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당항 신흥사 삼층석탑"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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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23일 (토) 09:26 기준 최신판

2020 안내문안 초안 작성 지원 사업

기존 국문

지금은 당항리 마을로 변한 옛 신흥사 터에 있던 삼층석탑으로 마을에 사찰이 있었음을 증명해 주고 있다. 마을회관 앞뜰에 신흥사의 주춧돌이 남아있고, 지금도 주변에서 깨진 기와 조각들을 발견할 수 있다. 탑은 마을이 들어서면서 몇 차례 옮겨지다가 1957년 지금의 자리에 세워졌다. 탑을 옮길 때 마다 조금씩 망가져 온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상륜부만 일부 유실되었을 뿐 보존상태가 비교적 좋은편이고, 현재 기단부는 모두 없어졌다. 탑은 아래층 몸돌과 각 층의 지붕돌에는 우아한 장식이 되어있다. 고려시대 석탑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현재 탑의 높이는 2.5m이다.

수정 국문

초고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다. 모든 탑이 진신사리를 모신 것은 아니지만,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 신앙의 대상이 된다.

이 탑은 옛 신흥사(新興寺) 터에 있던 삼층석탑으로 마을에 사찰이 있었음을 증명해 주고 있다. 탑이 있었던 사찰은 신라 신문왕(神文王) 때 원효대사(元曉大師, 617~686)가 창건하였던 곳이나, 현재는 터만 남아 당항리 마을로 변해버렸다. 탑의 건립연대는 고려 말~조선 초기로 추정된다.

절터에 마을이 들어서면서 탑을 몇 차례 옮기다 1957년 마을 주민들이 지금의 자리로 옮겨 놓았는데, 옮길 때마다 각 부분의 돌들이 없어지거나 훼손되었다. 현재는 바닥돌부가 모두 없어지고 몸돌부의 1층 몸돌과 1·2·3층 지붕돌, 머리장식인 뚜껑모양의 돌, 수레바퀴모양의 돌만이 남아 있다. 몸돌부의 2·3층 몸돌은 후에 보충해 놓은 것이다.

1차 수정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다.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이 삼층석탑은 고려 말~조선 초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석탑이 있는 당항리 마을에는 원래 신라의 승려인 원효대사(元曉大師, 617~686)가 창건한 신흥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절터에 마을이 들어서면서 탑을 몇 차례 옮기다 1957년 마을 주민들이 지금의 자리로 옮겨 놓았는데, 옮길 때마다 각 부분의 돌들이 없어지거나 훼손되었다. 현재는 바닥돌부가 모두 없어지고 몸돌과 지붕돌, 머리장식인 뚜껑모양의 돌, 수레바퀴모양의 돌만이 남아 있다. 2·3층 몸돌은 원래의 것이 없어져서 새로 보충해 놓은 것이다.

자문의견

  1. 불교문화재 위원1
  1. 불교문화재 위원2
    • 불탑은 원래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다.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당연히 유골이 없으므로 굳이 쓸 필요가 없음)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 불탑으로 따로 구분할 필요가 없음. 탑 자체가 원래 부처의 분묘이므로. 승탑의 용어가 일반화되고 있기는 하지만 탑은 그대로 탑을 쓰고 승탑만 구분하면 됨.
    • “당항리 마을에는 원래 신라의 승려인 원효대사(元曉大師, 617~686)가 창건한 신흥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절터에 마을이 들어서면서....”-> 마을 전체에 절이 있었다는 이야기인가? 아니면 탑이 있는 곳을 말하는 것인가? 정확하게 서술해주기 바람.

2차 수정

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다.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이 삼층석탑은 고려 말~조선 초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석탑이 있는 당항리 마을에는 원래 신라의 승려인 원효대사(元曉大師, 617~686)가 창건한 신흥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비록 사찰은 사라졌으나 지금도 마을회관 앞뜰에는 신흥사의 주춧돌이 남아있고, 깨진 기와 조각들이 발견되고 있어 옛 사찰의 위치를 짐작케 한다.

이 지역에 마을이 들어서면서 탑을 몇 차례 옮기다 1957년 마을 주민들이 지금의 자리로 옮겨 놓았는데, 옮길 때마다 각 부분의 돌들이 없어지거나 훼손되었다. 현재는 기단부가 모두 없어지고 몸돌과 지붕돌, 머리장식인 뚜껑모양의 돌, 수레바퀴모양의 돌만이 남아 있다. 2·3층 몸돌은 원래의 것이 없어져서 새로 보충해 놓은 것이다.