지어졌다. 아래쪽은 삼국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높이가 0.5-2m 이다. 위쪽은 조선시대에 원래 있던 성벽 위에 지었다. 성벽의 면이 고르지 못한 것으로 보아 급히 쌓아 올렸음을 알 수 있다.

타원형의 이 산성은 둘레가 약 800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