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함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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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국문집필

초고

이 건물은 조선시대에 청백리로 이름이 높았던 류경시(柳敬時, 1666~1737)가 후학들을 가르치고 독서하는 장소로 이용했던 곳이다.

본래 조선 명종 때의 장군 강희철(康希哲)이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온 후 여생을 보내기 위해 이 건물을 지었으며, ‘함경당’으로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후 강희철의 외손자였던 권위(權暐, 1552~1630)가 이 건물을 물려받았다가, 18세기 초반 이 마을 출신으로 여러 관직을 역임한 후 귀향한 류경시의 소유가 되면서 ‘함벽당’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 지어진 시기는 17세기로 알려져 있으며, 철종 13년(1862) 대대적인 수리를 거친 이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남향으로 세워진 건물은 온돌방을 나란히 배치하고, 가운데 방 앞에 난간을 두른 대청을 돌출되게 하여 ‘T’자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다.

  • 평지에 지어졌지만 기단의 높이를 다르게 해 대청마루가 누마루 느낌을 내도록 한 점이 돋보인다.(디지털안동문화대전 의의 내용 기반 작성 문구 – 추가여부 결정)
1차 수정

함벽당은 조선시대의 문신 류경시(柳敬時, 1666~1737)가 후학들을 가르치고 독서하는 장소로 이용하던 정자이다. 류경시는 문무를 겸비한 인재로 평가받았으며, 청렴하고 어진 정치를 펼친 것으로 이름이 높았다. 정자의 이름은 류경시의 호에서 따온 것으로, ‘푸르름 속에 잠겨 있는 집’이라는 뜻이다.

원래 이곳에는 무신 강희철(康希哲, 1492~1583)이 관직에서 물러난 후 고향에서 여생을 보내기 위해 지은 정자가 있었다. 강희철의 외손자인 권위(權暐, 1552~1630)가 물려받았다가, 류경시가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이 정자를 매입하였다. 지금의 건물은 철종 13년(1862) 대대적인 수리를 거친 것이다.

함벽당은 높은 축대 위에 남향으로 자리하고 있으며 주위에는 토석담을 둘렀다. 온돌방 2개를 나란히 두고 방 앞으로는 난간을 두른 대청을 돌출시켜, 정자로서는 보기 드문 ‘T’자형 평면을 구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