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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해저터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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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해저터널
Tongyeong Undersea Tunnel
통영 해저터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통영 해저터널
영문명칭 Tongyeong Undersea Tunnel
한자 統營 海底터널
주소 경상남도 통영시 당동 406번지 외 18필지 미수동 907-1 외 14필지
지정번호 국가등록문화재 제201호
지정일 2005년 9월 14일
분류 등록문화재/기타/공공용시설
시대 일제강점기
수량/면적 터널 1기, 길이 483m, 폭 5m, 높이 3.5m
웹사이트 통영 해저터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통영 해저터널은 1932년 만들어진 동양 최초의 해저 구조물로서, 통영과 미륵도를 연결하는 터널이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의 이주가 본격화됨에 따라 두 지역 간 거리 단축을 위해 만들어졌으며, 길이 483m, 폭 5m, 높이 3.5m, 해수면 아래 최대 10m 깊이 규모의 철근콘크리트조로 이루어져 있다.

비록 공사의 시행이 일제에 의한 것이라고 해도, 우리의 인력과 자재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통영과 미륵도를 연결하기 위해 1932년에 만들어진 터널로, 동양 최초의 해저 구조물이다.

일제강점기 때 통영 지역으로 이주해 온 일본인들은 통영과 미륵도 사이의 해협이 좁아 자신들의 어업에 방해가 되자, 1927년부터 1932년까지의 공사를 거쳐 두 지역 사이에 통영운하를 개통했다. 운하가 완성된 후 건너다닐 수단으로 비용이 많이 드는 다리를 대신해 철근과 콘크리트를 이용해 이 터널을 만들었다.

터널은 길이 483m, 폭 5m, 높이 3.5m 규모이다. 해수면 아래 최대 10m 깊이(만조 시 최대 깊이 13.5m)에 만들어졌으며, 현재 통영시 당동과 미수동을 연결하고 있다.

1967년 운하 위로 충무교가 건설되고, 1998년에 통영대교가 완공되면서 이 터널은 차량 운행이 금지되어 도보로만 통행이 가능하다. 1996년 보수공사가 이루어지면서, 입구가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 터널의 공사 기간은 1931년 7월부터 1932년 11월까지 1년 4개월이다.

참고자료

  • 통영 해저터널 기록화조사보고서, 문화재청, 2007.
  • 동양 최초의 바다 밑 터널, 통영 해저터널, 지역N문화 역사문화유산 https://ncms.nculture.org/legacy/story/2936 -> 터널을 만든 지역은 판데목이라는 곳인데, 임진왜란 한산대첩 때 많은 왜군이 이순신의 학익진에 대패해 판데목 부근에서 수장됐다고 한다. 일본인들이 조상의 유해 위로 건너다닐 수 없어서 해저터널을 팠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 해저터널 입구에는 ‘용문달양(龍門達陽)’이란 글씨가 씌어있다. 터널을 뚫을 당시의 일본인 통영 읍장이 쓴 글인데, '용문을 지나면 밝은 세상이 나온다'라는 뜻이다. 미륵도 쪽의 출입구가 산양면이기도 하다. / 통영운하는 1927년 5월부터 1932년 12월까지 5년 6개월에 걸쳐 길이 1,420m, 너비 550m, 수심 3m의 규모로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