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안동김씨 종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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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국문집필

2017 국문

고려의 후삼국 통일을 도운 삼태사의 한 사람인 김선평을 모시기 위한 사당으로 1770년에 후손들이 건립하였으나 용도가 바뀌어 문중의 대소사를 의논하기 위한 종회소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 후 담장과 건물이 훼손되어 1804년에 원래 위치의 조금 아래에 중건하였다. 한국전쟁 당시 육군 통신대가 이 곳에 머물렀을 때 화재가 발생하여 서까래와 기둥 일부에 그을린 흔적이 남아 있다. 크기는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건물 앞쪽의 들문 구성 수법은 그 유례가 드문 특이한 양식을 하고 있다. 더욱이 종회소라는 용도의 건물은 매우 희귀한 것이며 재실과는 의미가 다른 문중집회장소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2021 국문

초안

안동김씨 문중의 구성원들이 집안의 대소사를 의논하기 위하여 모이는 장소이다.

이 종회소는 원래 김선평(金宣平, 901~?)을 모시기 위한 사당으로 영조 46년(1770)에 후손들이 건립하였다. 김선평은 권행(權幸), 장정필(張貞弼, 888~?)과 함께 고려 태조 왕건(王建, 918~943 재위)을 도와 후삼국을 통일하고 고려를 건국하는 데 기여하였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신(新) 안동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이후 여러 사정으로 용도가 바뀌어 종회소로 사용하게 되었으며, 담장과 건물이 비바람에 훼손되어 순조 4년(1804) 원래보다 조금 아래 위치에 중건하였다. 한국전쟁 때에는 육군통신대가 이곳에 머물렀는데, 당시 화재가 발생하여 서까래와 기둥 일부에 그을린 흔적이 남아 있다.

이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낮은 기단 위에 둥근 초석을 놓고 그 위에 둥근 기둥을 세웠다. 왼쪽의 대청마루와 오른쪽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마루와 방 사이에는 벽체를 두지 않고 모두 문으로 구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