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청도 신둔사 영산보탑 및 탑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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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국문

신둔사는 고려 명종 3년(1173)에 보조국사가 창건하여 봉림사라 하였다가 조선 고종 15년(1878)에 중수하여 신둔사로 개칭하였다. 영산보탑 및 탑비는 영산보탑의 높이가 578㎝, 영산보탑비는 전체높이가 140.5㎝, 비신은 가로133.5㎝ 세로42.5㎝ 폭 21㎝이다. 전통석탑을 바탕으로 곡률이 거의 없는 처마선, 급한 낙수면, 간결한 형태미 등을 보여주는 근대기 대표적인 석탑이다.

석탑과 석비로서 명확한 제작 경위와 제작 연대(1924년) 등이 기록되어 있어 동시기 석탑연구의 기준작으로서 중요하다.

수정 국문

초고

영산보탑은 1924년 제작된 5층 석탑이며, 탑비에는 영산보탑의 조성과 관련한 내용이 새겨져 있다. 영산(靈山)은 석가모니가 설법했던 영취산(靈鷲山)을 말한다. 석탑은 원래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지만, 실제 유골이 없더라도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신둔사는 1173년 지눌(知訥)이 봉림사(鳳林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한 후 1667년(현종 8) 중수했으며, 1878년(고종 15) 중수부터 신둔사(薪芚寺)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영산보탑은 전통석탑과 같이 이중의 바닥돌과 5층의 몸돌, 머리장식으로 구성되었다. 탑의 높이는 5.8m이며, 지붕돌의 너비가 작고 낙수면이 급하게 처리되어 탑은 전체적으로 간결하고 길쭉한 느낌을 준다. 탑 속에는 법화경과 문수보살상을 봉안했다. 영산보탑은 1924년 3월 1일 공사를 시작해 5월 14일에 마쳤으며, 신도들의 헌금 800여 원을 들여 제작했다.

1차 수정

영산보탑은 1924년에 제작된 5층 석탑으로, 영산(靈山)은 석가모니가 설법했던 영취산(靈鷲山)을 말한다. 석탑은 원래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지만, 실제 유골이 없더라도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탑비에는 영산보탑의 조성과 관련한 내용이 새겨져 있다.

탑비의 기록에 따르면, 영산보탑은 1924년 3월 1일 공사를 시작해 5월 14일에 마쳤으며, 신도들의 헌금 800여 원을 들여 제작했다. 2단으로 된 기단, 5층의 몸돌과 지붕돌, 머리장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탑의 높이는 5.8m이다. 지붕돌의 너비가 작고 낙수면이 급하게 처리되어 탑은 전체적으로 간결하고 길쭉한 느낌을 준다. 탑 속에는 법화경과 문수보살상을 봉안했다.

신둔사는 고려시대의 승려 지눌(知訥, 1158~1210)이 1173년 봉림사(鳳林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다고 한다. 1667년에 중수했으며, 1878년에 다시 중수되면서 신둔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1
    • 영산(靈山)은 석가모니가 설법했던 영취산(靈鷲山)을 말한다. ->영산(靈山)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묘법연화경을 설법했던 영취산(靈鷲山)이다.
    • 석탑은 원래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지만, ->석탑은 원래 부처의 유골(사리)를 모신 조형물이지만,
    • 머리장식으로 -> 상륜부로
  2. 분야별 자문위원2
    • 석탑은 부처의 사리를 모신 조형물로서, 때로는 경전, 불상, 작은 탑 등이 그 역할을 대신하기도 한다.
  3. 읽기쉬운문안 자문위원
    •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지만, 실제 유골이 없더라도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 부처의 유골을 봉안한 일종의 무덤(墓)이며, 실제 유골이 없어도 부처를 상징하는 조형물로 신성시 해왔다.
    • 낙수면이 급하게 처리되어 탑은 전체적으로 간결하고 길쭉한 → 낙수면의 경사가 급하게 처리되었으며 전체적으로 간결하고 길쭉한

2차 수정

영산보탑은 1924년에 제작된 5층 석탑으로, 영산(靈山)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묘법연화경을 설법했던 영취산(靈鷲山)을 말한다. 석탑은 원래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지만, 실제 유골이 없더라도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탑비에는 영산보탑의 조성과 관련한 내용이 새겨져 있다.

탑비의 기록에 따르면, 영산보탑은 1924년 3월 1일 공사를 시작해 5월 14일에 마쳤으며, 신도들의 헌금 800여 원을 들여 제작했다. 2단으로 된 기단, 5층의 몸돌과 지붕돌, 머리장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탑의 높이는 5.8m이다. 지붕돌의 너비가 작고 낙수면의 경사가 급하게 처리되었으며 전체적으로 간결하고 길쭉한 느낌을 준다. 탑 속에는 법화경과 문수보살상을 봉안했다.

신둔사는 고려시대의 승려 지눌(知訥, 1158~1210)이 1173년 봉림사(鳳林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다고 한다. 1667년에 중수했으며, 1878년에 다시 중수되면서 신둔사로 이름이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