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서산 송곡서원 향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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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안내문안 초안 작성 지원 사업

기존 국문

서산에서 배출된 향현들을 제향하는 송곡서원 전면 입구 양측에 위치한 향나무로 조선 세종 2년(1420)에 사마시에 급제한 유윤이 단종의 폐위를 보고 낙향하여 정원수로 심었다고 전한다. 수령 약 550여 년의 향나무로서 학술적, 역사적 가치성이 뛰어난 귀중한 자료이다.

수정 국문

초고

송곡서원의 입구에 서있는 두 그루의 향나무이다. 송곡서원은 서산정씨의 시조인 정신보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설립되었다. 사당과 동·서재, 출입문, 홍살문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사당에는 정신보·정인경·류방택·윤황·류백유·류백순·류윤·김적·김위재 등 9명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향나무는 류윤(?~1476)이 1455년(단종 폐위)에 낙향하여 정원수로 삼았다고 전해지나, 또 다른 전언으로는 류윤이 청주 무거동으로 내려가 은거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향나무의 식재 시기와 배경은 정확히 알 수 없다. 향나무를 서원 입구에 좌우로 대칭되게 식재한 것은 태극(太極)과 음양(陰陽) 사상을 나타낸 것이라 한다. 유학의 학문 탐구의 표상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식재 유형으로서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큰 노거수(老巨樹)이다.

문맥요소

  • 류윤 – 식재자로 추정 - 서령부원군에 봉해진 후 문화류씨의 파시조가 된 류성간의 5세손이다. 사마시에 급제하였으나 단종 폐위 후 청주 무거동에 은거하였으며, 여러 번 조정에서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은 채 1476년 별세했다. 광해군 때에는 관원을 보내어 그간 살던 곳에 무동처사(楙洞處士)라는 어필을 내려 절의를 극찬하였다.
  • 정신보 – 송곡서원 주향 - 송나라가 망한 후 고려에 망명해 서산에 살았던 중국인으로서, 서산정씨의 시조
  • 송곡서원 – 장소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07호. 서산정씨의 시조인 정신보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숙종 20년(1694)에 설립.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8년(1871)에 해체되었다. 1910년 류양목 등 유림 등에 의해 복원되었다.

1차 수정

15세기에 심은 것으로 전해지는 송곡서원 입구의 두 그루 향나무이다

송곡서원은 1693년(숙종 19)에 서산 정씨의 시조인 정신보(鄭臣保)의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설립되었다. 정신보는 중국 송나라 사람으로 송이 멸망하자 고려에 건너와 중국의 문물을 전하고 서산에 정착하였다. 서원에는 사당과 동재, 서재, 내삼문, 홍살문 등의 건조물이 있고, 사당에는 정신보·(鄭仁卿)·류방택(柳方澤)·윤황(尹璜)·류백유(柳伯濡)·류백순(柳伯淳)·류윤(柳潤)·김적(金積)·김위재(金偉材) 등 9명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향나무는 조선전기의 문신 류윤(?~1476)이 1455년에 단종 폐위되자 낙향하여 정원수로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으나, 정확한 식재 시기와 배경은 알려져 있지 않다.

이 향나무는 수령 550년이 넘는 노거수이자, 유학의 학문 탐구의 정신을 상징하는 표상으로 학술적, 역사적 가치가 큰 자료이다.

자문의견

  1. 천연기념물 위원1
    • 송곡서원은 1693년(숙종 19)에→ 송곡서원은 1693년(숙종 19)
    • 사당에는 정신보(鄭仁卿)·류방택(柳方澤)..→ 사당에는 정신보(鄭臣保)를 비롯하여 정인경(鄭仁卿)·류방택(柳方澤)..
    • 조선전기의 문신 류윤(?∼1476)이 단종 폐위되자→ 조선전기의 문신 류윤(?∼1476)은 단종이 폐위되자
  2. 천연기념물 위원2
    • 향나무가 “학술적, 역사적 가치가 큰 자료”로 설명되고 있으나 역사적 배경과 가치 이외에 학술적 가치에 대한 설명이 부족함. 학술적 가치가 생물, 생태, 또는 생물다양성과 관련하여 어떤 가치인지 설명하거나 문안에서 “학술적”이란 단어를 삭제하던가 하여야 할 것으로 보임.
  3. 읽기쉬운문안 자문위원
    • 안내문의 주인공이 향나무가 돼야 할 듯 합니다. 이를테면, 첫 문장이 ‘송곡서원 입구에 있는 두 그루의 향나무는 15세기에 심은 것으로 전해진다.’로 시작되면 읽기가 편할 것 같습니다. 유학의 학문 탐구정신 표상이 무엇인지 좀더 풀어주면 향나무의 의미가 더 살아날 듯 합니다.
    • 송곡서원의 유래와 특징을 소개한 두 번째 단락은 소나무 뒤로 미루는 것이 나을 듯 합니다.

2차 수정

향나무는 측백나무과의 늘푸른 바늘잎 큰키나무이다. 4월에 꽃이 피고 10월에 열매 맺는다. 줄기와 잎은 약재로 쓰이고, 목재는 향료, 가구를 비롯한 생활용품을 만드는 데 쓰인다. 향이 불길하고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한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서원이나 향교와 같이 제사를 모시는 곳에 심었다.

송곡서원 입구에 있는 두 그루의 향나무는 조선시대의 선비였던 유윤(柳潤, ?~1476)이 1420년에 심었다고 한다. 유윤은 이 서원에 모셔진 9명의 인물 중 한 명으로, 1455년 단종(1452~1455 재위)이 폐위되자 지금의 청주 지역으로 낙향하여 은거하였다.

두 나무 모두 수령이 600년 가까이 된 노거수이지만 생육상태가 비교적 양호하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향나무는 대부분 사찰이나 묘소 주변에 있는데, 서원 정문 앞에 좌우로 대칭이 되도록 심은 경우는 이곳이 유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