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진주 월명암 목조아미타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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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국문

월명암 인법당에 봉안되어 있는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복장발원문에 의하면 1612년에 수화승 현진(玄眞)이 학문, 명은, 의능, 태훈 4명의 조각승과 함께 제작한 불상으로 함양 상련대 관음보살좌상과 동시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상련대 관음보살좌상에서 공덕주로 나오는 벽암각성이 월명암 목조아미타여래좌상에서는 복장시주자로 나타나서 불상제작에 벽암각성이 깊이 관련되었음을 알 수 있다.

불상의 두부는 둥글고 높은 복발형으로 앞으로 살짝 숙이고 있다. 나발 사이에 둥근 정상계주와 반달형의 중간계주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상호는 갸름한 타원형으로 이마는 넓은 편이며 반으로 감은 두눈은 좌우로 길게 뻗어 있다. 호형을 그리며 내려오는 콧대는 콧등이 얇고 돌출되어 있으며, 작은 입술에는 미소를 짓고 있어 전반적으로 인자한 모습이다. 넓은 어깨에 가슴은 편평하여 양감 있고, 허리는 길며 아랫배는 살짝 부풀어 있다. 수인은 오른손을 가슴 높이로 올리고 왼손은 오른발 위에 올려 자연스럽게 엄지와 중지를 맞대었다. 하체는 오른발을 위로 올린 결가부좌를 하고 있으며, 루릎은 낮고 넓은 편이어서 안정적인 자세이다. 법의는 일반적인 이중착의법으로 착용하였으며, 승각기는 가슴까지 올려 일자로 표현하였다. 다리를 덮은 대의자락은 형식화된 4단의 부채모양의 주름이 길게 나타나는데 이러한 표현은 동시 조성된 상련대관세음보살좌상과 유사하다.

월명암 아미타불좌상은 현전하는 현진작 불상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현진작 불상의 양식 변화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며, 아울러 17세기 전반기에 나타나는 불상양식의 편년을 나타내는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판단된다.

수정 국문

초고

아미타불은 극락정토의 부처로, 아미타불의 공덕을 기리고 그의 이름을 염(念)하는 모든 중생들은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월명암 인법당에 봉안되어 있는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1612년 조각승 현진(玄真)이 4명의 조각승을 이끌고 제작한 것이다.

아미타불좌상은 나발 사이에 둥근 정상계주와 반달형의 중간계주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양손의 엄지와 중지를 맞댄 상태로 오른손은 가슴 높이로 올리려 손바닥을 앞으로 향하게 두었고 왼손은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다리를 덮은 옷자락에는 형식화된 4단의 부채모양 주름이 길게 나타나며, 이는 현진이 조성한 불상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현진은 17세기 전반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등지에서 활동한 조각승으로, 이 불상은 높이 80cm의 아담한 크기지만 현진이 만든 불상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것이다. 현진이 제작한 다른 불상들과 비교하여 양식상의 변화를 알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자료이며, 17세기 전반기에 나타나는 불상양식의 편년을 나타내는 자료로서도 가치가 있다. 또한 발원문에 조각승 이름 위에 직위가 명시되어 있어 이를 통해 조각승의 서열 및 체계를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 등을 인정받아 2010년 보물로 승격되었다.


  • 복장발원문의 내용을 볼 때, 함양 상련대 관음보살좌상과 비슷한 시기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현진’의 행적에 초점을 둔 문장으로 판단됨 / 설명에 넣을 것인지 고민.
  • 발원문은 불상에 다시 납입된 상태이다. - 언제인지 확인 필요.

1차 수정

이 불상은 서방정토 극락세계의 주인으로 죽음의 고통에서 중생을 구제하는 아미타여래를 나타낸 것이다. 1612년 조각승 현진(玄真)이 4명의 조각승을 이끌고 제작하였다.

현진은 17세기 전반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등지에서 활동한 조각승으로, 현재 남아있는 그의 작품 중 17점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이 불상은 현진이 만든 불상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것이며, 현진이 제작한 다른 불상들과 비교하여 양식상의 변화를 알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자료이다.

아미타여래는 결가부좌를 하고 있으며, 오른손은 들고 왼손은 무릎에 얹어 엄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맞대고 있다. 이 손모양은 중생에게 설법하는 아미타여래를 상징하는 것이다. 다리를 덮은 옷자락에는 형식화된 4단의 부채모양 주름이 길게 나타나며, 이는 현진이 조성한 불상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자문의견

  1. 불교문화재 위원1
    • 직접 수정
  2. 불교문화재 위원2
    • 기존 문안의“복장발원문에 의하면 1612년에 수화승 현진(玄眞)이 학문, 명은, 의능, 태훈 4명의 조각승과 함께 제작한 불상으로 함양 상련대 관음보살좌상과 동시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이런 정보는 요약하여 포함시키는 게 좋음. 모든 안내문마다 불상이란, 약사불이란, 아미타불이란.... 이런 류의 설명을 반복하면 결과적으로 모든 개별 불상의 특수성은 사라지고 약사, 미륵, 관음으로서의 정체성만 부각시키게 되는 것이므로 개별 안내문을 쓸 때는 이점에 각별히 주의하여 개별 지정문화재들의 특수성과, 개별적인 정보들을 제공해야 하는데, 이번 수정안내문은 전부 특수성을 버리고 일반화에만 치중함. 이 일반화가 안내문을 읽는 대중들에게 필요한 지식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현재 답사를 다니며 문안을 읽는 사람들을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는 것이라고 봄.
    • “이 불상은 서방정토 극락세계의 주인으로 죽음의 고통에서 중생을 구제하는 아미타여래를 나타낸 것이다.” -> 아미타가 죽음의 고통에서 중생을 구제하는 부처가 아님!! 이미 죽은 이의 영혼을 서방 극락으로 인도하여 구원하는 것이므로 뜻이 전혀 다름.
    • 기존문안의 이 부분, “아울러 17세기 전반기에 나타나는 불상양식의 편년을 나타내는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판단된다. ”을 수정하여 17세기 불상의 특징과 현진 불상의 가치를 마지막에 추가하기 바람.
  3. 읽기쉬운문안 자문위원
    • 복장시주자인 벽암 각성에 대한 내용 추가 → 또한 이 불상은 조선 후기 불교 중흥을 이끌었던 고승 벽암 각성(碧巖 覺性, 1575~1660)이 조성에 관여하였던 상으로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

2차 수정

이 불상은 죽은이를 서방 극락세계로 인도하여 그의 영혼을 구제하는 아미타여래를 나타낸 것이다. 조선 후기 불교 중흥을 이끌었던 고승 벽암 각성(碧巖 覺性, 1575~1660)이 시주하였으며, 1612년 승려조각가인 현진(玄真)이 4명의 승려조각가를 이끌고 제작하였다.

현진은 17세기 전반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등지에서 활동한 조각승으로, 현재 남아있는 그의 작품 중 17점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이 불상은 현진이 만든 불상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것이며, 현진이 제작한 다른 불상들과 비교하여 양식상의 변화를 알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자료이다.

아미타여래는 결가부좌를 하고 있으며, 오른손은 들고 왼손은 무릎에 얹어 엄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맞대고 있다. 이 손모양은 중생에게 설법하는 아미타여래를 상징하는 것이다. 다리를 덮은 옷자락에는 형식화된 4단의 부채모양 주름이 길게 나타나며, 이는 현진이 조성한 불상들의 특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